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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형외과 신한솔 Feb 28. 2022

수술하다가 화장실 가고 싶으면 어떻게 해요?

정형외과 이야기

    수술하는 과의 장점도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수술하는 과의 최대 단점은 수술하는 시간 동안은 세상 무엇보다 수술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내 아이가 다쳐서 응급실에 와있다고 하자. 외래를 보는 중이거나 회진을 돌던 중이라면 환자분께 양해를 구하고 일단 응급실에 내려갈 수 있다. 근데 수술하는 중이면? 환자 배 열어 놓고, 다리 열어 놓고 내려갈 순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의사도 사람이다. 통제가 안 되는 생리 현상이 일어 난다. 당연히 급똥이 마려울 때도 있다. 학생 때 로봇 수술하시던 외과 교수님께서, 본인이 생각하는 로봇 수술의 장점은 수술하다가 중간에 화장실 갔다 오기 편한 거라고 하셨다. 일반적으로 수술장에 들어올 때는 손을 3분 이상 충분히 닦고, 가운을 입고 장갑을 껴야 하는데, 로봇 수술은 게임기 같은 콘솔에서 수술 함으로 손을 닦고 위와 같은 과정이 생략되니, 빠르게 생리 현상을 해결하고 올 수 있다.


    어차피 의사도 한 명의 인간으로서, 급하게 신호가 오면 이걸 참는 데는 한계가 있다. 신호가 오면 일단 이 수술이 내가 참을 수 있는 시간 범위 내에 끝날 수 있는지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이 판단이 매우 중요하다. (수술장에서의 의학적 판단만큼 중요하다.) 수술의 끝이 보인다면 참고 버틴 뒤 뛰어 나가는 거고, 참을 수 없으면 중간에 나가야 한다. 특히 정형외과 수술장은 무균 상태에 더 민감하다. 수술장을 중에서도 한 두 개 정도는 특별히 더 깨끗하게 관리하는 수술장으로 지정하여, 감염 환자나 개복 수술 등을 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만약에 만약에라도 실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소리다. 


    집도의가 수술장에서 정말 불가피한 사유로 잠시 자리를 비우면, 대부분 정형외과 수술에서는 irrigation을 하거나 수술 부위를 천으로 덮어 두게 된다. (그 사이에 아랫사람 보고 수술하고 있으라고 시키는 거 아니야 하고 걱정하실 수 있는데 생각보다 정형외과는 수술의 가짓수와 종류가 정말... 많고... 아랫사람한테 하고 있으라고 할만한 게 별로 없다.) Irrigation, 사전적으로는 물을 끌어온다는 의미가 있고, '관주법'으로 해석이 되는데, 말 그대로 수술 부위를 물로 씻어 내는 것이다. 사실 수술장은 무균 상태로 유지되지만 수술이란 사람이 하는지라 정말 여러 가지 변수가 생길 수 있어, 환자 피부에 있던 상재균이나 공기 중의 균이 수술장으로 들어갈까 봐 보통은 수술이 다 끝나고 나면 수술 부위를 물로 한번 깨끗이 씻어낸다. 원래는 수술이 종료되고 봉합 전에 하는 과정을 집도의가 자리를 비우게 되면 언제 오나 기다리면서 보통 전공의들이 중간에 한번 시행하게 된다. (천으로 그냥 덮어 두는 걸 선호하는 분들도 있는데, 이게 사람 마음이 수술 중에 아무것도 안 하고 기다리려면 더 불안하다.)


이런 큰 스포이드에 무균 생리식염수를 넣고 수술 부위를 씻어낸다


    다행히 나는 참을 수 있는 형태의 신호들이어서, 수술 끝나고 서로 수고했다는 인사도 못하고 수술장을 빠져나가 본 적은 있지만 아직 수술 중에 나가본 적은 없다. 앞으로 20-30년 더 의사를 하다 보면 이런 날도 저런 날도 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항상 대비는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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