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량 Jun 25. 2024

의미 있는 장소가 있다면,힘겨운 오늘도 이길 수 있어요

편지 왔어요

Cari, La mia amica!

Ciao! Come stai?

spero tu stia bene!




오늘의 편지는 왠지 이탈리아 말로 시작해보고 싶었어요.

혹시, 놀라셨나요? 사실 엄청 간단한 몇 마디인 인사말이에요. 이탈리아어가 생소한 작가님(과 이 편지를 훔쳐보시는 독자님들)을 위해 해석을 해드릴게요.


"친애하는 나의 친구에게!

안녕, 잘 지내니?

네가 잘 지내기를 바래!"


저와 작가님은 여전히 존대를 하는 사이지요. 몇 년 전에 서로 말을 놓고 언니, 동생 해보는 건 어떤지 제가 여쭤봤을 때 작가님이 하셨던 답변이 떠오릅니다.


"작가님과는 언제나 존대하는 사이로 남고 싶어요. 작가님은 영원한 저의 작가님이시니까요."


작가님은 이 말을 잊어버렸을 수도 있지만, 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어요. 작가님은 늘 저를 "저의 작가님"이라고 불러주시는데, 그 단순한 언어가 제 자존감을 한껏 추켜올려줍니다.


한국말로는 존대하는 사이지만, 이탈리아 말로는 말을 놓고 싶었어요. 이탈리아에서는 조금 친하거나 친분이 있는 사이끼리는 존대를 하지 않거든요. 나이와 상관없이 몇 번 본 사이라면 Ciao(차오)라고 인사해요. 전 그게 참 좋더라고요.


매번 우울을 담아 편지를 써서 미안하다 하셨지요. 작가님의 우울을 편지에 담아 보내는 순간만큼은 그 우울의 양이 조금 덜어질 거라 생각하니, 전 안심이 됩니다. 가까이 있었다면 함께 만나 수다를 떨거나 술잔을 기울일 텐데 우린 너무 멀리 있으니 그럴 수 없잖아요. 이 편지라도 작가님께 위안이 된다면 전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


요 며칠 밀라노의 날씨는 굉장히 이상했어요. 며칠전만 해도 여름이 막 시작한 것처럼 뜨겁더니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어제는 30도를 웃돌았는데, 오늘은 15도 가까이 떨어졌어요. 아침마다 날씨를 확인하고,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어요. 지난주에는 밀라노에 흙먼지가 날렸습니다. 공기 중에 남아있던 흙먼지가 비와 함께 떨어지더니 온 세상을 흙투성이로 만들었어요. 밀라노에 2년 넘게 사는 동안 이런 일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사람들 말로는 저~기 바다 건너 아프리카의 모래 먼지가 바람에 날려 여기까지 왔다고 하네요. 지구의 어느 곳은 비가 오지 않아 흙먼지가 바다를 건너 날아가고, 또 어떤 곳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홍수가 나고..... 갈수록 기후변화를 체감합니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겨우 쓰레기 분리수거라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플라스틱을 줄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마트에 한번 다녀오면 플라스틱이 쏟아지니, 마트를 끊을 수도 없고 말이죠....


지난주부터 저는 "장소"에  대해 생각했어요. 저에게 위로가 되는 장소가 있는지 물어보셨지요? 처음엔 한 곳이 떠올랐는데요,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장소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어떤 장소를 작가님께 말해야 할지 고민이 되는 거예요. 고민, 고민하다가 그냥 저에게 '의미'있는 장소 몇 가지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첫 번째 장소는 바로, 해남 땅끝마을입니다.

이곳을 말하려면 26살의 저를 살짝 보여드려야 할 것 같아요. 당시 저는 종합병원 간호사 3년 차였습니다. 병원 기숙사에서 살았고요, 병원 일이 어느 정도 익숙해진 때였지요. 그런데 친했던 기숙사 동기들이 줄지어 결혼을 하고, 하나 둘 기숙사를 떠나버렸어요. 저는 '빈 둥지 증후군'처럼 외로움을 느꼈지요. 게다가 1년을 만난 남자친구와 헤어지기도 했습니다. 제가 더 좋아했던 사람이었는데 그와의 미래가 도저히 그려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헤어질 결심을 했지요. 그와의 사진과 편지를 모두 버리고, 커플링을 그에게 주고, 미니홈피에 남아있던 그의 사진도 모두 삭제했어요. 그렇게 모두 지우고 나니, 그와 나 사이에 남은 건 아무것도 없더군요. 그와 나 사이에 공통된 인간관계도 없었고, 활동하는 영역도 달랐고, 심지어 학연, 지연도 없었습니다. 원래 모르던 사람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어요.


밤근무를 끝내고 아침에 퇴근했던 날, 작은 배낭을 메고 고속버스터미널로 갔어요. 거기서 해남 땅끝마을로 가는 버스표를 끊었지요. 왜 거기로 가려고 했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냥 바다가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2시간 여 버스를 타고 가서 내린 곳은 작은 선착장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마침 보길도고 들어가는 배가 있었습니다. 저는 표를 끊고 배를 타고 보길도까지 들어갔어요. 함께 배를 탄 사람들은 대부분 섬에 사는 사람들 같았어요. 저처럼 여행자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지요.

보길도에 도착해 섬을 천천히 걸었어요. 당시엔 스마트폰도 없어서 검색을 할 수도 없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덜컥 겁이 나는 겁니다.  마을이 너무 조용했거든요. 평일에 이런 먼 섬까지 혼자 여행 온 여자라니.... 겁이 한번 나니까 도저히 섬을 돌아다니질 못하겠더군요. 저는 섬을 구경하는 대신 뭍으로 되돌아가는 배를 타는 곳으로 돌아왔어요. 그곳에 작은 가게가 있었는데요, 거기서 캔커피를 하나 사서 홀짝이며 선착장을 서성였답니다.



나를 위로하는 장소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이곳이 떠오른 이유가 뭘까요?

뭔가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좋은 추억이 있는 곳도 아닌데 말이죠.

단지, 내가 처음으로 홀로 여행을 갔던 곳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그전에는 혼자 여행을 갈 용기가 나지 않았거든요. 해남 땅끝마을을 무사히 다녀온 후 저는 조금 더 과감하게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혼자서 마이산을 다녀오기도 하고, 혼자서 무등산을 여러 번 등반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혼자서 네팔까지 가게 되었지요.



눈치채셨는지 모르겠지만, 저에게 의미 있는 두 번째 장소가 바로, 네팔에 있습니다.

네팔은 여러모로 저에게 의미 있는 나라인데요, 그중에서도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래킹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약 2주간 산을 오르는 여정이었어요. 제가 올랐던 가장 높은 고도가 해발 5300m였습니다. 남한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이 해발 1947m이니, 얼마나 높은 곳인지 감이 오시나요? 물론 처음 트래킹을 시작한 장소의 고도가 약 2000m 이긴 해요.

저는 그때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를 느꼈습니다. 넓게 펼쳐진 자연을 바라보며 자연의 위대함도 느꼈어요. 높이 올라갈수록 숨쉬기가 정말 힘들었는데요, 숙소에서 잠을 자다가 몸을 살짝만 뒤척여도 숨이 찼답니다.


저는 삶이 좀 힘겨울 때 이곳을 떠올려요. 오랜 진통을 겪으며 첫 아이를 3.9킬로그램으로 나을 때도 저는 에베레스트를 떠올렸습니다.

'내가 에베레스트도 다녀왔는데 이걸 못 이겨낼까.... 내가 거기서도 숨을 쉬고 살아 냈는데, 이 정도의 숨은 아무것도 아니다!'

에베레스트는 저에게 극도의 힘듦과 최고의 뿌듯함, 인간으로서의 겸손을 일깨워준 곳이었어요.


이 외에도 방글라데시, 뭄바이, 뉴델리, 부산, 통영, 광주, 안산..... 여러 장소가 있는데요, 하나하나 다 말하려면 아마도 시리즈물이 될 것 같아요.


그래도 굳이 세 번째 장소를 꼽는다면, 전 지금 이곳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밀라노예요.

살면서 한 번도 제가 밀라노에 살게 될 거라고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지금도 저는 '내가 밀라노에 살고 있는 게 현실인가?' 하는 생각을 한답니다. 그만큼 저와 밀라노를 연결시키는 게 익숙지 않아요.

물론 작가님께서는 밀라노를 들으면 저를 가장 먼저 떠올리시겠지만요. (아닌가요?^^;)


사실 밀라노에서 먹고사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기업문화도 너무 다르고, 사람들의 가치관도 많이 달라요. 우리나라의 MZ문화가 이곳 사람들의 일반적인 문화라고 하면 이해가 되실까요? 우리보다는 '나'가 더 중요하고, 공동체의 이익 보다 '나'의 안위가 더 중요한 문화입니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하든 관심이 없다 보니, 오히려 다양성을 존중받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지하철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고, 무단횡단을 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주차를 할 때도 다른 차를 배려하기보다 내가 편한 데로 주차하면 그만인 곳이지요. 그래서 잠시 여행을 왔다 가는 사람들은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어요. 하지만 이곳에서 먹고사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뭐 이런 나라가 다 있냐?'라고 불평하게 되지요.


저는 어느 쪽인지 궁금하시죠?

저는 밀라노의 삶에 꽤 만족합니다. 특별한 일 없이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비슷한 날들이지만, 이런 루틴의 일상이 저를 편안하게 만들어 줍니다. 심심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전 그조차도 좋습니다. 되도록이면 오래오래 이런 심심함을 느끼며 이곳에서 지내고 싶어요. 하지만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것이니, 또 언제 어떻게 어디로 가게 될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대구에서 오래도록 살고 계신 작가님은 이런 제 삶이 잘 이해가 안 되실 것 같아요.

불안하진 않은지 궁금하시겠죠?

예전엔 이런 불안정한 삶이 불안했는데요, 지금은 불안하기보다는 설렙니다.  또 어떤 나라에 가서 살게 될지 기대된다고나 할까요? (좀 이상하죠?)

그래서 더욱 오늘 하루, 나에게 주어진 일상이 귀하고 감사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전 제 미래의 일 중에 딱 하나를 미리 알고 있습니다. 그건 바로, "내가 밀라노에 있었던 시간을 무척이나 그리워할 것이다"라는 사실입니다.

미래의 작가님은 지금 시간을 되돌아보며 그리워할까요? 아니면 떠올리기조차 싫어할까요?

지금은 여러 모양으로 힘겨운 시간일 테지만, 그런 시간 틈틈이 스며든 좋은 기억들이 작가님의 기억을 왜곡시켜 놓을지도 모르지요. 기억은 언제나 주관적이니까요.



이번주는 아이들 학년의 마지막 주입니다. 다음 주부터 긴 여름방학을 시작해요.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지 않아서 좋기도 하지만, 온종일 아이들과 붙어있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네요. 둘 다 십 대지만, 여전히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다리 한쪽을 내 허벅지에 올리고 잡담 나누길 좋아하고, 함께 팝콘 먹으며 넷플릭스 보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입니다. 방학 동안 한국의 수학, 역사, 국어 공부를 하려고 마음먹었는데 원체 아이들 학습에 게으른 엄마인지라 과연 계획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야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저인데, 아이들과 온종일 함께 지내다 보면 감정이 어디로 튈지 모르겠어요. 다음 편지에는 컨트롤되지 않은 날것의 제 마음이 실릴지도 모르겠어요.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작가님의 안위를 빌며,


from. 밀라노


매거진의 이전글 흘러가다 멈춘 오늘, 다시 편지를 씁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