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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ribe Apr 16. 2023

로마와 미국을 만든 책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로마제국, 미국, 그리고 가톨릭 교회, 이 세 가지는 공통점이 무엇인가? 이들은 모두 하나의 책, 하나의 스토리를 그들의 신화로 삼고 있다. 언뜻 보면 성경책인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정답은 라틴어 문학의 황금기 때 쓰인, 로마의 호메로스라고도 불리는 베르길리우스(Publius Virgilius Maro, 70~19BC)의 서사시, 아이네이스(Aenead)이다. 

Novus Ordo Seclorum 

흔히 프리메이슨 세계 정복 음모론에 대한 다큐에 단골로 언급되는, 1달러 지폐 뒷면에 새겨진 라틴어 문구이다. 아이네이스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베르길리우스의 다른 시(Eclogue IV)에 등장한다. 원문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이 시대의 위대한 질서가 다시 태어났다"(Magnus ab integro saeclorum nascitur ordo) 정도이다.  그리고 로마 최고의 시인이 건국의 아버지들에게 직접적인 영감을 많이 줬다. 왕이 없고, 성직자가 권력을 가질 수 없는, 민주 공화정이라는 신흥 강국의 탄생을 알리는 미국에 그들의 지리, 문화, 언어뿐만 아니라 시공간 자체를 바꿔놓은 로마제국만 한 롤모델이 없다. 


미국의 민중들은 근면한 청교도들이 대부분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미국을 건국한 엘리트층, 그러니 미국의 건국이념도 계몽주의 사상, 그리고 그것을 나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가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수도 워싱턴 DC의 설계도 그런 정신을 뒷받침하고 있고, 미국 의회 건물인 Capitol도 과거 주피터의 신전이 있던 카피톨리노 언덕의 이름을 본뜬 것이다. 


Capitol 돔 천장 "Apotheosis of Washington"에 조지 워싱턴이 신격화되는 모습 

이탈리아 문학하면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의 신곡(Divina Comedia)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단테 본인이 주인공이 되어서 지옥(Inferno), 연옥(Pergatorio) 그리고 낙원(Paradiso)까지 순례를 떠나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단테를 지옥과 연옥까지 안내해 주는 길잡이가 누구냐? 바로 베르길리우스다. 물론 단테가 어릴 적부터 키케로, 오비디우스 등 고대 대문호들을 공부해 왔고, 특히 베르길리우스를 좋아했다. 하지만, (중세) 기독교 세계관을 표현한 서사에서  이교도 시인이 거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게 약간은 이상할 수도 있다. 


신곡에 나오는 매우 다채로운 사후세계는 성서에는 일채 언급이 없다. 그렇다면 이는 어디서 온 걸까? 지옥에 죄인들이 저지른 악행에 따라 다른 구역에 배정되는, 서양의 사후세계에 이처럼 체계, 구조를 처음 부여한 사람이 바로 베르길리우스다. 그리고 아이네이스로 인해 만들어진 제국의 이념과 개념들이 그대로 가톨릭 교회에 적용되었다(지금도 교황은 Pontifex Maximus라는 로마제국의 대제사장 직책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오죽하면 일부 역사학자들은 로마제국은 멸망한 적이 없고, 이제는 영토와 식민지로 이루어진 제국이 아니라 영혼들로 만들어진, 메트릭스 같은 제국으로 부활했다고 주장한다. 기독교의 가장 유명한 철학자인 성 어거스틴도 자신의 고백록에서 베르길리우스의 문장을 많이 인용하기도 한다. 


필자도 대학교 부전공 수업을 통해서 아이네이스를 처음 접하게 됐는데, 이렇게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의미가 큰 고전은 항상 호메로스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어 안타까웠다. 


제국의 탄생

로마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가장 이해 안 가는 부분 중 하나가 공화정에서 제국으로의 전환이다. 분명 왕이 싫어서 공화정을 정립하고, 또 직접 카이스라르(Gaius Julius Caesar)를 칼로 질러 죽인 로마인들이었지만, 왜 정작 아우구스티누스가 1대 황제가 되었을 때 아무도 저항하지도 않고 박수를 친 걸까? 물론 다양한 설명을 들 수 있겠지만 이 역시 글의 힘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카이사르가 암살됐을 때, 로마는 이미 공화정으로 돌아가기엔 너무 늦었다. 폭군을 몰아내긴 했지만, 카이사르의 암살로 공백이 생기고 로마는 다시 한번 대혼란에 빠졌다. 그는 기원전 49년 라이벌 폼페이우스(Gnaeus Pompeius Magnus)를 상대로 4년 동안 전쟁을 치렀다. 목표는 단 하나, 로마의 통치권이었다.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가 동생 레무스를 죽임으로써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알고 있을 정도로, 특히 이번 전쟁은 로마 시민들에겐 엄청난 트라우마로 남아있었다. 이번에는 옥타비아누스(Gaius Octavius), 그리고 마르크스 안토니우스(Marcus Antonius)의 새로운 라이벌 구도로 또 한 차례 내전을 앞두고 시민들은 불안에 떨었다. 


그러나 이번 전쟁의 승부는 해전에서 결정되었다. 옥타비아누스는 그리스 앞바다 악티움(Actium)이라는 곳에서 마르크스 안토니우스, 그리고 클레오파트라의 함대와 운명의 전투를 치렀다. 그는 자신이 로마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고 선전했다. 시민들은 옥타비아누스가 승리해서 지지한 것도 있었겠지만, 전쟁을 로마 본토에서 떨어진 바다에서 치러 민간 피해를 최소화했다는 점에서 그가 무슨 결정을 해도 따라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는 돌아온 후 이름을 아우구스투스(Augustus)로 바꾸고 1대 황제가 되었다. 


로마제국의 탄생과 함께 아우구스투스는 문호들을 대거 등용해서 새로운 체제와 황실을 드높여 줄 문학을 만들려고 노력했는데, 당시 황제의 스폰서를 받으면서 활동한 시인 중 하나가 바로 베르길리우스다. 


Myth Making 

로마제국은 세 차례의 전쟁으로 완성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 앞서 언급한 로마 내전, 악티움 해전과 카르타고를 상대로 치른 포에니 전쟁(264~146BC)이다. 포에니 전쟁으로 당시 로마 공화정은 지중해 지역의 일인자로 거듭날 수 있었다. 마지막 3차 포에니 전쟁 때 마케도니아가 카르타고 편에서 로마와 싸웠는데, 로마는 보복 처원에서 마케도니아, 그리고 그리스 전체를 점령했다. 그리스의 가장 부유한 도시 국가였던 코린트를 점령함으로써 로마는 처음으로 그리스의 예술, 문학, 철학, 우월한 고전주의 문학을 접했다.  

Capta Graecia ferum victorem cepit et artes intulit agresti Latio
사로잡혔던 그리스가 도리어 (로마를) 사로잡고 낙후된 라티움에 문화를 가져다줬나니(로마 시인 Horace)

로마인들은 이를 좋아하기 넘어서서 자신들도 이 고대 그리스 문화권에 속하기 원했다. 마침 이들도 당시에 비슷한 신을 숭배하고도 있었다. (사실 미네르바와 아테나는 명백히 다른 신이지만 비슷한 신화와 성품을 지니고 있어 당시 로마인들은 동일하다고 여겼다) 특히 로마인들은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를 너무도 좋아했다. 아이네이스(Aeneas, Αἰνείας)는 일 리 이 아스에 등장하는 트로이의 용사다. 그는 아프로디테(비너스)의 아들로 헥토르 왕자가 캡틴 아메리카라면 아이네이스는 와칸다 정도 캐릭터로 볼 수 있다. 


트로이 전쟁에서 패한 후 그는 아버지, 아들, 그리고 부하들을 배에 태우고 지중해로 도망친다. 로마인들은 아이네이스의 스토리를 차용해서 그를 로물루스의 조상으로 설정하고 스토리를 각색했다. 베르길리우스는 일리아스의 플롯 직후 아이네이스가 로마로 향하는 모험과 이탈리아인들과의 전쟁을 다루는 서사를 쓰게 된다. 


영웅은 섭리의 도구

호메로스와 마찬가지로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에도 신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일리아스의 신들은 서로를 속이고, 인간 영웅들보다 더 '인간미'가 넘치는 경우가 많다. 헤라는 제우스가 트로이 군을 지원하는 걸 방해하기 위해 그와 잠자리에 들자고 꼬드기는데, 제우스는 망설이지도 않고 넘어간다. 아이네이스의 주피터는 전혀 그런 모습이 없다. 오히려 기독교 유일신처럼 절대적이고, 전지전능한 모습을 보이며 운명(fatum) 자체를 결정할 능력을 지닌 거처럼 묘사된다. 로마의 건국 또한 신과 인간의 아버지인 주피터의 거룩한 뜻이다. 그는 아이네이스의 어머니이자 자기 딸 비너스에게 다음과 같이 약속한다. 

his ego nex metas rerum nec tempora pono; imperium sine fine dedi (로마의 미래)에는 시간과 공간, 그 어떠한 제약도 두지 않고 한계가 없는 제국을 주었소(Aen. I 289)


하지만 주피터의 뜻을 거역하는 자들이 생기는데, 아이네이스가 자신의 목표에 가까워지면서 로마의 건국을 방해하는 자들의 운명을 차례로 보여주면서 스토리가 진행된다. 이 중에는 질투의 여신 주노(그리스 신화의 헤라)도 포함되어 있다. 일리아스에서 그리스 군을 지지한 주노는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 때문에 비너스와 미모 대결에서 진 것에 대한 앙금이 여전히 남아있다. 


아이네이스 서사는 총 12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있는데, 1권부터 6권은 아이네이스와 트로이 함대의 표류, 7권부터 12권은 이탈리아에 도착 후 라틴족들과의 전쟁을 다루고 있다. 전반부, 후반부가 각각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와 일리아스를 모델로 삼고 있는 거 같고, 이 중 제6권이 스토리의 핵심 전환점 역할을 하면서 서사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서사 전반부와 후반부에 각각 로마제국을 탄생하게 만든 두 전쟁의 스토리가 녹아들어 있다. 


먼저 1권부터 4권에 아이네이스는 트로이를 떠나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기 위해이탈리아로 건너던 중 카르타고에 멈춘다. 맞다, 바로 그 로마의 원수, 카르타고다. 아이네이스가 정박한 카르타고는 이제 막 지어지고 있는 신생 국가로 지어지고 있다. 한니발 장군이 아니고 아름다운 디도(Dido) 여왕의 통치를 받고 있다. 디도는 아이네이스와 사랑에 빠지고 아이네이스도 그녀와 함께 카르타고를 통치할 거까지 고민한다. 그때, 주피터의 사자 역할로 유명한 머큐리(그리스 신화의 에르메스)가 그에게 말한다. 

tu nunc Karthaginis altae fundamenta locas pulchramque uxorius urbem exstruis? 
"그대는 지금 겨우 여자의 꾐에 카르타고의 기초를 쌓아 아름다운 도시를 짓고 있는가?"
(Aen. IV 265) 


이 말을 들은 아이네이스는 갑자기 정신을 차린 듯, 디도가 눈치채기 전에 자기 아들과 부하들을 배에 태우고 카르타고를 출발한다. 디도는 지평선으로 떠나는 그녀의 연인을 바라보고 절규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카르타고는 주노의 지지를 받고 있는 도시로 묘사된다. 그리스, 로마인들은 모든 신들은 자신들이 선호하고 아끼는 국가들이 있었다고 믿었다. 주노는 비너스에게 이왕 이렇게 사람을 혼인시키는 어떻겠느냐 제안도 했었고, 4권에서 아이네이스와 디도는 관계를 가지기도 한다. 하지만 시인은 장면을 두고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coniugium vocat; hoc praetexit nomine culpam
(디도는) 이를 혼인이라 생각하고 그렇게 자신의 죄악을 감췄다.
(Aen. IV 170)


디도에게 트로이 전쟁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이네이스(출처: 위키백과)

아마 눈치를 챘을 것이다. 시인은 아이네이스를 마르크스 안토니우스와 대조시키고 있다.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방인 여자 때문에 로마를 배반한 자로 그려지곤 했다. 아이네이스는 디도의 꾐이 있었음에도 로마라는 대의를 기억하고 클레오파트라르 무찌른 아우구스투스다.  가톨릭에서 고해성사라도 할 때 쓰이는 culpa라는 단어 때문일 수도 있지만, 주피터의 뜻을 거역하는 인간, 로마의 탄생을 방해하는 모든 이는 죄인이다. 정치범이나 반역자를 넘어서 섭리에 대한 반역이었다. 악티움 해전도 어찌 보면 로마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일종의 성전으로 재해석되는 중이다. 


로마의 건국을 막지 못하는 건 인간뿐만이 아니다. 아끼고 사랑했던 인간, 디도의 자결하고 아이네이스가 카르타고를 떠나는 모습을 보고 주노는 분노한다. 트로이의 난민들이 이탈리아에 상륙하고 라틴족들의 환영을 받게 되는데, 라틴의 왕 라티우스(Latius)는 아이네이스의 정체를 알고 있고 그에게 딸 라비니아(Lavinia)를 아내로 주기까지 한다. 주노는 복수의 여신들(그리스 신화의 에리누스, Ἐρινύες, 라틴어로는 에라토 Erato)을 소환하여 이탈리아의 루툴리 족속의 지도자인 투르누스(Turnus)의 마음속에 트로이인들과 전쟁을 하고자 하는 욕망을 심는다. 투르누스가 원래 라비니아와 혼인 예정이었는데, 그는 파리스에게 헬렌을 빼앗긴 메넬라오스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아이네이스와 트로이 전쟁 생존자들은 이탈리아 땅에 요새를 건설하고 라틴족들과 치열한 전쟁을 치른다. 낯선 땅에서도 라틴족들의 공격을 막아내는 이들은 제2의 트로이 전쟁을 치르기도 하면서, 한 편으로 이번엔 이들이 호메로스의 그리스 군 역할, 침략자가 되기도 했다. 

... flectere si superos, Acheronta movebo. 천상의 뜻을 꺽지 못한다면, 저승이라도 일깨우겠노라(Aen. VIII 312)


주노의 이 대사는 밀턴의 '실낙원'의 사탄의 유명한 대사를 연상케 한다. 지옥의 힘을 빌려서라도 아이네이스를 막겠다는 그녀의 의지가 담겨있다. 주피터의 섭리는 그녀의 패배를 예정하고 있어도 계속 싸우겠다는 것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서사는 아이네이스가 투르누스를 처참하게 죽이면서 갑작스럽게 막을 내린다. 아킬레스와 헥토 왕자의 결투 씬을 연상케 한다. 


투르누스를 무찌른 아이네이스 (출처: 위키백과)

라틴족들, 그리고 주노마저 패배를 예상하기 시작할 때 주피터는 그의 아내를 찾아간다. 

ventum ad supremum est... ulteris temptare veto. 이제는 절정에 달했소. 더 이상 짐을 시험하지 마시오.(Aen. XII 803~806) 


그렇게 주노는 주피터의 섭리 앞에 무릎을 꿇는다. 하지만 주피터는 자비를 베푼다. 

morem ritusque sacrorum / adiciam faciamque omnis uno ore Latinos. / hinc genus Ausonio mixtum quod sanguine surget, / supra homines, supra ira deos pietate videbis, / nec gens ulla tuos aeque celebrabit honores.
짐은 그들(라틴족)에게 신성한 법과 의식을 내리고 하나의 라틴 언어와 라틴 이름을 지켜주겠노라. 이로부터 아우소니아(라틴족의 조상)의 피가 흐르는, 하나의 족속이 탄생하리니, 어떠한 인간보다 신들에게 충성할 것이고, 그 누구도 이들보다 그대(주노)를 열성적으로 숭배하지 못할 것이오.(Aen. XII. 837~840)

  

비록, 라틴족들은 트로이인들에게 '정복' 당했지만, 트로이인들도 라틴족으로 흡수될 것을 예언한다. 실제로 아이테이스 1권에 의하면 로물루스도 아이네이스의 후손으로 태어날 것을 예언한다. 로마는 여전히 라틴어를 사용하고 있고 라틴족의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호메로스의 서사가 로마의 문화로 편입된 것이다.  


신의 아들, 메시아, 아우구스투스

서사라는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모티브 중 하나가 사후세계를 방문하는 영웅이다. 아이네이스 제6권을 보면 베르길리우스의 영웅 역시, 아버지의 영을 만나기 위해 사후 세계로 내려간다. 그는 고대 그리스인들은 하데스라고 부른 사후 세계의 경계선인 아케론 강에 도착하는데, 죽은 자들의 영을 배에 실어 나르는 카론의 안내를 받고 건넌다. 모두 훗날 단테의 작품에 다시 등장한다. 


아이네이스는 아버지 안키세스(Anchises)를 통해 만물의 섭리에 대해서 배우고 로마의 미래에 대한 예언을 듣는다. 아버지를 만났을 때, 어느 강 옆에서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는 영혼들을 발견한다. 안키세스는 이들은 정해진 때가 오면 세상 가운데 태어날 훗날 로마의 영혼들이라고 설명한다. 

Huc geminas flecte acies, hanc aspice gentem / Romanosque tuos
너의 두 눈으로 너의 나라, 로마인들을 보거라(Aen. VI 788)


가장 먼저 언급되는 자는 다름 아닌 카이사르다. 율루스의 씨에서 나올 카이사르라고 설명하는데, 카이사르의 풀네임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다. 가이우스는 Prae Nomen이라고 우리의 'first name', 즉 부모가 지어주는 이름이다. 율리우스는 Gens Nomen, 즉 성이다(gens는 '부족' 또는 '가문' 정도). 마지막 카이사르는 그럼 무엇인가? 라틴어 남성 Prae Nomen은 10개 정도밖에 없어서 문구에서도 약어로 줄여서 표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이 외에도 사람의 개성과 정체성을 살려줄 이름이 하나 더 필요했는데, 이를 Cognomen이라고 부르는데, 우리의 호와 비슷한 개념이다. 카이사르, 그리고 키케로처럼 유명한 로마인들의 이름 중 이 cognomen이 정말 많다. 


아이네이스의 아들 이름이 율루스(Iulus)이고 그가 카이사르, 그리고 아우구스투스의 조상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카이사르의 집안은 자신들의 비너스의 후손들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었다. 안키세스가 소개하는 마지막 로마인은 바로 베르길리우스의 스폰서이자, 이 서사의 진짜 주인공이다. 

Augustus Caesar, divi genus, aurea condet / saecula qui rursus Latio regnata
신의 혈통을 지닌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 그는 미개한 라티오 땅에 새로운 황금기를 세우게 될 것이다.(Aen. VI 786~787)


 실제로 아우구스투스는 정권을 잡자마자 그의 양아버지인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신격화하고 자신을 자연스럽게 신의 아들이라고 칭하기 시작했다(DIVI FILIVS). 1세기 로마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종교는 초기 기독교가 아니라 황제 숭배 사상이었다. 소아시아에서 아우구스투스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기념비에서는 그의 탄생을 '기쁜 소식'(εὐαγγέλιον, 유아겔리온)이라고 표현하는데, 기독교인들이 전파하는 '복음'을 뜻하는 동일한 그리스어 단어다. 메시아의 부활을 설명하는 언어가 필요했던 기독교인들에게 적지 않은 영감이 되었을 수도 있다. 


로마의 평화의 제단(Ara Pacis)에 남겨진 아이네이스의 모습(추정) (출처: 위키백과)


베르길리우스의 유산 

결과적으로 로마제국은 사라진 지 오래다. 하지만, 로마가 멸망한 이후에도 독일, 영국, 나폴레옹, 러시아, 미국 등 새로운 신흥 강자가 등장할 때마다, 제2의 아이네이스가 되고자 하는 역사가 정말 많이 남아있다. 베르길리우스는 어쩌면 로마의 탄생을 넘어서 제국, 세상의 절대적 지배자가 되고자 하는 수많은 이들의 야망에 불을 붙인 걸지도 모른다. 


식민지배를 받은 한국인에겐 정서가 안 맞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네이스의 여정을 보면 가슴이 뜨겁게 타오른다. 넘사벽 강자들에게 둘러싸인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가운데 생존하는 걸 넘어서서 게임 체인저가 되기 위해서 강자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거 같다. 그런 의미에서 베르길리우스는 우리가 꼭 주목해야 할 고전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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