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딸과의 여행, 나트랑

by hotlionheart


새로운 질병을 진단받은 후에 딸아이는 그 어느 때 보다도 마음이 안 좋아 보였다. 올해 남은 삼 개월 동안 혼자 여행을 다니고 싶다고 했다.

10월에는 도쿄에서 유학 중인 친구에게 며칠 갔다 오겠다고 했고, 9월에는 혼자 어디든 갔다 오고 싶다고 했다. 비교적 치안이 좋은 싱가폴이나 코타키나발루에 가겠다고 했지만, 아직 건강이 다 회복된 것도 아니고, 새 기계에 적응하는 시기라 새벽 저혈당이 자주 오고, 저혈당 알람이 크게 울려도 아이가 잠에서 깨지를 못한다. 이럴 때는 내가 아이를 깨워서 쥬스를 먹여 조치를 취하고 있기에, 혼자 여행을 보내기에는 내 불안감이 컸다.

그래서 “따로 또 같이”라는 여행 컨셉을 딸에게 제안했다. 즉, 낮에는 딸아이가 혼자 다니고 싶은 곳을 다니다가 해 질 녘에 약속 장소에서 나를 만나서 저녁 시간을 같이 보내자고 했다. 딸은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여행 장소는 ‘경기도 나짱시’로 불리는 베트남 나트랑으로 정했다.

나트랑 시내의 호텔에서 2박을 하고, 공항이 있는 깜란 지역 리조트에서 4박을 하기로 했다.


나트랑에 도착해 보니 듣던 대로 한국인들이 바글바글 했다. 여행 유튜브나 블로그에서 추천했던 식당이나 카페, 기념품 상점들은 직원들이 한국어로 손님 응대를 하고 있었다. 혼자 하는 여행이 얼마나 밋밋하고 재미없는지를 익히 알고 있는 나는 딸에게 “우리 같이 다니자”라고 하면서, 엄마랑 다니면 “네 여행 경비도 절약할 수 있지 않냐”고 꼬셨다. 돈에 매우 민감한 딸은 예상보다 쉽게 동의를 했다.


나는 파워J로 여행 목적지 리스트를 만들고,

지도상의 동선과 이동 거리 및 이동 시간까지 다 파악을 해왔다. 하지만 행동파인 파워P인 딸 옆에서 내 계획은 쓸모가 없었다. 발길 닿는 데로 걸어 다니면서 로컬 밥집에 들어가 쌀국수를 시켜 먹고, 에어컨도 안 되는 뻥 뚫린 카페에서 코코넛 커피를 마시고, 한국인에게 유명한 과일가게 근처의 다른 과일가게에서 망고를 포장해 왔다.


중간에 호텔에 돌아와 쉬면서 네 스타일대로 구경했으니, 이번에는 내가 리스트에 적어온 곳들을 가보자고 했다. 나트랑 시내가 재미있었던 딸은 순순히 내 말에 따랐다. 반미판에서 소고기 치즈 반미를 사서 CCCP1 카페로 가서 음료를 시켜서 반미와 함께 먹었다. 한국 티비에도 방영됬다는 근처 기프트 샵에도 들려서 지인들과 가족들 선물을 샀다.

지인에게 추천받아서 미리 예약해 놓은 Onsi spa에서 90분 아로마 마사지를 받았는데, 마사지사들이 다른 곳 보다 실력이 좋았다. 피로를 풀고 나서 저녁에는 MOC 해산물 식당에서 배부르게 해산물을 시켜 먹었다.

나트랑 시내는 아기자기 하면서도 소소하게 구경거리가 많았다. 신기한 것은 도로에 신호등이 없는데도 사고가 나지 않고 오토바이와 차량들, 길 건너는 사람들이 뒤섞여 있다는 것이었다.


리조트로 옮겨서는 미리 여행사에 따로 신청한 호핑투어를 하루 갔다 왔다.

첫 번째 섬에서 겁 많은 나는 스킨 스쿠버 장비를 차고 가이드와 물속에 머리만 담근 후 포기하고 다시 배로 올라왔다. 물 좋아하는 딸아이는 15-20분 동안 스킨 스쿠버를 완수하고 올라왔다.

두 번째 섬에서는 가이드 도움으로 물속 물고기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세 번째 섬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선베드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호핑투어에서 체력 소모가 많았는지 딸아이는 감기 기운이 있어서 리조트에 머물렀다. 나 혼자 메인풀에서 놀고, 바닷가에 인접한 인피니트풀에도 들어갔다가, 칵테일을 시켜서 다시 바닷가 선베드에 누웠다. 같은 공산국가여서 그런지 러시아 사람들이 많아 와 있었다.


리조트 올 인클루시브 서비스를 예약해서 왔기에 식사는 매끼 뷔페 식당에서 먹었는데, 딸과 나는 푸드파이터처럼 식사를 한 시간씩 했다. 거기에 야식으로 룸 서비스를 시키거나 Grab으로 식사나 과일을 배달시켜 먹었다. Grab 배달부는 게이트 통과를 안 시켜주기에, 한밤중에 리조트 버기를 타고 게이트까지 가서 음식을 받아오고는 했다.


'먹고 자고 놀고' 하는 싸이클을 반복하다가 오늘 새벽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대충 짐 정리하고 씻고 나니 새벽 세 시가 넘어서 자게 되었다.


여행이 어땠냐고, 엄마와 갈만 했냐고, 딸에게 물어보니 좋았었다고 하면서 나트랑은 한 번 더 가고 싶다고 했다. 가기 전 보다 딸아이 기분도 훨씬 좋아져서 돌아와서 다행이다 싶다. 요즘 말로 금융치료가 되었나 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