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외과 이야기
비단 정형외과 수술이 아니더라도 수술장에 들어가서 수술받은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수술장에서 들어갔을 때 느껴지는 여러 감정 중에서 춥다는 감정이 있을 것이다. 특히 정형외과는 수술장을 유독 더 춥게 하는 편이라서, 마취하기 전에 대부분의 환자분들이 하는 단골 멘트 중에는
"침대가 엄청 작네요'
"수술장이 너무 추워요"
등이 있다.
가장 이상적인 수술은 무균상태로 이뤄지는 수술이다. 어떤 수술이던지, 균 감염은 원하지 않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문제는 수술을 하는 사람이 균 덩어리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사람의 피부에는 상재균 (말 그대로 몸에 상주하여 있는 균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병원성이 없이 그냥 우리 피부 위에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이 존재한다. 이런 상재균이 피부 위에 있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절개 부위로 들어가면 수술 부위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
3월이 되어 새로 수술장에 인턴 선생님과 학생 선생님이 오면, 전공의들이 수술장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을 하여야 한다. 교육을 할 때 내가 항상 하던 말이 있다.
"내가 수술장에서 제일 더럽다. 내가 똥덩어리다...라고 생각하면 뭘 해야 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 생각하기가 편해요. 가운이나 장갑으로 커버되지 않은 부위는 절대 어디에도 닿으면 안 돼요."
이렇듯 수술장에 들어오는 사람이 수술장 오염의 가장 위험인자라는 아이러니 속에서, 사람을 수술장에 안 들어오게 할 수는 없음으로, 최대한 균이 증식할 수 없는 조건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 중 하나가 온도를 낮추는 것이다. 여름에 겨울보다 음식이 더 잘 상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쉽다.
집도의에 따라 다르지만 대락 18도 정도로 수술장 온도를 낮추게 되는데 얇은 환자복 하나 입고 수술장에 들어오면 정말 춥게 되는 것이다. 사실 환자만 추운 게 아니라 수술장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도 춥다. 내가 인턴 시절의 일이다. 수술장에 수술하는 필드에 들어가지는 않고 밖에서 관절경 수술의 물을 갈아주고, 엑스레이 찍는 기계를 움직이는 일을 맡았다. 반팔 수술복으로 수술장이 너무 추워서 오들 오들 떨고 있는데, 교수님이 나를 쓱 쳐다보셨다.
"춥냐"
"아닙니다. 춥지 않습니다."
"네가 추운 건 하는 일이 없어서 추운 거다. 추우면 내가 수술장에서 하는 일 없이 죽 치고 있구나 반성하면 된다."
시니컬하신 말이었지만, 전문의가 되어서 내가 수술을 집도하게 되니, 수술장에서 추우면 항상 생각 나는 말이다. 실제로 수술장에서 수술 준비를 하는 걸 지켜보고 있을 때는 수술장이 추운데 막상 수술이 시작되면 온도 좀 더 내려 주세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조금이라도 몸이 더우면 안 된다. 몸이 더워서 땀이 나게 되면 땀이 수술 필드에 떨어지는 대 참사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슬슬 몸이 더워 온다 싶으면 최대한 온도를 낮춰야 한다.)
특히 정형외과 수술은 하지 마취, 혹은 팔만 마취하는 경우가 있어서 체간의 감각이 있는 상태에서 깨어 있는 경우가 있다. 윙 하는 톱질 소리와 더불어 냉기가 몸을 스치면, 추위를 넘어서 한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어쩌랴. 이 모든 게 더 나은 수술을 위한 과정이니, 환자분들의 이해를 바란다.
덧: 침대가 작은 이유는 의사가 환자 몸에 가까이 붙어서 수술을 해야 하는데 침대 옆에 남은 공간만큼 의사가 환자한테 붙지 못하여 수술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