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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ul 14. 2024

우리는 모두 시한부 인생입니다!

편지 왔어요

To. 대구


작가님,

작가님의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빙그레 웃음이 나왔어요. 이렇게 안전하고 편안한 아지트가 있다는 게 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쉼이 될까 싶더군요. 비록 작가님은 매일 찾아오는 방문객을 위해 쓸고, 닦고, 간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하시겠지만요.

며칠 전 이런 글을 봤어요. "집에 밥 먹으러 와~" 이 말이 예전엔 흔히 듣던 말이었는데 요즘은 전혀 들을 수 없다고요. 집에 방문하는 것 자체가 서로에게 부담이 되는 시대이고, 내 일상 공간을 누군가에게 오픈하는 것이 꽤 힘든 시절이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작가님은 그 힘든 일을 날마다 실천하고 계시네요.

작가님은 이미 "뿌리 깊은 엄마"인 것 같습니다. 다른 아이들에겐 "뿌리 깊은 이모"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제 아이들은 긴 여름방학을 느리고, 게으르고, 심심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집 근처에 친구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모두 다른 동네에 살다 보니 친구들을 만나기도 힘들고요. 게다가 국제학교이다 보니 다들 본국으로, 또는 여행을 가고 밀라노엔 거의 없답니다. 이렇게 집에서 뒹굴거리는 녀석들은 우리 집 아이들 뿐인 것 같아요.


그래도 아이들은 꽤나 만족스러워 보입니다. 10시까지 늦잠을 자고 일어나 토스트를 만들어 먹고, 빈둥거리다 엄마가 해주는 점심을 먹고, 아주 짧게 수학 문제를 풀고, 일주일에 한 번 무더위를 뚫고 나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고, 핸드폰 게임을 하고,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거나 유럽컵 축구를 봅니다. 엄마가 해주는 저녁을 먹은 후 함께 자전거를 타고 나가 젤라또를 사 먹거나 콜라를 마셔요. 돌아오는 길에 자전거로 공원을 한 바퀴 돌아요. 그리고 돌아가며 저녁 설거지를 합니다.

밤 10시가 되면 이제 저  혼자 있고 싶은데 두 녀석이 엄마 침대로 올라와 비비적거려요. "이제 그만 가서 자라"는 말을 스무 번도 넘게 말해도 안방을 나가지 않는 녀석들입니다.....

이렇게 빈둥거리며 지내서인지 아이들의 키가 한 달 만에 쑤욱 자랐더군요. 아이들의 키처럼 아이들의 마음도 쑤욱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작가님께서 고민하신 "책에서의 내 모습과 실제 내 모습의 괴리감"을 저도 많이 느꼈어요. 저 역시 첫 책이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보니, 실제 내 모습보다 조금 과장되거나 축소된 모습이 담겼거든요. 그래도 독자들은 행간의 진짜 엄마 모습을 읽을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엄마란, 다 그런 거니까요.

 

제 둘째는 제 책의 열혈 독자입니다. 제 첫 책 <프랑스학교에 보내길 잘했어>를 3번이나 정독했고요, 두 번째, 세 번째 책도 모두 읽었어요. 내 아이가 독자가 되면 느낌이 정말 새롭습니다. 아이는 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유일한 독자니까요. 다행히도 아이는 "엄마 왜 거짓말했어?"라는 말은 하지 않더군요. 대신 "이상하게 울컥한다"라고 하더라고요.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울컥하느냐고 물어보니,

"어렸을 적에 엄마랑 함께 자기 전에 책 읽었던 게 자꾸 떠올라. 엄마는 우리를 재우려고 책을 읽어줬다고 했는데 오히려 우리는 그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는 부분에서 이상하게 눈물이 났어."

라고 하더라고요. 아이가 느낀 감정은 무엇일까요?

작가님의 아이가 작가님의 독자가 되어 작가님의 책을 읽으면 아마 비슷할 거예요. 책 속에서 엄마와의 추억을 읽고, 엄마와의 시간을 떠올리며 울컥하지 않을까요?


저희 집 첫째 아이는 둘째와  다르게 제 책을 한 권도 제대로 읽지 않았어요. 하지만 아이는 저에게 이렇게 말해줘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작가가 있는데, 한 명은 조앤 롤링이고 한 명은 선량 작가야."

이만하면 저 정말 성공한 엄마 맞는 것 같죠. ㅎㅎㅎㅎㅎ


이틀 전에는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었어요. 온라인에서 만나 친구가 된 작가님의 가슴 아픈 소식을 접한 후, 사람의 인생이 도대체 무엇인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지, 허탈함을 느꼈거든요.

그 친구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산 친구였어요. 북스타그램을 하며 열심히 책을 읽고, 독서모임을 하는 친구였지요. 저와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제가 낸 책을 매번 읽어 주고, 서평을 써주던 독자이기도 했습니다. 카톡으로 대화하다 친구가 되었고, 전화통화를 하며 말을 놓았어요. 사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친구에게 "당신은 책을 꼭 써야 하는 사람이에요."라고 말했던 게 저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책을 냈고, 작가가 되었죠.

그런 그녀가 가장 지독한 암에 걸렸다는 소식은 청천변력 같았습니다.


그날은 정말이지 하루종일 잠을 잤어요. 아무런 의욕이 생기질 않더라고요. 아이들 점심도 챙겨주지 못한 채 그냥 누워있었습니다. 그러다 꿈을 꾸었어요. 꿈속에서 제 아이들과 가족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차가 후진을 하다가 어떤 아이를 차로 치였어요. 주위에 있던 우리는 너무 놀랐지요. 차에 치인 아이는 쓰러져서 일어나질 못했습니다. 그러다 잠에서 깼어요.


잠에서 깨어 멍~하니 앉아있었어요.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맞아. 우리는 모두 시한부 인생이지. 우리 인간은 모두 똑같은 결말을 타고 태어났어. 언제, 어떤 결말을 지을지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지금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는 알지."


저는 바로 일어나 거실로 나가며 말했어요.

"얘들아~ 자전거 타고 마트 가자. 오늘 저녁은 치킨이다! 양념치킨 만들어 먹자!"

"엄마, 콜라 사도 돼?"

"응, 당연히 되지."

그럼 오늘 치킨 먹으면서 영화 보자!"

"오케이, 좋아!"


하루가 지난 후, 그 친구의 피드에 이런 글이 올라왔어요. 그 와중에 감사를 전하며 삶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요. 항암을 하며 평상시처럼 책을 읽을 거고, 가끔 인스타에 소식을 전할 거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살게 될지 모르겠지만, 살아있는 동안에 사랑하며  살 거라고 했습니다. 그 친구의 안부에서 삶의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작가님,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갈 시간은 얼마나 남았을까요? 바로 내일이라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날 수 있는 게 우리 인간이지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건물이 무너져서, 자동차 사고로, 그저 길을 걷다가도 세상을 떠날 수 있는 게 우리 인간입니다. 이렇게 연약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 '사랑' 같아요.


오늘 하루, 작가님의 일상에 사랑이 넘치길 바라요.



from. mi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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