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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ul 05. 2024

잔잔한 빛 같은 엄마가 되고 싶어요.

밀라노에서 띄웁니다.

To. 대구


아이들의 긴~ 긴~ 여름방학이 시작되었어요. 지난 1년 동안 아이들의 날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저희 학교는 새 학년이 시작하는 날, 교문 앞에 누가 어느 반인지 리스트를 써서 붙여둡니다. 참 아날로그적이죠.

그런데 반을 확인 한 순간, 둘째 딸아이는 울상이 되었습니다. 친한 친구가 한 명도 없는 반에 배정이 되었거든요. 제발 같은 반이 되길 바라며 기도했던 몇몇 친구들과도 모두 다른 반이 되었지요.

그건 첫째 아이도 마찬가지였어요. 같은 반에 친한 친구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아이 모두 기대하며 새 학년을 시작했는데 첫날부터 완전히 낙심하고 말았지요.



이번 학년의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금요일, 아이들의 모습은 학년 첫날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둘째 딸아이는 친구들과 포옹을 하느라 바빠 보였어요.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은 울고불로 난리가 났습니다.(국제학교다 보니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나라로 가게 되는 친구들이 꽤 있습니다) 방학을 손꼽아 기다리던 아이가 심지어 저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어요.


"뭔가, 아쉬워. 이렇게 방학을 하는 게 아쉬워. 친구들과 많이 친해졌는데....."


첫째 아이는 금요일 저녁에 반 친구들과 피자파티를 했습니다. 담임 선생님까지 초대해 피자가게에서 학년의 마지막 날을 기쁘게 마무리했어요. 특히나 유의미한 일이 한 가지 있는데요, 그건 바로 큰아이에게 절친한 벗이 생긴 것입니다. 바로, 레오나르도라는 아이인데요.

"내년에 우리가 다른 반이 된다면 교장선생님께 말해서 내가 반을 바꿀게!"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말했어요.

"얘들아, 작년 9월에 새 학년 시작했을 때를 떠올려봐. 그때 같은 반에 친한 친구가 없다고 얼마나 속상했어? 근데 오히려 더 좋은 친구들이 생겼잖아? 그러니까 지금 눈에 보이는 불안이나 걱정이 전부가 아니야.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걱정이나 불안이 더 좋은 걸 가져다줄 수도 있거든."

물론 이런 제 말에 아이들은 "엄마 또 너무 진지해진다. 꼰대 같은 말은 좀 그만하시라~"는 눈빛을 발사했지만요.


제 두 아이는 모두 10대입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9월부터는 두 아이 모두 중학생이에요.(둘째는 한국학교로 따지면 아직 5학년이지만, 프랑스 학교는 초등과정이 5년이랍니다) 그러니 두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친구입니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부모의 영향보다 친구의 영향이 점점 더 커진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친구 문제로 힘들어할 때마다 저는 아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줘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사실 저도 중학교 시절에 마음을 나눌 친구가 없어서 꽤나 외로웠거든요. 혼자 노는 걸 즐기기 시작한 게 그 무렵부터였어요. 만화방에도 혼자 가고, 비디오 방에도 혼자 가고, 도서관에도 혼자 다녔답니다.... 지금까지 연락하며 지내는 학창 시절 친구 중에 중학교 친구만 없다는 게 그 증거예요.



저에게 방학을 잘 보내고 있느냐 물으셨지요? 이제 겨우 5일 지났는데 마치 몇 주가 지나간 기분이에요.

어제는 도저히 안 되겠어서 혼자 외출을 감행했습니다. 점심은 둘이 알아서 해결하라고 소리치고 혼자 쇼핑몰에 가서 여름 티셔츠를 여러 개 사 왔어요. 원래 쇼핑몰에 가면 아이들 옷을 먼저 골랐었는데요, 어제는 아이들 옷은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오롯이 나를 위해 시간을 쓰고 싶었거든요. 캡모자까지 하나 사서 집으로 돌아오니, 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했더군요. (나중에 아이들에게 라면 끓이는 법은 꼭 알려주세요. 그래야 엄마가 한 끼라도 쉴 수 있어요.)

딸아이는 제가 사 온 캡모자를 써보면서 탐을 내는 것입니다.

"엄마, 이거 나한테 너무 잘 어울리는데?"

하면서 말이에요.

"넘보지 마! 그거 내 꺼라고!!!"

근데 딸아이는 배시시 웃으며 거울 앞에서 모자를 써보고 쇼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아이는 제 캔버스 운동화를 넘보기 시작했어요. 왠지 간지가 난다면서 말이죠. 다행히 저보다 발이 조금 더 커버린 아이의 발이 들어가지 않았답니다.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요.

'10년 후, 20년 후에 내 아이들은 지금의 나를 어떻게 떠올릴까? 나를 어떤 엄마로 기억할까?'

너무 궁금해서 아이에게 물어보았어요.

"그립겠지."

제 아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작가님께서 젊은 시절의 엄마를 떠올리며 느낀 그 감정과 비슷할까요?

사실 저는 제 엄마와의 추억이 별로 없습니다. 작가님께서 가지고 있는 장녀 콤플렉스가 저에겐 전혀 없어요. 어린 시절, 엄마와 단 둘이 무언가 했던 기억도 단편적입니다. 함께 시골 장에 가서 장을 보고, 국밥 한 그릇을 먹었는데 꽤 맛있었다는 기억. 시냇가에서 빨래를 했던 기억. 더운 날 엄마와 함께 마늘을 심거나 마늘을 뽑았던 기억..... 10대가 된 후에는 그마저도 없습니다. 오히려 언니들과 함께 한 추억이 더 많아요.

저는 넷째 딸이라서 엄마에 대한 책임감도, 부담감도 덜합니다. 그게 좋기도 하지만, 조금 서글프기도 해요.



며칠 전에 아이들과 영화관에 가서 인사이드아웃 2를 보고 왔어요. 인사이드 아웃 1에는 '슬픔'에 대한 감정이 주를 이루었다면, 인사이드 아웃 2에는 '불안'이라는 감정이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 영화를 보면서 제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떠올렸어요. 저희 아이들은 이미 3번이나 학교를 옮겨야 했는데요, 그때마다 아이들은 얼마나 불안했을까요? 새로운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이들은 어떤 주된 감정을 사용했을까요?

저는 그때마다 아이들에게 참으라는 말을 하지 않았어요. 대신 "남들 시선에 너무 신경 쓰지 마."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네 감정에 솔직해 지라고요. 싫으면 싫다고, 좋으면 좋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표현해야 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아이들이 힘들어할 때마다 저는 아이들이 신뢰할 수 있는 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신뢰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있다면, 힘든 상황도 이겨낼 수 있다고 믿거든요.

몇 달 전에 슬로리딩으로 읽었던 랩 걸의 문장이 떠오릅니다.


"날씨는 변덕을 부릴 수 있지만,
언제 겨울이 올 지 알려주는 태양은
신뢰할 수 있기 때문에
억 겹의 세월 동안
나무들은 경화 과정에 의존해
겨울을 날 수 있었다.
식물들은 세상이 급속도로 변할 때
항상 신뢰할 수 있는
한 가지 요소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랩 걸 <호프자런>,  276p]


나무들은 스스로 환경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저 같은 자리에서 변화하는 날씨를 견뎌야 하지요. 그때 나무들이 신뢰하는 단 한 가지가 바로 태양이라고 합니다. 그 변하지 않는 태양을 신뢰하며 묵묵히 견뎌내는 것이지요.


작가님도, 저도 두 아이의 엄마이지요. 엄마로 사는 것이 때론 버겁고, 부담도 되고, 힘에 부치지만 우리를 무한히 신뢰해 주는 존재가 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기도 해요.

위의 문장에 나온 '태양'같은 엄마가 될 수는 없겠지만, 잔잔한 빛이 되어 아이들의 삶을 비춰주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긴 여름방학은 여전히 힘에 부치는군요.....


이번엔 편지의 말미에 이탈리아 말로 인사를 하겠습니다.



Buona giornata! (좋은 하루 잘 보내요)

Arrivederici a presto! (안녕, 곧 다시 만나요!)


from. 밀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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