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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규 Oct 23. 2024

[Review] 투란도트

웅장하고 압도적인 규모로 경험하는 오페라의 정석 - 투란도트



오페라 ‘투란도트’가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막을 열었다. 한국와 이탈리아 수교 140주년이자, 푸치니 서거 100주년 기념의 최초 내한 공연인 ‘아레나 디 베로나 오리지널’은 2024년 10월 12일 토요일부터 10월 19일 일요일까지 진행되었다.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시점에 특별한 기회로 찾아오는 만큼 대한민국 최대 규모 실내공연장에서 공연을 선보였다.


오페라는 잘 알려진 대로 미술, 음악, 춤, 연기 등이 결합된 장르이다. 뮤지컬과도 유사한 측면이 있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오페라는 모든 대사가 노래로 표현된다는 점이다. 또한 오페라는 성악을 베이스로 한 노래를 부른다. 뮤지컬도 대사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한 특유의 창법이 있지만 오페라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투란도트는 그 중에서도 손꼽히는 고전 중에 한 작품이다. 피가로의 결혼,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 사랑의 묘약, 토스카 등 다양한 작곡가의 작품들이 있지만 투란도트가 한국인들에게 특히 유명한 이유는 대표곡 <공주는 잠 못 이루고> 때문일 것이다. 




공주는 잠 못 이루고 (Nessun Dorma)는 작품 중후반부에 등장한다. 왕자가 투란도트 공주가 내는 문제를 모두 맞추고 난 후에, 날이 밝기까지 자신의 이름을 맞춰보라는 일종의 문제를 내고 아침을 기다리며 새벽에 부르는 노래이다. 


오페라 음악 고유의 웅장함과 아름다운 멜로디 그리고 폭발적인 후반부 고음까지 인상적인 느낌을 주는 오페라 대표곡으로 꼽힌다. 초콜릿 페로로로쉐 광고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학창시절 음악시간에 필수적으로 짚고 넘어가는 작품 중 하나라서 대중적으로도 익숙한 음악이다. 


이 곡 하나만으로도 투란도트 오페라 내한이 가지는 의미가 꽤 크게 다가오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게다가 전 세계 오페라 배우들이 꿈꾸는 대표 무대 중 하나인 ‘아레나 디 베로나’의 내한이기 때문에 오페라를 사랑하는 사람은 물론 오페라 음악의 전율을 실제로 느껴보고 싶었던 사람에게는 놓치기 싫은 기회인 것이다. 


이번 작품의 연출은 ‘프랑코 제피렐리’가 맡았고 마에스트로 ‘다니엘 오렌’이 합작했다. 무대에 오르는 주연 배우도 이름을 검색해보면 세계적인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거장들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무대에는 수많은 배우들과 출연진이 함께해서 압도적인 스케일을 보여주었다. 


투란도트는 푸치니의 유작이기도 하다. 그가 마지막까지 이야기를 마무리하지 못해 남겨진 미완성작을 다른 이가 푸치니의 스케치를 바탕으로 완성한 작품이라고 한다. 푸치니가 실제로 집필한 부분은 ‘3막 류의 죽음’까지이다. 그가 이 작품을 직접 마무리했다면 어떤 내용으로 끝마쳤을지 궁금하지만 투란도트는 유작이자 미완성 작품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남았다. 


투란도트의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서늘하고 흥미롭다. 남자에 대한 깊은 불신을 가진 공주 투란도트는 자신이 내는 세가지 문제를 맞추는 사람과 결혼하겠다는 말을 내건다. 그의 미모의 홀려 페르시아 왕자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찾아와 문제를 풀려고 시도했다가 참수를 당하기도 한다. 


몰락한 나라의 왕자인 칼라프는 우연히 투란도트에게 반하게 되고 투란도트의 사랑을 얻기 위해 문제에 도전하게 된다. 나라의 대신인 핑, 팡, 퐁은 아까운 목숨을 버리지 말라며 만류하지만 칼라프의 마음을 꺽을 순 없었고 결국 그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문제를 푼다.  


공주의 예상과는 달리 칼라프는 모든 문제를 풀었지만 공주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진심으로 투란도트를 사랑하는 칼라프는 아침이 뜰 때까지 자신의 이름을 맞추지 못하면 자신의 아내가 되어야 한다는 유예시간을 준다. 


칼라프의 이름을 알고 있는 아버지와 그의 시녀 류는 사람들에게 잡혀 고문과 심문을 당하는데, 칼라프를 사랑하는 류는 그를 지키기 위해 자결한다. 이번 작품에서 칼라프는 자신의 승리가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아침이 밝기 전 투란도트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며 다시 한 번 목숨을 내건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거치며 사랑을 깨달은 공주는 결국 칼라프를 받아들인다.


푸치니의 작품치고는 드문 해피엔딩을 취하는 작품이다. 그의 스케치를 통해 완성되기는 했지만 미완성 작품이었던 만큼 연출에 따라 보는 재미가 달라진다고 하던데, 기회가 된다면 다른 연출가의 연출과도 비교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왕자 칼라프가 문제를 풀기 위해 황제 앞에 서는 장면이었다. 처음에는 벽이라고 생각했던 병풍이 열리면서 엄청난 스케일의 황국 무대가 등장하는데 그야말로 눈이 번쩍 떠지는 기분이었다. 


이번 작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었다. 스태프까지 포함하면 1000명에 달하는 규모라고 하고, 무대에 등장하는 사람의 수만 세어봐도 족히 100명은 넘어보였다. 초반에 주연배우가 조용히 노래하고 조연들이 바삐 움직일 때는 주연배우의 위치를 찾기 어려웠고, 발소리 때문에 발소리가 크게 들리는 경우도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해서 잠시간 이정도 규모의 배우가 꼭 필요했을까 의문을 품기도 했다. 


그런데 황궁 장면이 등장하는 순간 그 압도적인 광경에 납득이 갔다.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납작 엎드려 있고, 황제가 앉아있는 의자 아래에는 화려한 소품들로 치장한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 순간의 경험만큼은 다른 어떤 공연에서도 쉽게 대체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커다란 규모를 자랑하고 암도적인 무대경험을 보여주는 뮤지컬도 많지만 이번 공연은 그 기준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아쉬운 부분도 분명 있었다. 오페라를 위한 전문 공연장이 아니다보니 관객석 의자나 음향에 있어서 부족함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고, 워낙 많은 사람이 동원되다보니 주연배우에게 온전히 집중하는데에도 무리가 있었다. 내한 공연인 만큼 전광판에 가사 해석과 줄거리를 띄워주기도 했는데 크기가 다소 작고 멀었고, 무대와는 거리가 있어 번갈아서 보다보면 흐름을 따라가기에 무리가 있는 순간도 있었다.   

그럼에도 투란도트가 보여준 거대한 규모의 공연이 보여주는 압도적인 경험만큼은 잊지 못할 것 같다. 눈 앞에서 오페라를 경험하고,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직접 현장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의미가 있는 공연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는 규모를 줄이더라도 전문 음향 시설이 갖춰진 공간에서 진행되어도 좋을 것 같다. 


실제로 경험한 오페라는 뮤지컬과는 또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오래된 역사를 가진 아름다운 오페라를 현장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의미있는 기획 덕분에 흔치 않은 경험을 했다고 느낀다. 아레나 디 베로나 오리지널, 투란도트. 언제 또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 기대하며 글을 닫는다. 


아트인사이트 전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2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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