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책이 좋아서
당신은 책을 읽는가? 그렇다면 책을 좋아하는가. 책을 읽는다는 건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이토록 많은 매체가 성행하는 이 시기에 아직도 책을 읽는다는 건 특별한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종종 책에 대한 고민을 한다. 쉬는 시간이 생기면 왜 유튜브가 아니라 책을 집어들고자 노력하는지, 하다못해 영화나 드라마나 애니메이션보다 유독 책을 더 가까이하려 노력하는지 말이다.
최근 나의 경험과 주변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압축성과 경제성, 논리성도 강력한 책의 장점이 되겠으나 책을 읽는 시간 자체를 유의미하게 인식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독서는 수동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활자를 뜯어보고 나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쉽게 내 시간을 가져가고 우리를 허무하게 만들기도 하는 숏폼 콘텐츠에서 벗어나 사유하고 고민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가게 하는 시간, 독서.
책의 물성을 사랑하는 사람도 있다. 손으로 집고 만지고 쓰다듬을 수 있는 종이의 질감. 쓸 수 있고 줄 그을 수 있고 훼손될 수 있는 물질의 감각.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만질 수 있는 무언가 말이다. 요즘은 전자책으로도 많이 읽지만 종이 형태의 책이 주는 아날로그적인 감각은 분명 책의 특장점이고, 다른 매체와 구별되는 지점이 될 수 있다. 게다가 한국의 출판디자인은 타국과 비교해도 많이 발전되어 있어 그 자체로 예쁘고 소장할만 하다.
생각해보자. 예쁜 표지에 그럴듯한 제목을 가진 책을 들고 카페에 앉아, 좋아하는 커피를 홀짝거리며 책장을 사라락- 넘겨보는 자신을 모습을. 아, 그럴듯하다. 이런 순간을 인스타그램으로 찍어올리면 느껴지는 꽤 괜찮은 삶을 사는듯한 내 자신. 이 역시 좋은 일이다. 책을 읽는 건 실제로 꽤 멋진 일이니까. 그런 동기로 책을 읽는 것도, 그 모습을 공유하면서 주변인들에게 영향을 주는것도 좋다.
사람들이 책을 사랑하고 자신의 삶에 편입하는 방식은 여러가지이다. 독서의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도, 책의 압축성과 효율성을 사랑하는 사람도, 책을 모으거나 책을 읽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조금은 더 깊은 형태로, 혹은 다른 형태로 책을 사랑하는 사람도 있겠다. 글을 쓰고, 책을 만들고 싶어하고, 어쩌면 출판업계에서 일하고싶거나 이미 일하고 있는 사람들. 서점에 가면 매일매일 수많은 책이 쏟아지는데 이걸 만든 사람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있을까? 이 책은 어떤 과정을 통해 세상에 나오게 되었을까? 이런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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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책이 좋아서
: 책을 지나치게 사랑해 직업으로 삼은 자들의 문득 마음이 반짝하는 이야기
좋아하는 동료들과 작은 책을 쓰고 싶었다. 신연선 작가, 김동신 작가에게 손을 내밀었더니 흔쾌히 맞잡아주었다. 세 사람 모두 10년차에서 20년차를 향해 가고 있는 업계의 허리 세대에 속한다. 꾸준히 걸어왔지만 남은 길도 많은 상태에서 방향을 가늠하는 이야기를, 그다지 무겁지 않게 해보고 싶었다.
하필 책을 지나치게 사랑하여, 직업으로 삼게 된 이들의 여전한 애정과 가끔 찾아오는 머뭇거림에 대해서 드문드문 나누는 말들을 담아보았다. 분석이라기보다는 빠른 미디어의 시대에 가장 느린 미디어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 표면에 천천히 떠오른 질문들을 모은 것에 가까울 것이다. - 들어가는 말
각자의 방식과 이유들로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읽어봄직하다. 이 책을 쓴 정세랑, 김동신, 신연선의 문장들이란, 질투날 정도이다. 글이 매끄럽게 흘러가면서도 툭툭 건져올려지는 깊이있는 고민과 주제들이 있다. 마치 물반 고기반인 강가에서 낚시대를 드리우자마자 입질이 오는 신나는 낚시를 하고있는 기분이랄까.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나도모르게 ”이건 그냥 책이 좋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출판업계에 관한 고민들이 묻어있는 책이었잖아!“ 하고 외쳤다. 물론 속으로 외쳤지만. 출판계의 깊이있는 고민과 현실들을 엿보고 싶다면 추천이다.
이 책을 쓴 세 사람에 대해 알아보자. 아마 이 세 사람이 익숙한 분도 있을 것이다.
지은이_정세랑: 2010년 『판타스틱』에 「드림, 드림, 드림」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3년 『이만큼 가까이』로 창비장편소설상을, 2017년 『피프티 피플』로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았다.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 『목소리를 드릴게요』, 장편소설 『덧니가 보고싶어』 『지구에서 한아뿐』 『재인, 재욱, 재훈』 『보건교사 안은영』 『시선으로부터』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등이 있다.
추천사 읽고 쓰기를 좋아하긴 하지만, 과열의 분위기는 다소 식혀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한 권의 책에 네 명, 다섯 명의 추천사가 붙는 경우가 늘고 있다. 주목할 만한 책이라는 강렬한 신호가 필요한 때가 분명 있지만, 읽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눈길이 덜 가기도 하고 추천자들이 겹치는 경우도 늘 수밖에 없다. 과열의 끝이 소모일 때가 많아, 우려의 마음을 표해본다 – 정세랑‘추천사를 어쩌면 좋을까?’중에서
지은이_김동신: 출판사 돌베개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다. 디자인 스튜디오 겸 출판사 동신사를 운영하고 있다. 일상적으로 쓰고 있는 인덱스카드를 기반으로 하는 「인덱스카드 인덱스」 연작을 2015년부터 제작하고 있으며, 『Open Recent Graphic Design』(2018, 2019)에 기획자 및 작가로, 『젊은 모색 2023: 미술관을 위한 주석』에 작가로 참여했다.
책 표지라는 공간에는 글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진, 일러스트레이션, 색상 등 경중을 따질 수 없는 다른 요소들도 함께 존재하며, 이런 상황에서 글자의 역할이란 책의 전체적 인상을 구성하는 일부로서 녹아드는 것이 보다 일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어떤 표지 디자인에 정렬의 축이 뚜렷이 드러난다면 그것은 다른 시각적 요소들의 중요도를 감소, 혹은 배제하면서까지 타이포그래피 중심의 디자인 콘셉트를 좇겠다는 디자이너의 의지가 있기에 생겨난 결과다. 나는 이런 자기주장을 하는 표지들과 그것을 가능케 하는 디테일들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 김동신 ‘취향의 방향을 가늠하기’ 중에서
지은이_신연선: 프리랜서 작가. 풀판사 홍보 기획자, 온라인 서점 MD로 일했다. 북 칼럼, 인터뷰, 콘텐츠 시나리오 등을 쓴다. 2017년부터 팟캐스트 <책읽아웃-오은의 옹기종기> 대본을 쓰고 있다.
무너지는 댐에 난 구멍을 제 몸으로 막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를 다독인다. 일말의 희망을 가르쳐준다. 비와 햇빛이 되어준다. 그 존재들에 번번이 감동하고 놀라는 이유는 인간이란 존재가 쉽게 변질되고 마는, 나약하고 어리석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의 허기가 타인의 병보다 중하기 때문에. 애쓰지 않으면 타인은, 언제나 나의 바깥에만 머무는 존재이기 때문에. 도무지 가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영역까지 나아가 타인과 세상의 고통을 그대로 나의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언제나 놀랍다. 나의 사랑하는 울보들. - 신연선 ‘나의 사랑하는 울보들’ 중에서
다시 한 번 묻는다. 당신은 책을 좋아하는가? 그렇다면 이들만큼 책을 좋아하는가? 아니라고? 축하한다. 책에 대해 오래 고민해온 현업자들이 들려주는, 지금까지 본적 없는 책과 출판업계에 관련된 깊이 있는 이야기들을 들어볼 수 있으니까. 이들만큼 책을 좋아한다고? 그것 역시 축하한다. 아마도 당신이 오랫동안 해왔던 고민들을 이 책을 통해서 공유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하필 책이 좋아서, 책을 지나치게 사랑해서 직업으로 삼은 자들이 들려주는 문득 마음이 반짝하는 이야기들이 당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