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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ribe Mar 27. 2023

Class가 다른 독서

고전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나는 원래부터 문학에 관심이 많고 오랫동안 공부해서 그런지 세상에 벌어지는 일들을 스토리 중심으로 해석할 때가 많다. 만약 누가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서방이 아직까지 세상을 휘어잡고 있다고 생각하냐고 질문을 한다면, 난 고민하지도 않고 그들이 믿는 신화 때문이라고 답할 것이다. "신화"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순간부터 각기 다른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신화(μῦθος, "mythos", 스토리, 플롯 등)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만약에 영어권 사람이 "'Get rich quick' is a myth."라는 말을 듣게 되면 일단 '단기간에 부자가 된다는 건 거짓말이다'라는 메시지를 듣게 된다. "Myth"라는 단어를 이렇게 쓰면 비꼬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냥 단순히 잘못됐을 뿐만 아니라 "신화"는 '힘을 가진 자들이 자신 혹은 집단의 권위, 질서 혹은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선전하는 내러티브'라는 의미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바로 "The American Dream is a myth"로 들 수 있다. 부지런히 일하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아메리칸드림을 믿는 미국인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한 동안 아메리칸드림을 이룬 사람이 대통령이 많이 배출됐다. 오바마가 대표적이다. 일류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민주당 후보들이 아메리칸드림을 외치는 동안 미국의 경제는 계속 어려워지고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었다. 어쩌면 2016년에 트럼프가 당선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 사람은 아메리칸드림을 다시 꿈꿀 수 있는 사회를 구현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지 않을까? 똑같은 신화지만 그 활용법이 승자를 가른 셈이다. 


인간이 처음으로 사회를 형성할 때부터 특히 다음 세대를 어떻게 교육시켜야 하고, 구성원들을 통제할 지에 대한 고민을 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동양, 서양, 구대륙, 신대륙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문화권과 문명 사람들은 이야기를 통해 다음 세대를 길러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또 족장과 왕이 백성들에게, 제사장이 성도들에게 신화를 들려줌으로써 세상 가운데 인간과 그들이 속한 집단이 차지하는 위치를 스토리를 통해 전했고, 내가 보다 큰 내러티브 속 역할을 찾아가는 여정을 떠나는 사회 구성원들의 사고방식과 세계관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A Reading from Homer" (Sir Lawrence Alma Tadema)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낭독하는 청년의 모습


처음에는 모닥불 피워놓고 구술로 전해진 신화들은 점차 문자로 기록되고 책으로 바인딩되었다. 때로는 같은 신화가 각색되고 깊어지면서 고전이 되었다. 영어로 고전을 "Classic"이라고 하는 데, 말 그래도 클래스가 가장 높은 수준의 문학이다. 또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진리와 가르침을 전하는 문학을 의미하기도 하다. 그렇게 이들의 신화는 불멸의 생명력을 얻고 고대 그리스인이 목소리로만 암송하던 서사시가 21세기 교실에서까지 이어졌다. 신화와 고전은 교육 그 자체였고 지혜 그 자체였다. 


신화 강국 

예전만 하지는 못하다고 하지만, 여전히 세계 질서를 좌지우지하는 나라들은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다. 미국, 특히 영국 같은 나라들은 전통적인 '신화 강국'들이다. 서방의 교육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신화 교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는, 호메로스, 에우리피데스, 플라톤, 키케로 등의 문헌을 공부하는 게 교육의 기초였다. 로마가 멸망한 후에도 고전문헌들은 살린 건 다름 아닌 기독교 수도승들이었다. 거짓 신들에 대한 스토리들을 기독교 신자들이 보전한 것만 봐도 이들이 얼마나 중요한 글들이자 자원이었는지 보여준다. 또 영국의 주요 대학들은 60년대까지 대학 입학시험이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가 포함되어 있을 정도였다. 


지금은 고전 교육이 의무는 아니지만 여전히 고전문학과 인문학 중심 교육을 추구하는 중등, 교육기관들이 많이 남아있다. 라틴어로 모든 수업을 진행하는 대안학교도 있다. 그러나 학교뿐만 아니라 시장 차원에서도 이 신화를 위한 수요와 또 그것을 공급하기 위한 생태계가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다. Oxford World Classics, Barnes & Noble Classics, Loeb Classics Library, 우리에게도 익숙한 Penguin 등 규모 있는 고전문헌 전문 출판사도 다수 있다. 어느 서점을 가도 고전은 한 구역 전체를 딱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인문학, 특히 고전 문헌과 언어 공부에 중점을 둔 교육의 가장 큰 이점은 무엇인가? 소위 '교양'을 넘어서서 고전 교육이 과거 유럽의 제국과 오늘날의 미국을 어떻게 만들어낸 걸까? 


우리나라 인문학 연구팀 '디오니소스'는 저서에 미국 교육에 대한 일화가 담겨있는데, 60년대 초, 소련이 최초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면서 미국은 소련과 우주 개발 경쟁에서 패할 위기에 놓여있었다. 당시 미국 정부는 교육 정책에 변화를 줬는데, 수학이나 과학의 비중을 키우지 않고 오히려 순수 학문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인문학, 그리고 고전 교육을 강화하면서 더 유능한 과학자, 기술자를 양성하기보다 달나라에 갈 수 있다는 상상력을 가질 수 있는 인간을 키우는 데 우선순위를 둔 것이다. 


NASA는 신형 유인 달탐사선 사업을 아폴론의 쌍둥이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바 있다


공교롭게도 최초로 달나라에 착륙한 우주선의 이름은 아폴로 11호였다. 아폴로는 태양, 이성, 음악, 의학 등 여러 가지 영역을 지배하는 그리스 신 아폴론으로부터 온 이름이다. 실제로 고대 아테네 사람들은 올림포스의 12 신 중에서 가장 그리스다운 신이라고 여겼고, 미국의 인문학 교육의 최종 승리에 대한 선포 같았다. 


알렉산드로스가 동방을 정복하겠다는 야망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어딜 가나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가지고 다녔기 때문일 수도 있다. 미국의 3대 대통령이자 건국 아버지 중 한 명인 토마스 제퍼슨이 가장 좋아한 책은 크세노폰의 "키루스의 교육"이었다. 이는 페르시아 제국을 건국한 키루스에 대한 책인데 제퍼슨이 성경보다 더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알렉산더의 업적을 기록한 아리아노스의 문헌과 제퍼슨이 서명한 독립선언문도 많은 학생들에 의해 널리 읽히고 학습되고 있다. 


과거에 제국을 건설하고 신의 경지에 오르는 영웅들의 스토리를 읽기 위해 언어를 습득하고 끊임없이 그 신화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주인공이 되어 새로운 신화를 창조할 수 있으리라는 상상력을 가질 수 있는 국민과 리더가 배출되면 그 국가는 새로운 프런티어를 개척할 수밖에 없는 거 같다. 금속활자가 고려에서 먼저 발명됐지만, 인쇄술이 백성들의 삶의 모습이나 나라의 지식수준에 변화를 주는 일은 없었다. 독일이 기술을 확보하는 데는 한 발 늦었지만, 성서를 더 널리 보급해 이는 일반 백성이 지배층과 동일한 진리와 지식을 접할 수 있는 혁명 같은 일이 벌어졌다. 

 

뉴욕도서관에 전시된 구텐베르크 성서 사본 


한국의 신화 

우리도 한 동안 고전 중심의 교육이었다. 하지만 교육 자체보다, 어떤 신화를 믿고 가르치느냐고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불행히도 우리 옆 나라는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이고, 반대쪽 바다 건너에는 자신이 태양 신의 후손이라고 믿는 나라 있었다. 중국은 지금 미국과 견줄 강대국이 되었고 일본은 태양의 제국을 완성할 뻔했던 새로운 신화에 힘입어 계속 강해져만 가고 있다. 반면, 조선은 큰 나라의 가장 충성된 신하로서의 세계관을 믿고 본국보다 더 부지런하게 백성들을 조련시켰다. 우리는 지금도 성리학적 세계관의 그림자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자를 죽인 지금 우리의 모든 교육은 '자본'이라는 절대신이 주인공인 내러티브 중심으로 돌아간다.  '자본신'은 나라라는 언제 나를 휩쓸어갈지 모르는 파도로부터 나를 지켜줄 수 있는 방파제를 짓는 방법을 알려줄 것이다. '자본신'에게는 '효율'이라는 제사장이 있다. 그의 말씀은 진리다모든 국민이 성인이 될 때까지 모든 질문과 문제에 올바른 정답이 있다고 조련되면 그 나라의 미래는 어떨까? 대학을 갈 때까지 한 번도 글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펼쳐보지도 않은 리더들이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국민들을 지혜롭게 이끌 수 있을까? 그런 국민들이 '취업', '투자 성공' 외에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대학교가 취업률, 삼성은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이라는 잣대로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어쩌면 학생, 교수, 기업인, 임직원 모두가 평생 받아온 교육 때문이지 않을까? 하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생각을 대신해 줄 AI가 조만간 완성될 테니까. 


아이러니한 건 우리나라만큼 독서를 강조하고 집착하는 나라도 없는 거 같다. 하지만 독서를 70년대 경제개발계획처럼 접근하는 안 좋은 습성이 있다. 어떻게 하면 매년 더 많은 책을 더  빨리, 더 효율적으로 읽을 수 있을지 가르치는 사람은 많지만 어떻게 하면 책 하나를 보더라도 잠시 멈춰 상상력을 키워가고 나만의 사고를 기를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Aeternae Sententiae 

필자는 가장 널리 읽히고 가장 중요한 클래식 고전문헌과 작품을 소개하는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다. 서사시부터 철학, 극, 소설 등 장르는 다양하지만 문화를 뛰어넘는 가르침이 있고 세월이 지나고 변하지 않는, 생각하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고 생각하는 작품들을 소개하게 될 것이다. 


공교육에서 답을 찾지는 못하지만, 꿈을 가져보고 싶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우고자 하는 분들이 고전에 흥미를 가지고 조금이나마 쉽게 접근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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