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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엄마 Mar 07. 2024

그림책으로 여는 수업

<중요한 사실>을 읽고

드디어 새 학기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가르치는 게 일상이지만 그래도 첫 수업은 늘 긴장되고 설렌다. 작년에 가르치던 아이들을 올해도 가르치게 되어 아이들을 파악하느라 긴장하지 않아도 돼서 그건  좀 편하다. 보통 첫 수업시간에는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갖고 수업에 대한 안내도 하는데 벌써 2년 넘게 만난 아이들이라 소개를 하기도 무색하다. 그러던 중 재미있는 그림책 한 권을 알게 되어 그림책을 읽으며 첫 수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리본으로 포장한 선물 같아 보이는 상자가 겉표지에 그려져 있다.

"뭔가 중요한 사실이 들어있지 않을까?"라는 말로 아이들의 기대감을 모았다.

"비밀을 적은 일기장이 아닐까요?"

"유언이 적혀 있을 것 같아요. 유서말이에요"

"중요한 정보가 담겨있는 책 같아요."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이 책에는 정말 평범한 사물들에 대한 당연한 사실들을 말해주고 있다. 숟가락은 밥을 먹을 때 쓴다는 것, 신발은 발에 신는다는 것, 눈은 하얀색이라는 것 등..

어떤 아이들은 '에이.. 그게 뭐야?' 하는 허무한 표정으로 어떤 아이는 '다음엔 무슨 사물이 나오려나'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집중하기 시작한다.


마지막 페이지를 남기고 "마지막엔 어떤 중요한 사실이 들어있을까?" 하고 묻는다. 아이들이 예상한 답들이 빗나간다. 그리고 종이를 넘기면 마지막 장엔 거울이 붙어있다. 몇몇 앞에 않은 아이들에게 가까이 가져가 보여준다. 거울에 자기 얼굴을 마주하고 놀라거나 부끄러운지 피해버리고 뒤에 앉은 아이들은 웃는다.  


"너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너는 바로 너라는 것이야."


마지막 페이지를 읽자 맨 뒷 줄에서 "오~ 재밌다!"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 아이는 2학년 내내 우두커니 앉아 그 자세 그대로 잠을 자는 운동부 아이였다. 덩치도 큰데 팔짱을 끼고 그대로 꿈쩍도 안 하고 한 시간 내내 잔다. 흔들어 깨워도 꿈쩍도 하지 않아 수업하다 보면 무시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상할 때도 종종 있었다. '매시간, 하루종일 렇게 꼼짝 않고 자는 건 진짜 너무 하지 않나?' 아이에게 대놓고 이야기를 해본 적도 있었는데 변하는 건 없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책을 읽어줄 때도 자지 않고 열심히 듣더니 마지막에 '재밌다'는 말을 한 것이다.

"00 이는 3학년이 되더니 수업태도가 몰라보게 좋아졌네?" 하고 칭찬을 했더니 어색하고 부끄러운 듯 웃는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싶어서 아무리 쉽고 재미있는 책을 골라가도 싫어하는 학생이 꼭 있기 마련이다. 모두가 참여하도록 하기는 정말 힘들다. 그러나 그림책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만큼 짧고 쉽지만 많은 이야깃거리와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그림책의 매력인 것 같다.


책을 읽고 나서 아이들에게 나에 관한 중요한 사실을 쓰게 했다.

"나의 많은 모습들이 있지만 그중에 중요한 사실은 무엇일까?"

 오래 고민하는 아이들도 있고 쉽게 써 내려가는 아이들도 있다.

다 쓴 후에는 반 전체가 돌아가면서 나에 관한 중요한 사실을 한 가지씩 말하게 하였다.

나는 학생이다. 나는 우리 엄마아빠의 딸이다. 나는 꿈이 있다. 나는 운동을 좋아한다...

친구들 이야기를 듣다가 작년에도 반장을 맡았던 똘똘한 학생이 말했다.

"선생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게 알고 보면 중요한 거였네요?"

"오! 맞아~ 우리는 가끔 정말 중요한 건 잊고 사는지도 모르지.."


오늘 수업에서 자신에 관한 중요한 사실을 미처 쓰지 못해 발표를 못한 여학생에게 마지막으로 그림책을 읽으며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를 물었다.

"나에 관한 중요한 사실을 아는 데는 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아! 맞아~  나에 대해 알아가는 건 시간이 필요하지^^"


이렇게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표정이 없고 무슨 생각을 하는 모르겠다고 생각한 아이들도 저마다 생각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이 무슨 신기한 것을 발견한 듯이 기쁘고 반갑다. 그리고 그 대답들이 나에게 많은 걸 생각하게 하고 깨닫게 한다.

그래서 가르치는 동안 나 역시 배우게 된다.


"이제 3학년이 되었으니 진로 진학에 대한 고민도 많아졌을 테고, 새 학기니까 올해에 대한 계획들도 세웠겠지? 그런데 그런 계획과 고민에 앞서서 나를 잘 아는 것이 먼저 필요것 같아.  나에 관한 가장 중요한 사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등을 생각하고 찾아보는 한 해를 보내기 바라."


나 역시 나에 관한 중요한 것을 생각해 보며 의미 있는 한 해를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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