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아 Jul 10. 2024

어떤 엄마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To. 밀라노


작가님, 안녕한 날들 보내고 계신가요. 오늘 저는 꽤 많은 사람들의 안녕을 물었습니다. 몇 개의 단체 채팅방에 모두들 무탈한지, 지난밤을 무사히 지냈는지 묻고 또 물었지요. 어제오늘 제가 사는 대구에는 기록적인 비가 내렸고 곳곳이 침수 피해를 입었거든요. 감사히도 지인들 중 피해를 입은 이는 없었지만, 계속해서 울리는 재난 경보에 자주 놀라고 마음이 분주했던 하루였답니다.


보내주신 편지(잔잔한 빛 같은 엄마가 되고 싶어요)를 여러 번 읽었습니다. 육아를 위한 휴직을 하고 있는 지금, 저에게 부여된 가장 중대한 역할이 바로 ’엄마‘이기 때문입니다. 잔잔한 빛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작가님의 문장을 읽으며, 나는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가, 어떤 엄마가 되고자 애써왔는가 생각하는 시간이었어요.


<시의 언어로 지은 집>을 출간한 후, 아이러니하게도 엄마로서 저는 꽤 방황했답니다. 많은 독자들이 ‘시의 언어로 지은 집’에서 아름다운 문장을 발견해 주셨고, 저와 아이들의 에피소드에 과분한 동경을 보내주기도 하셨지요. 그게 쌓이면 쌓일수록 도리어 저에게는 큰 부담이 되더군요. 작가님께는 집필 과정에서도 몇 번 말씀드렸듯이, <시의 언어로 지은 집>에 담은 어떤 내용도 거짓은 없으나 실제 삶과 글은 매번 같지 않아서 쓰는 마음이 편하지 않을 때가 잦았습니다. 현실 육아는 처절한데, 시와 닿은 글은 대체로 아름다웠으니까요.


시의 언어를 빌려 쓴 글은 한없이 다정했고 시의 언어로 나눈 대화 장면은 더없이 따뜻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하는 육아가 늘 다정하고 따뜻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에요. 오히려 혹독한 순간이 많았지요. 또 반성문을 쓰게 될 것을 알면서도 아이들을 윽박지르기도 했고 큰소리를 내는 일도 있었어요. 아이의 때를 차분히 기다려야 한다고 쓰고도 조급해지는 순간이 많았고, 매번 왜 사랑이 지각인가 반성하는 자작시까지 싣고도 여전히 사랑은 지각인 날들이 잦았어요. 저는 제가 쓴 글에 발목이 잡힌 채 좋은 엄마의 길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아득한 기분을 느끼곤 했답니다.


숱하게 깨지고 부서지는 과정을 겪으며 최근 제가 도달한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뿌리 깊은 나무 같은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바람에 가지가 흔들리고 때론 꺾이기도 하겠으나, 뿌리만은 단단한 엄마가 되고 싶어요. 좋은 엄마가 되고자 노력하겠지만 어떤 날은 엄마로서 부끄러운 실수도 하겠지요. 어떤 날은 엄마로서 처참하게 실패하는 날도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뿌리만은 흔들리지 않는, 아이들에 대한 사랑만큼은 결코 흔들리는 법이 없는 엄마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너를 사랑하는 엄마가 언제나 이곳에 있다’라는 마음으로, 엄마도 실수하고 실패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라는 마음으로 아이들 곁에 머무르고 싶어요. 물론 그 마음을 아이들이 느낄 수 있도록 부단히 표현해야 할 테고요.


요즘 저희 집은 첫째 아이 친구들의 아지트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사연이 있어요. 월요일과 수요일에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태권도 학원에 가기 전까지 아이

스케줄에 딱 한 시간 십 분이 비는데요. 학교와 집이 워낙 가까운 데다 늘 다니던 길이라 방과 후 수업을 마치는 대로 혼자 집으로 와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펄쩍 뛰면서 혼자 올 수 없다는 거예요. (등교는 이미 3월부터 혼자 하던 아이라서 더 당황했습니다.) 왜 혼자 올 수 없냐고 물었더니 친한 친구들과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길이 갈리는데, 그 뒤로 혼자 아파트 단지를 걸어오는 게 무섭다는 거였어요. 저희 집 첫째는 아시다시피 겁도 많고 불안도 높은 아이거든요.


아이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그럼 방과 후 수업을 같이 듣는 친구들 중 학원 일정이 비슷한 친구가 있다면 친구들을 집에 데려와도 좋다고 했어요. 엄마가 간식을 챙겨놓고 기다리겠다고요. 아이는 친구들을 데리고 오는 건 좋지만, 여전히 엄마가 자신을 데리러 나오지 않는 상황을 두려워하더군요. 그래도 용기 내 한 번 해보자고 했지요. 그 결과가 바로 이 사진들입니다.



많을 땐 아들 일곱, 적을 땐 아들 넷이 되는 거실을 보면서 저는 왜 마음이 좋을까요. 혼자 오기 무서운 아이가 친구들을 데려오기 시작한 것이 점점 커져서 이제 월요일과 수요일은 저희 집이 아이들의 아지트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저는 제가 엄마로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좋습니다. 현관 도어록을 열며 ”엄마~! 오늘은 친구 5명 데려왔어~! “ 하는 아이의 목소리도, “이모~! 오늘 간식은 뭐예요?” 묻는 아이 친구들의 목소리도 그저 예쁘기만 합니다.


아이가 커갈수록, 특히 첫째는 성별이 다르다 보니 함께 나눌 이야기도, 함께 할 수 있는 일들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같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아이가 저와 친한 친구들을 우르르 몰고 와 함께 간식을 먹고 보드게임을 하고 가끔은 다투고 금세 화해하고 같이 노는 모습을 보여주니 더할 나위 없이 기쁩니다. 아이가 자란 이후에도, 이날의 기억들이 꽤 기분 좋은 감각으로 남아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뿌리 깊은 나무 같은 엄마는 그런 모습인 것 같아요. 흔들리지 않는 사랑으로 곁을 지키는 것. 매일 완벽하진 않아도, 언제나 온전한.


작가님네 아이들의 방학이 깊어지고 있겠네요. 작가님의 일상이 더 빈번하게 흔들리고 더 자주 부러지시는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되긴 합니다. 그러나 작가님의 잔잔한 빛 같은 사랑 아래에서 아이들의 방학은 더욱 따사롭고 행복하리라 감히 확신해 봅니다.


From. 대구



매거진의 이전글 잔잔한 빛 같은 엄마가 되고 싶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