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기획자·연구자의 손끝에 남은 공연예술 아카이브
내가 겪은 시행 착오를 예술가의 시선으로 담아냈다
다른 음악인에게 도움이 되기를
(김소라/타악 연주자)
전통음악의 활동 범위가 좁다. 스스로 무대를 찾아야만 한다. 내가 연주자로서 활동 범위를 넓혀가는 과정에서 겪은 시행 착오를 예술가이자 프로듀서의 시선으로 담아냈다.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음악인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좋은 음악을 하는 연주자가 방법을 몰라서 해외에 진출하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당사자로서 기록을 남기기로 한 이유다. 나 역시 예전에 김덕수 자서전을 보면서 해외 진출의 꿈을 키웠으니까. 어느 극장에서 공연했는지 간단하게라도 남겨둔 기록을 보고, 해외에 많은 무대와 연주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관객이 될 독자를 상상하며
예술의 과정을 역추적해서 기록하고 기억한다
(허영균/기획자)
생각보다 공연예술을 경험할 기회가 흔치 않다. 공연이 닿지 않는 곳에서 공연을 말할 방법으로 '책'을 떠올렸다. 관객이 될 독자를 상상하면서 책을 만든다. <1도씨 추적선>은 공연의 현장성을 ‘복원’하려 하기보다, 예술가가 이 이야기를 탄생시키기 위해 거쳐온 ‘과정’을 역추적해서 기록하고 기억한다.
아카이브는 기본적으로 연구를 위한 것
연구가 쌓여 결국 근현대 문화사, 예술사가 된다
(김현옥/연구자)
아카이브는 기본적으로 연구를 위한 것이다. 원로예술가의 기증자료에는 유년 시절의 일기, 서신, 통지표 등도 있다. 한 예술가의 생애 연구에도 필요하지만, 인접 학문에서도 가치 있는 것들이다. 이러한 자료를 활용한 연구가 쌓여 결국 근현대 문화사, 예술사가 된다.
아카이브는 결과물 그 자체보다
생성된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김현옥/연구자)
예술가의 수기나 연습 과정에서 나온 제작일지·회의록·서신 등은 예술계를 적극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기록물이다. 공연예술분야는 그간 프로그램·포스터·공연영상 정도만 아카이빙 해왔는데, 이는 매우 단편적인 기록이다.
정적인 기록과 유연한 기록은 같이 있어야
(허영균/기획자)
공연예술 자료라는 것이 그 당시의 티켓이나 몇 번째 버전인지 확인할 길이 없는 대본, 몇 개 남은 소품들뿐이다. 기록이라기보단 현장 ‘증거’에 가깝다. 이러한 정적인 기록과 유연한 기록은 같이 있어야 상호보완된다.
각자 개성을 살린 아카이빙을 했으면
(김현옥/연구자)
국가지정기록물로 지정된 ‘김천흥 (1909~2007) 컬렉션’은 국가 주도가 아니라, 무용연구자들이 오랜 시간 체계를 만들어 완성했기에 더 전문적이고, 무용사적으로도 매우 가치가 높다. 아르코예술기록원은 예술가를 위한 아카이브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대본·악보·영상·프로그램북 등과 같은 일반적인 선택지와 함께 예술가가 직접 ‘중요한 기록물’을 추가할 수 있도록 했다. 그들만의 질서와 방식으로 생산한 기록물이 기록원으로 이관될 수 있게끔 홍보할 예정이다.
“전시회가 끝나면 모두 불태워버리겠다.”
무대미술가 이병복(1927~2017)의 이 짧은 선언에 2006년에 국내 공연계가 발칵 뒤집혔다. 이병복은 한국의 얼과 멋이 담긴 색과 재료로 국내 무대미술 분야를 개척했다는 평을 받았던 인물. 그런 그가 40년간 만든 연극 소품과 의상을 태우는 것은 한국 연극사의 한 조각을 영영 잃는 일이었다.
그 이유가 허탈했다. 사후에 무대미술품을 보관할 장소도 없거니와, 제대로 관리할 사람이 없다는 것. 놔두면 사라지는 예술 현장을 보존하는 작업, 즉 공연예술 아카이브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시점이다. 부랴부랴 공연예술을 남기기 위한 움직임이 일었다.
가시적인 성과로 공연예술이 머물 집이 생겼다. 2009년 공연예술박물관이 국립극장 산하에 설립된 것. 이곳은 1950년 개관 이래 국립극장에서 제작한 연극·무용·창극·오페라·판소리 등 여러 장르의 공연예술자료를 수집해 보존 중이다.
1979년 개원한 아르코예술기록원은 2010년 국가적인 규모의 예술기록관리 전문기관을 표방하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분리, 독립했다. 2014년 재통합되었으나, 공연예술 아카이브를 위한 전문기관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