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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슬비 Jun 28. 2020

즐거운 나의 집

분리불안

언제부터였을까. 우리 집이 따뜻하고 행복한 공간이  . 춥고 두렵고 고통스러웠던 공간이었던 집은 언젠가부터 따뜻하고 행복한 공간이 되었다. , 엄마와 함께 있을  말이다. 이상하게 성인 분리불안인지. 엄마와 떨어지면, 어미 잃은 강아지 마냥 낑낑대는 나는 아직 자라지 못한 어린아이이다. 그건 엄마도 내심 마찬가지인 듯했다. 엄마와 나에게 너무 많은 일이 있었던 탓일 테다. 중학교 시절 우리 집은  추웠다. 가슴이 서늘했고, 우울했다.  편은 하나도 없는 듯했고, 엄마조차 빼앗긴 듯했다. 나에게 집은  그랬다. 사연이 맺힌 곳이었다. 엄마와 새아버지의 싸우는 소리, 엄마의 눈물, 남몰래 울던 나의 눈물 자국  모든 것이 묻어있는 곳이 집이었다.  가슴은 정착하지 못했다. 엄마와 나의 분리불안은  많은 사연으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집에 혼자 남겨지면,  적막감이 미치도록 불안하다. 운동하러  엄마를 기다릴 때면  시간이   같아 그냥 엄마를 따라가서 기다리곤 한다. 집에 혼자 남겨질 때면 집이 말을 거는  같다. “너는 여전히 혼자야 적막감  불안이 미치도록 두려워서 엄마를 따라나서곤 하는 것이다. 사실 매일 가는 운동에 굳이 따라나서는  낭비인데 굳이 같이 가는  말리지 않는 엄마의 마음도 나와 같을 것이다. 엄마도 혼자 나서는  두려운 걸지도 모른다. 엄마도 나와 같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엄마가 결혼할  내게 그랬다. 혼자 남겨지는  두렵다고. 너는 언젠가 엄마 곁을 떠날 텐데 엄마는 그게 두렵다고. 엄마도 나와 분리불안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에는 많은 사연이 있다.  때문에  집을 친척에게 주려고도 했었다. 어찌어찌 어렵게  없이 작게나마 ‘우리  생겼다. 이젠 아늑하고 따뜻한 우리 집이다. 무엇보다 우리 엄마가 가장 행복해했다. 빚이 없다는  행복하다는 것이다. 이제 정말 우리 집이 생긴 것이다. 예전보다 훨씬 낡고 작지만, 정말 우리 집이다. 그러나 우리는 함께 있지 않으면  집을 아늑하게 느낄  없다. 언제쯤 우리는 우리의 상처를 치유할  있을까. 언제쯤 우리는 우리의 분리불안을 극복할  있을까. 언제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보듬을  있을까. 조금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조금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너그러워지고, 조금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행복을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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