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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형외과 신한솔 Mar 16. 2022

내 꿈은 의사입니다.

교육 이야기

    "I want to be a doctor"

    아이 친구 엄마의 카톡 프사를 보다가 생각에 잠겼다.  


   수년 전부터 시작된 의대 광풍은 대학 배치표의 맨 윗줄을 의대로 채워 버렸다. 요즘 입시는 '의치한수'라는 말을 들었을 때, 메가스터디의 탄생의 시기에 고교 생활을 보낸 나는 뭔가 새로운 입시와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학원이나 시스템이 등장한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의치한수는 의대, 치대, 한의대, 수의대의 약자이고, 내가 의대를 나왔음에도 왜 저 네 곳이 한 곳에 묶이는지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공부 좀 한다 하는 아이들의 꿈은 십중팔구 의사가 되어버렸다. 내가 몸 담고 있는 직업을 꿈꾸는 아이들이 많다는 건,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야 하는 일인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나는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의대를 꿈꿔본 적은 없었다. 초등학교 때 마리 퀴리 위인전을 읽고 진심 깊은 감명을 받아 정말 책이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열 번 이상 읽었다. 그때부터 내 꿈은 한결 같이 과학자였다. 과학고등학교에 입학 후 난다 긴다 하는 천재 같은 친구들을 보면서 나의 한계에 좌절을 많이 했었다. 고3 때 나는 이과형 인간이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라 과학고에서 차라리 문과로 입시를 치를까 하는 고민도 했었다. 그때 사회 선생님께서 해주신 이야기가 있다. 


    "사람이 자신의 할 일을 하였는데, 남을 도와줄 수 있는 직업은 많지 않다. 나는 네가 그런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다."


    아직 세상에 찌들지 않은 어린 소녀에게 (지금은 억척스러운 아줌마가 다 되었다.) 저 말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고, 결국은 의대 진학을 결정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은 생활인이 다 되었지만 그래서일까, 나의 버킷리스트에는 국경 없는 의사회가 항상 있고 아이들이 대학에 입학하고 나면 난 더 이상 돈을 벌지 않고 나 하고 싶은 대로 살겠다는 약속을 남편에게 받아둔 상태이다. (이 글은 나중에 남편이 딴소리를 하면 증거로 쓰일 예정이다.)


    내 나름 많은 방황과 고민의 시절을 겪고 의대 진학을 결정해서 일까. 우리 큰 아이와 작은 아이 주변에 많은 친구들이 4-6살 때 꿈이 의사라고 말하는 걸 보면 씁쓸함만 남는다. 냉정히 생각해 보자. 4-6세 아이들에게 병원은 가기 싫은 곳이다. 병원은 내가 아프고 힘들 때만 가고, 가서 재밌는 일은 하나도 없으며, 하얀 가운을 입은 무서운 선생님이 여기저기를 만지고 나를 아프게 하는 주사를 놓는다. 더군다나 이 연령대의 아이들은 의사와 치과 의사를 구별하기 쉽지 않은데, 특히나 치과는 아이들한테 공포의 대상이다. 의사가 나의 아픈 걸 낫게 해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저 나이 때 아이들은 할 수 없다. 좀 더 큰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면 치료가 끝날 때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할 줄 알지만, 저 나이 때 아이들은 일단 병원 입구만 와도 우는 아이들이 태반이다. 그런데 의사가 되고 싶다고? 이건 백 프로 부모가 주입한 꿈이다. 보통은 부모가 의사여서, 집에서 어른들이 너도 엄마나 아빠처럼 의사가 되야지라고 말하거나, 아이에게 학습에 대한 동기 부여를 위해 의사란 꿈이 강요된 경우다. 후자의 경우는 의사가 얼마나 멋진 직업이고, 사회에 필요한 직업인가에 대한 부모의 장황한 설명이 반복되고, 반 세뇌된 아이가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 다음 단계로는 그런데 의사가 되려면 공부를 잘해야 되니까, 우리 의사가 되게 공부하자 라는 말이 나온다. 설마 유치원생 한데 이런다고 싶으시겠지만, 이런 집을 한 두 집을 본 게 아니다. 물론 어릴 때 진짜 몸이 안 좋았고, 수술로 인해서 몸이 나아진 친구들이 나를 낫게 해 준 의사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어느 정도 안면을 트게 된 엄마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본의 아니게 의사라는 게 알려지면, 어머 우리 아이 꿈도 의사인데 라는 말이 돌아온다. 코로나 시대의 최대 장점은 소위 말하는 썩은 미소를 지어도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인데, 마스크 속에서는 썩소를 날리지만 겉으로는 환하게 '어머 어떻게 유치원생이 벌써 의사가 되고 싶대요'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둘 중 하나다. 아이 아빠가 의사여서요, 혹은 제가 아이한테 의사란 직업에 대해서 설명해 줬어요.


    얼마 전에 학군지에 사는 친구가 초등 의대 입시 전문 학원이 생겼다며 학원 광고를 보내 주었다. 이제 곧 의대 입시 전문 유치원도 생기지 않을까 싶다. 세상이 요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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