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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Jun 22. 2020

20 수정의 마음

오매불망 언니의 마음

작가와 편집자 둘 사이에는 서열이 있을까? 있다고도 할 수 있고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과거에는 편집자가 작가를 ‘모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둘은 서열이 확실한 관계였다. 편집자들 중에는 유명 작가를 놓치지 않기 위해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가 술이든 이야기 상대가 되거나, 그 작가의 원고를 받기 위해 집을 찾아가 시중을 드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도 일부 그런 문화(?)를 이어가는 출판사 얘기가 멀리서 들리기는 하지만, 이제는 거의 사라지는 모습이다.


작가와 편집자는 좋은 관계로 이어지기도 한다. 각자의 역할을 서로 존중하면서 동등하게 작업하고, 그 관계를 오래오래 지속해 동료에서 좋은 친구가 되기도 한다. 같은 출판사에서만 책을 내던 작가가 갑자기 출판사를 옮겼을 때 왜 그런가 보면, 편집자가 이직한 회사로 따라간 경우가 종종 있다. 팀이 바뀌었는데도 같은 편집자만 고집하는 작가들도 있다. 그러고 보면 작가가 자신의 원고를 믿고 맡긴다는 건 단순한 일이 아닌 것 같다. 자신의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것을 독자들과 잘 이어줄 사람,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훌륭하게 채우고, 쓴소리도 할 줄 아는 세심한 조언가는 흔치 않으니까. 편집자도 자신과 잘 맞는 작가에게 계속 집필을 의뢰하여 좋은 결과물을 내기도 한다. 그 둘이 만나면 늘 괜찮은 책이 나온다는 자타가 공인하는 팀들도 있다.


하지만 그 둘의 감정싸움이나 주도권 싸움도 만만치 않다. 각자의 입장과 역할, 견해가 달라 그것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감정이 상하는 일도 생긴다. 그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 얼굴을 붉히는 일도 드물지만 있다. 그 불미스러운 일들은 대게 원고 때문에 벌어진다. 원고를 사이에 두고 일어나는 팽팽한 줄다리기는 모든 작업에서 일어나지만, 그 강도는 원고에 따라 달라진다. 누가 더 잘하고 잘못했다기보다 원고를 보는 입장의 차이이다.


꽤 오래 전 나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다.

한번은 내가 어떤 작가의 원고를 작업하다가 좀 과하게 윤문을 한 것이다. 그 원고를 쓴 작가는 앞서 출간된 책들의 판매가 좋았고, 그 분야에서 이름도 꽤 알려진 사람이었다. 작가는 수정된 원고를 보고 내게 전화를 걸어 왔고, 꽤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유진 씨가 작가예요? 내가 작가예요?”


너무 오래 전 일이라 그 뒤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서로 한발씩 양보하고 하나하나 조율해서 책을 출간했다. 하나 기억나는 건 그 책이 꽤 잘 나갔다는 것.

이런 일도 있었다. 원고 분량이 생각보다 길게 나와 좀 줄여달라고 어떤 작가에게 요청을 했다. 원고의 특성상 줄이는 게 쉽지 않은 내용이었는데,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줄여달라고 하니 작가도 마음이 많이 상했던 것 같다. 작가가 격양된 목소리도 말했다.


“나 다음부터 유진 씨랑 작업 안 해요.”


이 말들을 들은 게 5-6년차 때였으니까 한창 일에 재미를 느끼며 자신감이 오를 때였을 것이다. 그때 막 한 권을 책임지고 만들기 시작했을 테니 얼마나 재밌고 흥분하고 있었을지 상상이 된다. 그런 핑크빛 시절에 작가들로부터 들은 저 두 마디는 꽤 오랫동안 비수가 되어 상처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말들 덕분에 편집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 일이 있기 전에는 편집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스스로 고민하지도 않았다. 그저 어깨 너머로 선배들이 하는 대로 빨간 펜을 들고 글을 고치고 그 내용을 보기 좋게 정리하는 게 편집의 전부인 줄 알았다. 아마 선배들은 그것 말고 다른 것에도 신경을 쓰며 책을 만들었겠지만, 나는 눈에 보이는 것만 따라하는 애송이였다.


원고를 고치고 다듬는 것을 편집의 전부라고 생각했으니 그것에만 집중해서 파고들었을 테고, 편집자로서 원고에 개입하는 정도도 조절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무를 돌보느라 숲을 보지 못한 바람에 그 안에 살고 있는 다른 생명체들을 지키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나는 작가의 문장과 내용의 오류에만 집중해서 고치느라, 거기에 녹아 있던 작가의 개성과 고유한 문체까지 모두 도려내고 말았다.

그리고 내가 놓친 것이 하나 더 있었다. 글을 수정하고 잘못된 내용을 바로 잡는 것을 편집이라고 생각하며 작업하는 것과 “독자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라는 생각으로 편집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그 생각을 저자에게 잘 전달하고 조율하는 게 편집자의 역할이라는 것도. 그러니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서열도 필요 없다. 둘 사이에는 독자라는 절대 강자가 있으니까.


나는 요즘 편집을 할 때 빨간 펜 대신 샤프를 더 자주 쓴다. 그리고 내가 수정한 것을 넘기기 전에 다시 한 번 그것들을 살펴보면서 꼭 수정할 필요가 없는 수정 자들을 지우개로 지운다. 작가를 생각하면서, 또 독자를 생각하면서. 그래서 요즘 내 책상에는 지우개똥이 참 많다! 내가 쓸데없이 만들어낸 부스러기들...


수정의 마음, 그건 고치는 게 아니라 잘 살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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