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사대, 지극히 사적인 부부의 대화
배가 고프다는 아이들에게 먼저 저녁밥을 내어주고 나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공동저서의 편집 마감일이 코 앞이라 자투리 시간에도 집중력을 발휘한다.
곧 남편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다녀오셨어요~”. 아이들의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나는 일어나지도 않고 그대로 앉아서 하던 일을 마저 한다.
안방으로 들어온 그에게 고개를 돌려 말한다.
“왔어?”
“일 해? “
“응.”
나는 다시 노트북 화면에 눈을 고정시킨다.
주방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전기밥솥에서 밥을 푸는 소리, 숟가락 젓가락을 챙기는 소리.
1시간쯤 후에 거실로 나가니 식탁에 차려놓았던 반찬이 정리되어 있다. 하지만 주방으로 들어가니 역시나 엉망진창이다. 접시 채로 냉장고에 넣어두었거나, 아주 조금 남아있는 음식을 반찬통에 넣어두었다.
“에휴~”
난 한숨을 쉬며 남은 음식을 꺼내 음식물쓰레기통에 버린다. 그리고 외친다.
“오늘 설거지 담당 누구야?? “
일요일 오후, 옷바구니에 남편의 셔츠가 쌓여있다. 집안일 중에 화장실 청소 다음으로 싫어하는 일이 다림질이다. 그래서 매번, 다림질을 몰아서 한다.
“자기 옷은 본인이 직접 다려서 입으면 안 될까?”
나는 매번 똑같은 말을 하고, 그는 매번 내 눈을
피한다.
“웃지만 말고 대답을 해!!”
그래도 대답이 없다.
그 입을 확~ 다려줄까 보다!!!
일주일치 셔츠를 한 번에 다리고 나면 이마에 땀이 쏟는다. 하…..
“자기 옷은 본인이 직접 다려 입으면 안 될까?? “
남편과 함께 저녁 산책길에 나섰다. 낮 동안 무더웠던 공기가 시원하게 변해 있었다. 밀라노의 여름밤은 꽤 밝다. 저녁 9시인데도 사물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다. 서로의 속도를 맞춰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나 이탈리아어 좀 더 잘하고 싶어. 단어는 많이 아는데 회화가 안 되니까 좀 답답해. “
“온라인 수업 한번 찾아봐. 잘 찾아보면 저렴하게 할 수 있던데.”
“나 생활비로는 부족한데?”
“그 정도는 내가 해줄게. 이탈리아어 잘 배워두면 나중에 다른 일 할 수 있는 기회도 있을 거고. “
“뭐야, 은근히 내가 돈 벌길 원하는 거야? 취직하길 원하는 거야? “
“그건 아니야. 난 지금이 좋아.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 할 일 하는 거. 자기가 회사 다니면 우리 모두 힘들어질 것 같아. 퇴근하고 집에 와서 저녁 할 수 있겠어? 집안 꼴이 말이 아닐걸. “
“맞벌이하면 집안일은 함께 나눠서 해야지.”
“그러니까. 난 맞벌이보다 지금이 좋아. 다행히 나 혼자 벌어도 생활이 되니까. 회사에서 일하고 퇴근하면 진짜 아무것도 못하겠어. 에너지가 없어. “
“그래도 가끔 설거지는 해주면 안 돼?”
“내가 못하니까 애들 시키잖아. 용돈 줘 가면서.”
“암튼 당신이 이렇게 회사일만 할 수 있는 건 내가 집안일과 애들 일을 다 하기 때문이라는 걸 명심해. “
“그렇지. 인정해. 각자 가정에 맞는 삶이 있는 거지. “
“그럼 생활비 좀 올려줘~“
“이탈리아어 수업비 내준다니까.
알다시피 난 이상적인 가정에서 자라질 않았잖아. 그래서 그런 걸 잘 모르는 것 같아. 편견도 없고. 만약 엄청 가정적이고 화목한 아버지 아래서 자란 여자랑 결혼했다면 아마 서로 힘들었을 것 같아. 그건 자기도 마찬가지인 것 같고. “
“아니거든? 나 가정적인 거 좋아하거든?”
“잘 생각해 봐. 아닐 거야…. “
“하긴, 난 청소에 내 에너지를 쓰는 게 싫어. 그 에너지를 나를 위해 쓰고 싶지. 너~~ 무 더럽지만 않게 살면 그만이지 뭐. 우리가 서로 안 불편하고 만족하면 된 거지.
그래도 다림질은 각자 하면 안 될까?
“매번 다림질 해줘서 고마워.”
“내가 원한 대답은 이게 아닌데….“
동문서답하는 그를 흘겨 보았다.
난 깔끔한 성격이 못 된다.
집안 곳곳에 먼지가 쌓여있다. 이 많은 먼지는
어디서 오는 걸까?
베란다 청소도 어쩌다 한번.
화장실 청소도 마음먹었을 때.
지워지지 않는 물때를 보며 나도 깔끔한 사람이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그 시간에 책을 더 읽거나 글을 한자 더 쓰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어쩌면 나보다 더 둔한 남편이라서 다행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