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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cc Jul 04. 2021

1인극을 성사시키는 감각적 자극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2021)

이 소설을 ‘친절한 1인극’으로 만든 것



암전 상태에서 스피커에서 나오는 심장 고동 소리, 이윽고 들려오는 배우의 독백으로 연극은 시작된다. 

“시몽 랭브르의 심장이 무엇인지, 그 인간의 심장, 태어난 순간부터 활기차게 뛰기 시작해서 그 일을 반기며 지켜보던 다른 심장들도 덩달아 빨리 뛰던 그 순간 이래로 그 심장이 무엇인지 (…) 시몽 랭브르의 심장이 무엇인지, 스무 살 난 육신의 블랙박스, 그것이 무엇을 걸러 내고 기록하고 쟁여 뒀는지, 정확히 그게 뭔지 아무도 모른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진 시몽 랭브르라는 청년의 심장이 하루 동안 겪는 일을 그린다. 심장이 주인공이라니? 정확히는 한 사람의 몸에서 다른 사람의 몸으로 심장이 이식되기까지 그 상황을 둘러싼 여러 인물의 반응과 심리, 이해관계를 그린다. 프랑스 작가 마일리스 드 케랑갈(1967~)의 동명의 장편 소설이 원작이다(각색 에마뉘엘 노블레·번역 임수현). 


소설을 원작으로 한 문학적이고 은유적인 대사, 배우 혼자서 펼치는 1인 16역의 연기. 관객의 적극적인 관람 행위가 필요한 작품일 것이라 예상했다. 예상을 깨고 이 소설을 ‘친절한 1인극’으로 만든 것은 무대 연출(민새롬)이었다. 음향·영상·조명효과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몰입감을 높였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음향효과였다. 서핑 보드에 맞부딪치는 파도소리, 막 태어난 아들을 향해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아버지의 목소리, 줄리엣을 힘껏 쫓아갈 때 내리던 빗소리… 모두 스무 살 청년의 심장을 뜨겁게 뛰게 했을 소리들이었다.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에서 배우의 역할은 ‘서술자’다. 3인칭 전지적 시점에서 극의 맥락과 캐릭터의 상황을 설명하다가 일순간 여러 캐릭터의 입이 되어야 한다. 요컨대 극 중 서술자와 인물 사이를 얼마나 매끄럽게 오가느냐가 관건이다. 지금 누구의 시점인지 관객이 헷갈리지 않게 하는 것도 배우의 몫이다. 배우 손상규는 16개 배역 중 시몽 랭브르, 그의 부모,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 장기이식센터의 담당자 등 주요 인물을 성격적 특징과 말투를 다르게 연출하여 차별성을 두었다. 서술과 대사를 오가는 부분에서는 각 인물의 특성을 반영해 연기하는 것으로 직관적으로 표현했다.


연극의 결말부, 청년에게 속했던 육신의 한 조각은 50대 여성의 몸으로 이식되어 봉합까지 깨끗하게 완료된다. 감상적인 태도라고는 찾아볼 수 없지만, 관객에게 남는 것은 묘한 신비감이다. 생명의 신비, 그리고 이 순간에도 내 몸 안에서 쿵쿵 뛰며 나를 살게 하는, 

“지금 들리는 것은 분명 최초의 박동, 여명을 알리는 첫 박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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