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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Aug 09. 2019

프리랜서 편집자는 어떻게 일하는가? ②

당신의 책을 만들어 드립니다

19

나는 무엇을 줄여줄 수 있는가?      

여차저차 이제 원고가 나오고 편집의 단계로 간다. 이때 디자이너가 합류한다. 기획 단계부터 함께하기도 한다. 프리랜서 편집자는 어떤 디자이너와 일하게 될까? 내부 디자이너, 회사에서 추천한 외주 디자이너, 내가 추천한 외주 디자이너 중에 한 사람과 일한다. 내부 디자이너보다는 외주 디자이너와 일할 때가 더 많고 우리의 관계는 좋은(?) 편이다. 감정 섞일 일이 거의 없는 관계라 선을 잘 넘지 않는다. 외주라는 연대감이 깔려 있기도 하다. 그보다 더 큰 것은 외주로 일하는 사람들의 경력이 평균 10년차 내외라,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지 않기 때문이다. 실력은 둘째 치고, 무엇이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을 아는 연차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중요한지 아는 연차, 왠지 멋있는걸. 흠….

프리랜서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니다. 질문이 잘못되었다. “출판사는 어떨 때 외주 편집자를 찾을까?” 그들은  두 가지는 줄이고,  한 가지는 높이기 위해 외주자를 찾는다. 비용과 시간은 줄이고 책의 질(기획력과 편집력)은 높이기 위함이다. 그럼 나는 이 세 가지 중에서 어떤 것에 특화되어야 할까? 적어도 세 가지 중에 한 가지는 잘해야 한다.

그들의 요구는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기획을 받을 때는 질을 높이고 싶어 하고, 다된 원고의 진행을 맡길 때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싶어 한다. 세 가지 중에 한 가지는 꼭 잘해야 한다고 해서 무작정 비용만 줄이면 안 된다. 비용을 줄이다 보면 일은 많이 들어오지만, 자신도 모르게 대충 일하게 된다. 세 번 생각할 것을 한 번만 생각하고, 끝까지 고민해야 할 것을 중간까지만 한다. 그렇게 되면 책이 나와도 감흥이 없고, 책을 만드는 일이 점점 소모적으로 느껴진다.

프리랜서를 한 지 1년 남짓 되었을 때 한 선배가 전화를 걸어왔다.

“요즘 어때?”

“열심히 만들고 있어요.”

“그거(프리랜서 일) 되게 소모적일 텐데….”

그때는 출판사 안에서 책을 만들어도 똑같지 않나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선배의 말이 자꾸 생각났고 결국 그 말이 맞음을 확인하는 6개월의 진한 슬럼프를 겪게 되었다. 그때 주변 사람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반응은 네 가지였다.

“그러게 왜 나와서 고생을 해.”

“나도 프리랜서 때 슬럼프 와서 출판사 차린 거야.”

“안에 있어도 힘들어.”

“난 뭐 그냥 이게 편해.”

차례대로 작가, 1인 출판사 대표, 출판사 직원, 프리랜서 편집자의 말이다. 그들의 말을 듣고 이런저런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이랬다.

“기획과 편집의 프로세스 중에서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늘리고, 잘 못하고 하기 싫은 일은 줄이거나 외주를 내 보내자.”

그 뒤 조금씩 그 방향이 잡히기 시작했고, 지금도 정리를 하고 있다. 책 일은 한 권을 만드는 데 6개월~1년이 걸리기 때문에 한 번에 정리하기란 어렵다. 어떤 책은 목차 진행 중이고, 어떤 책은 샘플 원고가 이제 막 통과되었고, 어떤 책은 그림을 그리는 중이고, 어떤 책은 디자인 시안을 의논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책 작업이 동시다발적으로 걸려 있어서 정리가 빨리 안 된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프리랜서 초기부터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편집 분야를 특화시켜 일하는 것이 좋다. 다 그럴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50%만 맞춰도 일할 맛이 나고 슬럼프에 덜 빠진다. 100%까지 갈 생각은 하지도 말자. 그러면 더 피곤해진다.



절대적인 편집 시간을 지혜롭게 건너는 법

책을 편집하는 과정도 내부에서 일할 때와 거의 비슷하다. 최종 원고와 디자인 시안이 오케이 된 뒤 편집이 진행되면, 출판사 개입이 확 줄어든다. 마지막 검토를 빼고 거의 다 맡기는 출판사도 적지 않다. 여기서는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

필자는 프리랜서 초반까지 종이 편집에 익숙했다. 무엇이든 종이에서 확인하던 습관은 1년이 지나 겨우 고쳤다. 고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전달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 출판사 실무자와 대표 들이 다른 곳에서 일을 하니, 종이 원고로 소통하면 돈이 들고 속도도 떨어졌다. 나는 PDF로 교정하는 데 익숙해지려고 노력했고, 이제는 마지막 교정만 종이로 보기 때문에 전달의 문제는 확실히 해결했다. 겸사겸사 환경도 살리고!

그다음 문제는 ‘시간’이었다. 편집 과정은 절대적인 시간을 요한다. 그런데 편집(특히 교정‧교열)을 하는 데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겨 버리면, 다른 일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세 가지의 해결책을 생각해 보았다.

첫째, 텍스트가 적고 구성이 단순한 책도 작업한다. 각자의 분야에 따라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가능하다면 해 보기를 권한다. 최근 도서의 형태가 과거보다 다양해지고, 참신한 기획과 비주얼에 승부를 건 소장각 도서가 인기다. 판면(책을 펼치면 사방에 여백이 있다. 그것을 빼고 인쇄되는 부분을 말한다.)에 들어가는 텍스트의 양도 줄어들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분야가 전문 서적이라 편집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면, 상대적으로 시간이 덜 드는 책을 작업해서 밸런스를 맞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편집, 특히 교정과 교열에 파묻혀 살아야 한다. 환기와 밸런스가 중요하다.

나는 30개월 동안 37권의 책을 작업했다. 출판사가 준 키워드로 기획해서 진행한 책이 27권, 내가 기획해서 진행한 책이 7권, 교정교열만 한 책이 3권이다. 독자 대상을 나누면 성인 단행본은 10권, 어린이‧청소년 책이 11권, 드로잉 책이 16권이다. 나에게는 간단한 드로잉 책이나 어린이 워크북이 편집 시간을 줄이는 환기와 밸런스의 역할을 해 준다.  

둘째, 환기나 밸런스의 역할을 해 주는 책을 작업하기 어렵다면, 기획에서 샘플 과정에서 시간을 많이 들여 초고를 최대한 잘 뽑아야 한다. 또 디자인에 들어가기 전에 한글이나 워드 상에서 원고를 2~3번 수정하고, 출판사와 저자와의 원고 조율도 최대한 해놓는다. 이렇게 하면 본격적인 편집에 들어갔을 때 시간이 절약된다. 앞 단계(초고 수정)에서 시간이 더 드는 것은 맞지만, 본격적인 편집에서 수정이 많은 것보다는 낫다.

그러나 앞 단계를 아무리 잘해 놓아도, 구성이 복잡한 원고는 디자인과 합쳐졌을 때 전혀 다른 원고가 되기 때문에 편집 시간을 줄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셋째, 전문 교정자와 함께 일한다. 물론 교정 교열을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은 본인이 하면 된다. 가장 중요한 것, 교정 비용은 누가 낼까? 상황에 따라 출판사가 내거나 외주자가 낸다. 출판사에서 비용을 내야 할 때에는 계약할 때부터 교정자를 붙여 달라고 요구해야 하며, 본인이 외주를 내보낼 때는 전체 비용에서 사용 가능한 만큼만 쓴다.

넷째, 규칙적으로 일한다. 나는 오전 10시에 출근해 오후 7시 내외에 퇴근하고, 주 1~2회 정도 9시까지 야근을 한다. 점심시간은 손님이 오면 2~3시간, 혼자일 때는 30분 안에 끝난다. 그렇게 규칙적으로 일하다 보니, 집중하는 시간이 출판사에서 일할 때보다 길다. 매일 매일 꾸준히 규칙적으로 일하는 것이 편집 시간을 잘 쓰는 방법이다.



프리랜서 편집자의 미래

자, 이제 책이 출간되었다. 프리랜서 편집자의 마음은 어떨까? 출판사에서 책을 냈을 때만큼 책에 대한 주인의식이나 애착은 확실히 줄어든다. 그다음 책을 준비할 뿐이고, 새로운 기획으로 눈길을 돌린다. 한 권에 한 권에 주인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다. 충실히 일했으므로 기쁜 마음으로 쿨하게 보내 주어야 한다.

책 일은 전체 내 일에서 80%를 차지한다. 나머지 20%는 강의를 기획하여 강사를 학교나 기관에 배치하는 일을 하고 있다. 처음 1년은 책 작업과 강의 기획의 양이 거의 비슷했다. 지금은 책과 강의 일이 8:2이다.

강의 기획은 소소한 일들이 정말 많다. 강의를 기획하고 강사의 이력과 일정을 고려해 해당 기관에 배치하는 일은 흥미롭지만, 기관이 원하는 강사료와 재료비를 조율해 견적서를 만들고 세금계산서를 요청하는 일은 나에게 어려웠다. 또 학교나 기관과 일할 때에는 그들이 모객을 하지만, 그 외에는 모객도 직접 해야 했다. 강의 기획 쪽 일은 한 회사와만 일하고  또 책도 만들기 때문에, 강의 콘텐츠에 제법 익숙해졌다. 이제는 학교나 기관에서 원하는 주제로 기획안을 만드는 데 능숙하고, 관련 서류에도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하지만 처음 1년은 무척 힘들었다. 맨날 실수하고, 맨날 떨어지고(학교나 기관의 강의나 수업은 정부나 자치단체에서 진행하는 공모전에 응모하여 사업비를 따는 방식이 많다), 숫자도 자주 틀렸다. 함께하는 분들의 배려와 도움이 없었다면, 여전히 헤매고 있을 것이다. 나는 왜 어리바리하면서 그 일을 시작했을까?

우선 책 일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근무한 마지막 출판사는 어린이책 출판사였다. 입사하고 4년 뒤에 편집 팀장이 되었는데, 매출 현황을 보고는 도저히 답이 안 나왔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우리 책으로 강의해 줄 초등 외부 강사를 한 분 한 분 모셨고, 그 인원이 50명이 되었다. 그분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현장 이야기를 들었고, 책을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책 판매도 올랐다. 강사들과 만나며 새 콘텐츠에 대해 배우고, 그들을 저자로 만들기도 하니 일석이조였다.

다른 이유는 책 작업 외에 다른 수입원이 필요했다. 당시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퇴사를 해서, 당장 책 일을 시작해도 결과물이 언제 나올지 깜깜했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매달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강의 기획 수입과 책 계약금으로 처음 1년을 버텼다.

이렇게 프리랜서로 책과 강의를 기획하며 새롭게 한 일이 몇 가지 있다. 책을 1권 썼고,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20회 정도 강의를 했다. 두 개의 독서 모임에 나가며, 주 1회 2시간 자원봉사를 한다. 새로 얻게 된 것은 외로움과 깜박증이다. 혼자 밥도 잘 먹고 외로움도 별로 안 느끼는 편인데, 계속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직이 그립다.’ 또는 ‘오늘은 혼자 밥 먹기 싫다.’ 그러나 출판사에 다시 가도 ‘조직이 지겹다.’ 또는 ‘오늘은 밥 혼자 먹고 싶다.’라고 할 것을 알기에 그냥저냥 일상을 보내고 있다. 깜박증은 하는 일의 종류가 많아서 생기는 것이라, 메모하고 더블 체크하는 방법밖에 없다.


누구나 그렇듯 삶의 방향이 바뀌면 얻는 것도 있고 잃는 것도 있다. 그런데 이게 모두 우리의 이전 경험에 비춰진 판단이라, 아직은 책을 만드는 데 출판사에 다니는 것, 외주 편집자가 되는 것, 출판사의 주인이 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긍정적인 방향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앞으로 프리랜서는 많아질까, 적어질까? 처음부터 프리랜서 편집자가 될 수 있을까? 프리랜서 편집자의 미래는?"라는 질문에도 망설일 것 같다.

그런데 한 가지는 확실하다.

“프리랜서 편집자는 교정교열자가 아니다.” 교정교열은 중요한 업무 중에 하나이다. 문제는 ‘외주 편집자=교정교열자’라는 생각이다. 그렇다 보니, 일을 참 잘하던 편집자들이 프리랜서가 되어 교정교열만 보다가 지쳐 쓰러지거나, 교정교열이 안 들어온다고 한탄하며 출판계를 떠난다. 그러곤 미래 편집자들에게 “편집자 하지 마.”라고 말한다.  

출판사를 떠나 프리랜서 편집자가 되려면, 기획, 섭외, 편집, 홍보까지 책을 만드는 과정을 낱낱이 쪼개놓고 거기서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먼저 찾아야 한다. 요즘은 편집자가 필요 없는 책(작가나 디자이너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책들)도 많고, 앞으로는 더 많아질 것이다. 인쇄하는 사람이 편집까지 했던 과거로 돌아가진 않겠지만, 내부에서 일하든 밖에서 일하든 자기 역할을 스스로 개척하는 수밖에 없다. 콘텐츠의 양과 종수는 계속 늘어날 것이고, 거기에 프리랜서 편집자의 능력이 다양하게 쓰일 수 있다. 더불어, 책에 매달리지 않고 콘텐츠에 매달리다 보면 다른 일도 보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두 번째 명함이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프리랜서 편집자가 되고 싶다고요? 안에서 일하든 밖에서 일하든 그런 건 안 중요해요. 책 만드는 과정을 하나하나 깊이 들여다보고 경험한 뒤에, 본인을 위해 그리고 지금 시대에 맞게 ‘창직’하세요. 유튜브 콘텐츠를 전자책으로 만드는  편집자, 책 내용을 굿즈와 잘 연결시키는 편집자, 강의를 책으로 잘 만드는 편집자, 소장각 전문 편집자, 캐릭터 전문 편집자…. 우리는 어떤 편집자든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을 찾기만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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