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유진 Oct 16. 2020

칭찬으로 멀어진 관계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일을 하다가 만난 P씨는 무척 친절하고 세심한 사람이었다. 말이 많고 언변도 남달랐다. 그런 그가 하는 말의 반이 ‘칭찬’이었다. 만나면 듣기 민망할 정도로 나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나도 질세라 과거 ‘칭찬합시다’라는 별명에 걸맞게 그의 성과를 칭찬했다. 우리는 몇 년간 함께 일도 하고 안부도 묻고 종종 밥도 먹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 대한 ‘칭찬’으로 우정을 쌓아갔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는 그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칭찬의 말 속에 부풀려진 풍선이 너무 많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안에 든 칭찬, 공수표, 뜬구름들이 진심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점점 그가 하는 말이 귓가에서만 맴돌며 잘 들리지 않게 되었다.

나는 급기야 그의 말들을 우회적으로 지적했고 그도 그런 나의 불편함을 감지하는 것 같았다. 가령 프로젝트를 같이 하자는 수차례 반복되는 공수표에 나는 “일을 같이 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그냥 지인으로 지내도 좋은데요”라고 말하는가 하면, 그의 뜬구름 같은 말, 영혼 없는 칭찬에는 침묵을 지켰다. 그러던 어느 날, 자주 연락하던 그에게서 두어 달 연락이 없음을 알아채고 안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그를 만난 이후 그렇게 차가운 목소리는 처음이었다.


전화번호를 지운 것인지 생전 모르는 사람의 전화를 받는 말투였다. 나는 평소와 다른 그의 반응에 적잖이 놀랐고, 얼굴이 달아올라 안부만 잠깐 묻고 전화를 끊었다. 그 뒤로도 그는 연락이 없었다.

무슨 일이었는지 그의 입장을 들어보지 못해 아쉽지만, 나는 멀어진 관계보다 칭찬의 말로 이어온 우리의 얄팍한 관계가 안타까웠다. 남의 말에 쉽게 상처받고 휘둘리는 두 사람이 칭찬이라는 ‘대일밴드’를 덕지덕지 붙여가며 유지해온 관계란 얼마나 약하고 위태로운가. 그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어느 한 사람이 어렴풋이 먼저 알게 되면 그 관계는 더 이상 유지될 명분을 잃고 만다.


그와 멀어진 뒤, 나는 그간 내가 해온 칭찬의 말들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진심 여부를 떠나, 내가 사람들과 잘 지내기 위해 또는 친근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했던 그 말들이 관계를 얼마나 약화시켰는지를 말이다. 말로 가까워진 관계는 반드시 말로 멀어지게 되어 있다. 관계에서 오가는 과도한 칭찬은 때로 서로를 옭아매는 덫이 되기도 한다. 그 칭찬에 부응하는 사람이 되지 못할까 봐 불안해지기도 한다. 그것은 칭찬의 말에 부응하기 위해 쓰는 과도한 에너지, 거짓말, 공수표로 드러난다. 연기를 하느라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쉽사리 불편해지고, 그러다 보면 사람을 있는 그대로 대하지 못하고 관계도 망가진다.


작가의 이전글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