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유진 Feb 24. 2023

브레이크 타임 없는 집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남편은 남들보다 늦게 출근하고 늦게 퇴근한다. 남편의 아침은 남들의 점심시간이고, 저녁식사 시간은 밤 11시~12시다. 직업을 바꾸랄 수 없지만 남들보다 아침을 더 일찍 시작하는 나로서는 남편의 하루가 조금 비정상적이고 불규칙하게 보인다. 누구나 자기 자신이 기준이 되는 법이니 그런 생각이 드는 건 뭐랄 수 없다. 더구나 저녁 9시면 하품을 해대는 내가 밤늦게 와서 저녁을 먹는 남편이 마냥 반가울 리 없다. 그래도 그 시간까지 밥을 못 먹고 들어오는 남편이 안쓰러워 먹을 것은 늘 챙겨 놓는다. 벌떡 일어나 상을 차려주지는 못해도 반찬이 부실한 날은 중간에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며 계란찜이나 김치찌개라도 해놓고 다시 잠을 잔다. 

언젠가 남편에게 물었다.

“자기는 결혼 전에 저녁을 어떻게 먹었어? 자정 가까운 시간에 문 여는 밥집도 별로 없었을 거 아냐.”

“그때까지 여는 식당이 하나 있었지. 내 단골집. 정 마땅치 않으면 집에 가서 간단히 해먹기도 하고.”

매일 밤 밥집을 찾아다니는 기분은 어떤 마음일까? 남들은 곤히 잠드는 시간,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시간, 텔레비전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는 시간에 허겁지겁 하루의 마지막 끼니를 채우는 사람의 뒷모습을 생각하면 나는 잠깐 엄마의 마음이 된다.


그처럼 밥집을 찾아 헤매는 일은 나에게도 벌어졌다. 코로나로 집이나 카페에서 번갈아 일하던 때, 웬만하면 붐비는 점심시간을 피해 식사를 했다. 그런데 번화가에 나가 일할 때는 거의 대부분의 식당에 브레이크 타임이 있었다. 식당마다 브레이크 타임이 달라서 외워 놓지 않으면 연달아 같은 음식을 먹어야 하는 불상사가 벌어지곤 했다. 어떤 집은 3시, 어떤 집은 3시 30분, 어떤 집은 4시였다. 브레이크 타임이 3시면 적어도 2시 30분 전에는 식당에 들어가야 여유롭게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가까스로 식당에 골인했는데 브레이크 타임 알림판을 미리 걸지 못했다는 주인의 말에 쫓겨나오기도 하고, 브레이크 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두 번이나 말하는 통에 밥을 허겁지겁 먹기도 했다. 시간과 관계없이 재료 소진을 이유로 문 앞에서 발길을 돌리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렇게 시간에 밀리고 밀리다가 결국 편의점 식사를 하기도 했다. 몇 번 그러고 나니까 괜히 브레이크 타임이 원망스러웠다. 유난히 배가 고픈 날, 닫힌 식당 문을 보며 ‘언제부터 브레이크 타임이 이렇게 많아진 거지?’라며 씩씩대기도 했다. 그러던 중 브레이크 타임 없는 밥집을 하나 발견했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식당 이름은 전주집.

하루는 3시 가까이 전주집에 갔는데 나 말고도 두 테이블이나 손님이 더 있었다.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로 보였는데 아마 나처럼 식사 때를 놓친 모양이었다. 나처럼 끼니를 놓친 사람들을 모두 받아주는 전주집의 품이 그날따라 꽤나 넉넉해 보였다. 그 뒤로는 일 때문에 점심때를 놓쳐도 느긋한 마음으로 책상에서 일어나 전주집으로 갔다. 늦은 점심, 전주집에서 먹는 청국장이나 제육덮밥은 꿀맛이었다. 전주집 아주머니가 늘 틀어놓은 트로트 프로그램이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그마저도 식당의 근사한 배경이 되었다.


우리에게도 '전주집' 같은 곳이 있을까? 언제든지 가도 밥을 먹을 수 있는 곳, 아무 때나 밥을 달라고 할 수 있는 곳, 브레이크 타임에 걸릴 일 없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 편안하게 아무 꾸밈없이 밥을 삼킬 수 있는 곳, 그런 곳은 각자의 집뿐이다. 

나와 남편에게는 ‘우리집’이 있다. 나는 남편이 12시에 저녁을 먹어도 우리만의 공간에서 식사를 천천히 즐기길 바란다. 사람들과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는 소외의 마음을 갖지 않고 자신의 시간 안에서 밥을 먹기를 바란다. 비록 자고 있더라도 가족이 옆에 있다는 평온한 마음으로 밥을 먹기를 바란다. 식사를 하고 한두 시간 뒤에 잠들어야 하는 일상을 너무 아쉬워하지 말기를 바란다. 브레이크 타임 없는 본인의 식당에서 위로받기를 바란다. 늦은 밤 자기만의 식당으로 들어오며 부디 행복하기를 바란다.

함께 산다는 것은 서로의 밥을 짓는 일이다. 남편도 새벽밥을 먹는 나를 위해 밥도 해놓고 국도 끓여 놓는다. 우리는 서로의 밥을 챙겨주는 밥 공동체다. 서로에게 브레이크 타임 없는 식당이 되어 주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집 밥솥이 비지 않도록 오늘도 열심히 밥을 지어야겠다.      


#그렇게말해줘서고마워 #김유진 #일타스캔들 #음식 #에세이 #브레이크타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