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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뱅기세상 Mar 05. 2024

취업 실패에 대한 현실 도피 그리고 재도전

 치열했지만 행복했던 나의 20대


8. 내가 있을 자리


2008년 12월 1일 나는 1년 2개월의 운전병과 4년간의 부사관 간부 생활을 합해 5년이 넘는 군복무를 마치고 자신 있게 항공사의 문을 두드렸다. 대한항공을 시작으로 아시아나항공과 신생 항공사였던 제주항공 그리고 심지어 이스타항공까지 도전을 했지만 최종 합격의 문턱을 넘을 수 없었다. 당시 나는 군에서 항공 관련 경력을 쌓고 운항관리사와 항공무선통신사, 안전관리자등 관련 자격증을 모두 취득했지만 번번이 서류 또는 면접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다.



아마도 오랜 군생활로 정규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고 자퇴를 한 뒤 학점은행제를 통해 학위를 받은 것이 나의 발목을 잡은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아무 죄도 없는 학력을 핑계로 도전하는 것을 포기하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모든 준비가 다 되었다고 생각하고 전역을 했던 내 생각이 짧아도 너무 짧았던 것일까... 가방끈이 짧은 것이 원인이라는 생각은 취업준비에 더욱 나를 소극적으로 만들었다. 전역 후 그렇게 몇 달간의 시간을 보내다 선택한 것이 호주 워킹홀리데이였다. (워홀 이야기는 따로 다룰 예정)



취업 실패에서 도망치기 위해 떠났던 호주 워킹홀리데이는 정말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고 워홀 기간의 2년을 다 채운뒤 나는 한국으로 귀국했다. 2011년 봄, 나는 항공사 취업은 아예 포기한 채 평택의 취업박람회에 참석했고 거기서 운이 좋게 평택에 위치한 어느 외국계 회사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서류를 통과 후 회사로 이동하여 면접을 치르고 최종 합격을 했다. 그렇게 나는 20대의 마지막 해인 스물 아홉 살, 목표와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외국계 회사지만 평택의 시골에 위치한 공장에서 공장장을 도와 생산관리자로 시작을 하게 된 것이었다.



마음에 없던 일은 오래 못 가기 마련인지 1년 정도 근무할 즈음 나는 항공사의 지상 조업 업무를 담당하는 어느 GSA(Ground Service Agent) 오퍼레이션 부서에 경력직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아직 마음속에 항공분야에 대한 불씨가 남아 있었는지 마음에 없는 일을 하면서도 계속 항공분야의 이직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선택한 곳이 조업사라니...



하지만 이곳에서 나는 항공기의 무게중심을 확인하고 모든 승객이 최종 탑승 후 운항 전 기장에게 Load Sheet ( 항공기의 최종 무게중심 확인서)를 제공하는 업무를 맡았다. 군 경력 4년과 운항관리사 자격 덕분에 대리로 입사하여 해당 업무를 맡게 된 것이다. 비록 항공사의 문턱은 넘지 못했지만 이곳에서 항공기를 보며 관련 업무를 하는 것에서 행복을 처음 느껴보았다. 내가 하는 일에서 보람을 찾고 매일 아침 떠오르는 햇살과 함께 이착륙하는 많은 항공기를 볼 때면 그제야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2012년 당시 내가 담당했던 세부퍼시픽 항공과 제주항공.


조업사이다 보니 전 세계에서 계약된 여러 항공사들을 조업 지원했는데 그중에 기억에 남는 항공사는 제주항공과 세부퍼시픽 항공사다. 제주항공은 당시 계약된 고객 항공사 중 제일 많은 운항 편을 조업 지원하고 있던 항공사였고 세부퍼시픽 항공은 입사 후 첫 담당 항공사로 배정받은 항공사다. 가끔 비행계획서의 변경이나 필요한 서류를 전달할 일이 있을 때면 항공기 조종석으로 직접 이동하여 서류를 전달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필리핀 기장은 나에게 한국말로 '친구'라고 하며 편하게 대해주었다. 기장이라고 어깨에 힘주고 조업사 직원들을 무시하는 기장의 모습이 아닌 정말 똑같은 위치에서 바라보는 한 사람으로서 대해주는 그 모습이 너무 좋았다.



조업사에서 몇 달째 근무를 이어가던 나는 OO항공의 항공운항관리사 신입공채를 보고 다시 한번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도전해볼까... 또 도전했다가 떨어지면 그마저 남아 있던 나의 자존감과 자신감은 소멸해 버릴 것 같은 생각에 100번도 더 고민을 했다. 하지만 나는 선택했다.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100번이고 떨어지더라도 계속 지원해 보자! 떨어지면 마음 편히 지금 다니는 회사 계속 다니면 되지'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리고 나는 최종 학력을 보완하기 위해 어학성적과 자격증, 그리고 군경력, 외국계 회사, 지금의 조업사 경력을 상세히 기재하며 내가 왜 이렇게 몇 번의 이직을 하게 되었고 OO항공에 지원하게 되었는지 진심을 다해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그 진심이 통했는지 서류전형, 1차 실무면접, 2차 임원면접까지 모두 통과했다. 내 나이 서른한 살, 두 번의 직장을 옮겨가며 노력한 끝에 꿈을 이룰 수 있었다. 내가 스스로 한계를 지었던 짧은 가방끈을 극복하고 항공사에 취업을 하게 된 것이다. 포기하지 않으면 성공은 언젠가는 찾아온다는 말이 그때의 나에게 어울렸던 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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