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과 나의 이야기_밑줄서점 이유미 작가님께
안녕하세요, 작가님. 지난주 금요일에 서점 방문했던 김현승입니다. 책에 사인해주시느라 이름을 물어보셨었지만, 이름보다는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를 말씀드려야 더 쉽게 기억나실 것 같아요. 육아휴직 후 복직을 앞둔 친구와 함께 방문했었고, 저는 9년 다니던 직장에서 병가를 쓰고 잠시 쉬고 있는 중학교 교사구요. 어쩌다 병가를 쓰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지경이 되었는지 털어놓으면서, 작가님께 책도 몇 권 추천받고 한 시간 정도 머물다가 나왔어요. 왕복 세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였는데도 갈 때보다 돌아올 때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는 게 신기했어요. 저한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특별한 시간을 선물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게 됐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제 속마음을 털어놓은 건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어요. 그 동안 제가 알고 있던 제 성격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구요. 아마 이 정도 강도의 슬럼프를 처음 경험하는 일이라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집에 오는 길에 생각해보니 작가님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러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방문하기 며칠 전부터 DM으로 문 여시는 날 맞냐고 호들갑스럽게 확인까지 했던 제가 아무 사연 없이 방문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작가님은 이미 알고 계셨던 것 같아요. 막상 처음에 문 열고 들어갔을 때는 마스크 위로 보이는 작가님 첫인상에 살짝 쫄아서, 짐을 내려놓지도 않고 그저 빙글빙글 돌면서 책만 구경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짐 내려놓고 천천히 둘러보라는 작가님 말씀에 한 번, 책 추천 부탁드린다는 제 말에 일단 자리에 좀 앉으라는 말씀에 또 한 번 마음이 놓였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만약 작가님이 제가 들어가자마자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고, 어떤 책 좋아하냐고, 이것저것 먼저 밝게 질문을 하셨다면, 분명히 저는 그 밝은 기운에 맞춰서 행동했을 거예요. 작가님의 ‘자기만의 (책)방’을 읽고 밑줄서점이 궁금해져서 방문했다고, 그냥 팬 사인회 행사에 참석한 흔한 독자들 중 한 명처럼 살갑게 굴다가 사진 찍고 나왔을 것 같아요. 사실 서점이라는 공간이 저에게는 마음의 병원 같은 곳이어서 여행을 가더라도 반드시 그 지역 서점을 한두 개 검색해서 들르고, 특별히 살 책이 없더라도 주기적으로 서점을 들르는 게 취미이기도 해요. 그런데 그게 늘 혼자만의 시간이었지, 서점에서 만난 사람에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 본 적은 없었으니까요. 종종 서점에서 진행하는 독서 모임이나 글쓰기 모임에 가더라도 모임 분위기에 적당히 어울릴 만한 가면을 쓰고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어요.
작가님이 테이블에 앉자마자 고민을 말해보라고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병가 중이라고요? 어쩌다가…….’하고 말끝을 흐리셨을 뿐인데, 저도 모르게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학교라는 직장이 저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어떤 태도로 살아왔는지 정리도 안 된 말들이 주루룩 눈물처럼 쏟아냈어요. 두서없이 뒤엉킨 얘기였는데도 작가님은 전혀 당황하지 않으시고 제 상태를 알아봐 주셨어요. 그리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직접 겪으신 작은 일화들을 얘기해 주시면서, 제가 그동안 저 스스로를 완벽주의라는 출구 없는 구석으로 몰아넣고 숨 고를 여유도 없이 달려오다가 탈진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셨어요.
사실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너 너무 열심히 하려고 해서 그래.’, ‘그냥 적당히 살아.’, ‘요령 피울 줄 아는 것도 능력이야.’ 하는 종류의 조언들을 많이 들어왔지만, 그럴 때마다 그 문장들이 별 감동 없는 자기계발서에 그럴듯하게 늘어놓은 글귀처럼 느껴졌어요. 심지어 가족들의 입에서 ‘교사가 배부른 고민한다.’, ‘방학 때 쉬고도 회복이 안 되냐.’, ‘회사 다니는 사람들은 더 힘들어.’하는 말을 들으면 그게 칼처럼 날아와서 꽤 오래 갈 통증을 남기더라고요. 그런데 작가님이 말씀 중간에 ‘우리같은 사람들은 그렇잖아요.’ 하시는데, 그게 얼마나 따뜻하게 느껴졌는지 마스크 안으로 울컥하는 걸 숨기느라 애썼어요. 그걸 듣고도 제가 이렇게 말했던 게 기억나요. 학교는 내가 내려놓는 만큼 아이들한테 쏟는 에너지가 줄어드는 거라서 죄책감이 너무 크다고요. 그랬더니 작가님이 그러셨어요. 그 많은 애들 전부한테 다 쏟을 에너지가 어디 있냐고. 그게 말이 되냐고. 정말 맞는 말이고, 그동안 많이 들어왔던 말이기도 한데 유독 작가님 말에 위로받은 이유가 뭘까 생각했어요. 작가님은 학교 밖에 있는 사람이고, 제가 어떤 사람인지 오래 봐오지 않은 사람이어서 저한테 해주시는 말씀들이 더 객관적으로 느껴진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제 주변에는 다 학교 상황을 빤히 알고 있는 동료 교사들이 대부분이고 고민 상담을 할 정도의 관계에서는 제 성향을 대략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 그들이 작가님과 똑같은 말을 해주더라도 그저 저를 위로하기 위해서 하는 말로 들렸었나봐요. 그래서 저는 적당히 일하면 적당히 했다는 찝찝함에 결국 다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날 생각을 못하고 매일 매일을 버텨왔어요. 수업도 만족스러워야겠고, 내 업무도 정해진 일정에 차질없이, 틀림없이 해내야겠고, 내 업무도 남의 업무도 아닌 애매한 업무가 나한테 오더라도 잘 해내야겠고, 아이들이나 선배 교사들에게도 인정받고 싶고. 적어놓고 이제야 보니 욕심이 과하긴 했네요. 그래서 학기 중에는 퇴근 시간이랄 게 딱히 없이 늘 노트북 싸 들고 집에 와서 지쳐 잠들기 전까지 일하고, 주말에는 다음 주 업무 당겨서 하는 게 일상이었어요. 혹시 주말에 개인적인 일로 업무를 못하게 되면 불안해서 전전긍긍, 방학 때는 밀린 연수 듣고 다음 학기 준비하고. 그러다가 작가님 말대로 정말 번아웃의 순간이 찾아오니, 가만히 있어도 울컥울컥 계속 화가 나더라고요.
다른 직장인들한테는 연봉보다 중요한 게 워라밸이니 퇴근 시간 이후의 새로운 삶을 찾으라고 하면서, 교사가 ‘워라밸’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면 일 안하고 안정적인 월급 받으려고 하는 양심 없는 사람 취급을 하는 주변의 시선에도 화가 났어요. 그게 저를 향한 시선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냥 화가 나더라구요. 수업 준비와 학부모 전화 상담으로 매일 퇴근 시간 넘겨 일하는 교사에게 ‘이런 교사가 참교사’라는 문구를 붙여 소개하는 기사글만 읽어도 화가 났거든요. 화가 쌓이니까 몸이 망가지고, 몸이 망가졌는데도 늘 걱정하면서 일에 매달리는 습관은 관성처럼 남아서 쉽게 바뀌지 않더라구요. 그러다가 결국 첫 아이를 유산했어요. 일은 다 시켜놓고 웃으면서 성과는 다 빼가는 상사들 때문에 몸에 분노가 쌓여서 자다가도 깨고, 마스크를 쓰고 수업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도저히 못하겠다고 드러누웠어야 했는데 또 그러지를 못했어요. 괜한 책임감으로 버티다가 첫 아이를 8주 만에 잃고 나서야 이게 뭔가 싶더라고요. 교사가 되기 위해 올인했던 시간들, 그리고 9년 동안 쉬지 않고 일했던 시간들이 전부 바보같이 느껴지고 학교가 원망스러워지니 30년 조금 넘게 살면서 옳다고 생각했던 삶의 방식들이 계속 흔들렸어요.
작가님 만났을 때 이런 구체적인 이야기까지 다 꺼낸 건 아니었는데도, 그때 해주신 말씀들이 저한테는 상처에 바르는 연고처럼 느껴졌어요. ‘호-’ 불어주는 간지럼 없이, 그저 핵심적인 문장들을 툭툭 꺼내주셔서 더 효과가 좋았던 것 같아요. 직장과 휴식 공간의 경계에서, 일하는 자아를 휴식하는 자아로 빠르고 엄격하게 전환할 것, 경력있는 사람들보다 젊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능력을 요구하는 사회가 이상한 거니까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 것, 잘하려는 압박감에서 벗어날 것, 대충해도 괜찮다는 것,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얻는 조언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 짧은 시간 동안 작가님이 말씀해주신 내용들을 간단히 메모해두었어요. 밑줄서점 앞에 놓인 작은 칠판에 쓰여 있던 문장도 함께요.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지 알게 됐다. 오늘이 망가지면 도미노처럼 내일도 망가진다는 걸 몰랐다. 오늘을 망치는 것, 망치는 오늘이 쌓이는 것, 그건 미래를 잃는 것이기도 했다. (집을 쫓는 모험 중)’
원고 마감이 코앞인 상황이셨는데도 무작정 찾아간 저에게 시간을 내어주셔서 감사드려요. 추천해주신 책 두 권보다 먼저 작가님 책 <그럼에도, 내키는 대로 산다>를 읽었어요. 공감이 가는 문장에 밑줄을 치려다가 너무 많아서 포기했어요. 다 읽고 나서 작가님 말씀이 저에게 더 와 닿았던 이유를 또 한 가지 찾았어요. 여름을 못 견디게 싫어한다는 것 하나만 빼고는 제가 작가님을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작가님이 책에 담으신 사소한 일상에서의 모습들이 제 모습 같아서 웃다가, 한숨 쉬다가, 소름도 돋아가며 읽었어요. 책에서 ‘어떤 책은 반드시 읽는 ‘시기’, 즉 ‘때’와의 궁합이 있다.’라고 하셨잖아요. 저한텐 이 책이 그런 것 같아요. 작가님이 한 시간 동안 말로 꺼내주신 그 여러 문장들 사이에 피와 살이 도톰하게 붙어서 한 권의 책이 되어 있더라고요.
학교를 그만두고, 안 그만두고의 문제를 떠나 삶의 태도를 전환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은 분명한 것 같아요. 학교를 쉬는 동안, 읽고 쓰는 것만으로도 안 쉬어지던 숨이 쉬어지더라고요. 그리고 언젠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타이밍이 오면 억지로 움직이지 않아도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빠르게 이루어지더라는 작가님의 말씀이 이상하게 힘이 됐어요. 교사가 되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도 맞지만, 또 다른 기회가 생긴다면 조금은 다른 공간에서 평가나 입시로부터 자유로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 공간을 꾸릴 기회가 올 수 있을지, 꼭 학교가 아닌 다른 공간에서만 그게 가능한 것인지 지금은 여러 가지 생각들이 엉켜 있지만요. 이제 단거리 달리기 하다가 뻗지 말고, 장거리 달리기나 장거리 걷기처럼 내 호흡에 집중하면서 살아보자 생각하려고요.
짧고, 단백하게 쓰는 걸 잘 못해서 편지가 너무 길어졌네요. 밑줄서점 때문에 거의 가본 적도 없는 안양이 좋아지려고 해요. 이런 편지 보내고 나서 다음번에 방문하면 되게 쑥스러울 게 분명한데, 그래도 내키는 대로 살라고 하셨으니 보내렵니다. 그날 작가님과 만났던 시간에 대한 감사함과 작가님의 문장에 대한 애정이 잘 닿았으면 좋겠네요^^
2021. 6. 30. 서울 00동에서. 김현승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