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신 에디터와의 만남
1.
나는 슬퍼하고 당신은 연민하기 때문일까.
당신의 글을 읽으며 내가 가진 예감, 그리하여 만남을 요청하게끔 한 그것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글과 문장에는 스스로가 말한 ‘연민’이라는 것이 묻어있어 나는 기대했다. 당신은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당신을 만나면 나는 이해받을 수 있을 거라고.
2.
생각해보니 나는 인터뷰라는 핑계로 당신과 대화를 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이 만남을 요청할 당시에는 내가 당신의 글과 문장에서 발견했던 것을 무엇이라 부르면 좋을지 아직 이름 붙이지 못했지만, 그것이 내 안에 있는 것과도 같아 나는 그 발상지를 찾아 나섰던 것이다.
나의 발화를 톱니바퀴 삼아 앞으로 나아가며, 등불삼아 흔적을 더듬어가며. 역으로 당신의 세계를 찾아내려가는 길이었다. 그 안에 담긴 어떤 부분이 내 안에 있는 것과 같다는 옅은 확신을 가지고. 이 감각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 안쪽까지 가닿으면 나는 이해받을 것만 같았다. 당신은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 뒷편에 숨겨진 슬픔까지도 말이다.
대화중 어느새 입장이 바뀌어, 나는 발화하고 당신은 노트북을 꺼내어놓고 나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장면은 이러한 우리의 만남을 단면적으로 보여준다. ‘제가 인규씨를 인터뷰해야할 것 같은데요?’ 하며 웃던 모습을 기억한다. 글을 정리하는 지금 돌아보니, 내가 찾아나섰던 그것은 당신이 ‘연민’이라고 부르던 것 아니었을까.
내가 당신을 향하여 가졌던 마음 역시 연민이라고 불러도 될까. 불쌍하다는 뜻이 아니다. 당신이 나보다 낮아보이고 나의 처지가 더 나아보여서 적선하듯 던져주는 연민이 아니다. 여기서의 연민은 근본적으로는 내가 당신과 같다는 뜻이다. 우리 안에 어쩔 수 없는 우리가 있고, 어쩔 수 없는 세상을 우리가 함께 마주하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해결할 수 없는 근원적인 한계를 마주하고 서로에게 관심 가지고 살아가는 것. 어쩌면 나는 당신과 어떤 종류의 슬픔을 공유하고 이해받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연대할 수 있다고 짐작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만남을 마무리하고 대화를 정리하는 지금, 나는 그런 짐작이 단순히 예감으로만 끝나지 않으리라는 기대를 다시금 품는다.
3.
우리는 이태원의 한가로운 한 카페에서 만났다. 당신은 나에게 달콤한 티라미수 한 조각을 사주었고, 그 쌉싸래한 단맛에 취했기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쉽게 대화에 빠져들었다. 아이스브레이킹을 위해 시작했던 작은 질문들이 우리를 녹이고 시간이라는 잔이 흘러넘칠 때까지 준비해온 질문을 꺼내들지도 못했을 정도로.
나는 누군가 실타래의 끈을 살포시 잡아당기듯 스근하고 부드럽게 내 이야기를 풀어나갔었다. 당신의 눈빛과 간간한 침묵에는 이야기를 멈추지 않게 하는 힘이 있다.
당신이 학부와 석사과정에서 법학을 공부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나는 이런 검사나 판사 앞에서는 내 죄를 쉽게 실토할 것만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 당신이 되어야한다면 변호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실없는 상상을 한다. 앞으로 다큐멘터리를 찍게 되었다고 했고, 더 나은 세상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놓으며 ‘연민’을 말하던 당신이 누군가를 판결하거나 구형하면서 가혹해지지 않기를 바란다는 생각과 함께.
당신은 어쩌면 이 만남에서 나에게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이 만남에서 오래 떠든 것은 나였기 때문에. 그러나 혹시 정말로 당신이 나를 이해할 수 있다면 언젠가 내 삶의 변호를 맡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4.
나는 우리가 만약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면 그 통로가 '슬픔'이라고 짐작했다. 어쩌면 당신은 슬픔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는 않는 듯 했고 슬픔을 따로 구분하지 않아 잘 모르겠다고 말했지만 나는 당신에게도 당신이 지나온 얼마간의 슬픔이 있음을 멋대로 짐작해보았다.
그리고 2023년이 어떤 해였냐고 묻는 나의 질문에 다사다산한 한 해였다고 답하고 뒷이야기를 축약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앞으로는 좋은 일이 더 많을 거라는 나도 쉽게 믿지 않는 희망을 또 건네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이 언제나 나에게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 짧은 말이 당신 주위를 맴돌다가 어느 때에 어딘가 자신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자리에 찾아가길 바랐다.
우리가 인터뷰 막바지에 나눈 것처럼, 그리고 내가 당신에게 선물한 책의 핵심주제처럼 우리가 오해 없이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슬픔에 온전히 가닿는 일은 아마 불가능하겠으나 그 노력을 멈추지 않는 일들이 결국 세상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든다고 믿는다.
우리는 최근 다양한 작품에서 복잡한 인간과 삶을 납작하고 단순하게 표현하고 있음을 안타까워했다. 다시 한 번 힘주어 적자면, 당신이 바라는 더 나은 세상은 ‘서로에게 연민을 가지는 삶’이라고 했었고, 나는 사실 인간의 복잡성에 귀기울이고 한 사람의 세계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리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는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슬픔과 연민, 그리고 어떤 예감에 기대어
많은 슬픔이 자신을 정확하게 읽어내줄 누군가를 찾고 있고, 여전히 연민의 마음을 가지고 요약될 수 없는 삶의 복잡성을 찾아나서는 이들이 있다고 믿는다. ‘나’라는 세계를 통과한 주관적 영역이기는 하지만 남영신 에디터와 나의 만남은 그러한 희망의 단면이라고, 그 날의 만남을 떠올리며 생각한다.
5.
나는 우리가 서로를 찾아내는 불가피한 순간이 있다고 믿는다.
내가 졸업작품으로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을 빌려 찾아나섰던 이야기는 ‘장애인의 문화예술’에 관한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한 탓에 자주 다쳤고, 공중에서 두 바퀴를 돌아 목으로 떨어졌던 21살의 어느 날 나는 장애가 나의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지금까지 나는 그저 운이 조금 좋았을 뿐이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특정한 약물이나 도구의 도움 없이 생활하기 불편을 겪는 것도 장애등급을 판정받지 않았을 뿐 그 스펙트럼 선상에 있는 것 아닐까. 예를 들면, 보편적이여서 잘 인식하지는 않지만 안경을 껴야만 선명하게 앞을 볼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보청기와 의족과 안경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 나도 라섹수술 이후 한동안 부작용으로 심각한 안구건조증과 빛번짐이 생겨 인공눈물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했었다. 그런 것도 스펙트럼 선상에 있는 것이고 장애와 그리 멀지는 않은 이야기일 것이다.
‘장애’라는 주제는 그렇게 어느 날 나에게 찾아왔고, 내가 외면할 수 없는 불가피한 것이 되었다. 나는 이 이야기와 함께 채식을 하던 옛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환경에 관한 이유나 개인 체질과 건강에 관한 이유로 채식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와는 다르게 어느 날 비건이 될 수밖에 없었던 누군가의 이야기. 고기를 보며 남의 살덩이를 씹는다는 감각을 하면서부터 ‘안’ 먹는 것이 아니라 ‘못’먹는 것이 되어버린 누군가의 이야기 말이다.
우리 안에 돌이킬 수 없어지는 사건들은 어쩌면 그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오고, 누군가의 삶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에 되는 순간 역시 불가항력적인 형태로 찾아오기도 한다. 나는 이렇게 몇가지 문단과 긴 문장을 통해 우리의 만남이 필연적이었다고 적는다. 내가 당신의 글을 읽고 만남을 요청한 것은 그저 일어날 일이 일어났을 뿐이라고.
그래도 결국에는 이런 말이 전하고 싶었던 거겠지. 당신이 그런 문장을 써주어서 고맙다고. 서로에게 연민을 품는 세상을 꿈꾸는 것은 여러 가지 슬픔에도 절망하지 않는 강함이라는 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덕분에 나는 잠시 위로받았다고 말이다.
그리하여 나는 당신의 글을 지나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슬픔이었고 당신은 연민이었기 때문에. 이제는 당신의 연민이, 당신의 글이 그것이 필요했던 다른 이에게 닿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쓴다. 그리고 당신이 글 쓰는 일을 멈추지 않기를, 힘주어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