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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ul 10. 2024

행운을 빌어요! (In bocca al lupo)

Da, Milano!

이탈리아어 공부를 하다 신기한 문구를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In bocca al lupo"라는 문구이다. 

bocca는 입이라는 뜻이고, lupo는 늑대라는 뜻이다. in은 영어의 in과 같은 의미이고, al은 ~ 안에서 라는 의미이다. 즉, "in bocca al lupo"를 직역하면 "늑대의 입안에서"가 된다. 

그런데 이 관용어는 "행운을 빌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탈리아의 문화를 잘 알지 못하는 나는 왜 이 말이 Good luck에 해당하는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문화와 관련된 관용어일까?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한 가지는 늑대를 사냥하던 사냥꾼에게 "늑대의 입에 들어가지 않기를," 즉 늑대에게 물리지 않기를 바란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탈리아에서 30년 넘게 살고 있는 지인에게 물어보니, "in bocca al lupo"는 주로 중요한 시험을 앞에 둔 사람 또는 취업을 위해 면접을 보는 사람에게 말한다고 한다. 늑대의 입과 같은 상황에서도 잘 이겨내고 돌아오라는 의미인 것이다. 


두 번째 의미는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늑대가 자신의 새끼를 무언가로부터 보호하거나 동굴로 옮겨야 할 때 입으로 물어서 데려간다고 한다. 즉, 위험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하려는 엄마 늑대의 보호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으로 보아 "늑대의 입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부정적인 의미보다 긍정적인 의미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삶의 시련이 가지고 있는 양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사는 동안 늑대의 입안에 들어간 듯한 상황을 종종 만난다. 크고 작은 시험부터 감당하기 힘든 시련까지. 그 고통이 영원히 지속될 것 같아 매우 괴롭지만,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면 그 시간 덕분에 내가 성장했음을 깨닫곤 한다. 


나는 종종 남편과 함께 공원을 산책하면서 방글라데시와 인도에서 지냈던 시간을 떠올리며 대화를 한다. 나는 뭄바이에서 살았던 1년이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남편이 구해 놓은 집을 본 순간, '과연 이곳에서 내가 살 수 있을까?' 암담한 생각이 들었다. 집이 너무 작거나 방이 2개뿐이거나 벌레가 나온다거나 하는 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그 집의 화장실이 너무 힘들었다. 마치 재래식 화장실을 연상케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열심히 청소를 해도 화장실 구조는 바꿀 수 없었다. 주방 하수구에서 쥐가 나왔을 때는 그 집에 대한 정이 완전히 떨어지고 말았다. 아이들과 남편이 학교와 회사에 간 후, 홀로 고요히 있을 때 들리던 "찍찍찍" 소리, 벽을 긁는 소리는 온몸에 소름이 돋게 했다. 설마.... 하며 며칠을 보내고 새벽에 일어나 주방에 들어갔을 때, 검은색 형체가 싱크대 위에서 움직이는 걸 목격했을 때 나는 주저앉아 울부짖고 말았다.  


가끔 외국인 친구들이나 한인교회 집사님 집에 가면 집이 너무 좋아 입이 쩌억 벌어졌다. 넓은 거실이나 방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화장실은 또 어떻고. 깨끗한 주방에서는 요리할 맛이 절로 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의 집에는 청소해 주는 아줌마가 있었다. 그들의 아파트 컴파운드 안에는 대부분 수영장이 딸려 있었다. 가끔 그들이 함께 수영을 하자고 초대해주면 아이들 수영복을 챙겨 그들의 집으로 향하곤 했다. 

내 상황과 그들의 상황을 비교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었다. 무엇을 위해 이곳에서 이렇게 살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고,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알지 못했다.

안개 낀 어두운 터널? 

아니, 그건 분명 늑대의 입에 들어간 듯한 상황이었다.  



많은 외국인들이 이탈리아의 삶을 힘들어한다. 여행지로는 최고인 이곳이 삶을 살기 위해선 다양한 어려움을 만난다. 

특히 싱가폴, 홍콩, 베트남 등 서비스가 매우 좋은 나라에서 살다 온 친구들이 유독 힘들어한다. 여긴 유럽이 아니라 '제2의 중국'이라고 말하는 친구들도 있다. 느려터진 행정 시스템, 말이 안 통하는 공무원들,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사람들, 다른 사람 눈치는 전혀 보지 않는 자기중심적 사람들. 


하지만 나는 이곳이 너무 좋다. 행정은 느리지만, 결국엔 진행되기 마련이고, 안하무인 공무원들이 때론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힘드니 이탈리아어 공부를 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힘든 상황이 지금의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힘든 상황이 미래의 나를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늑대에게 잡아먹힐 것 같은 상황일 때, 이제 곧 죽을 것 같아 낙심하지 말고, 나를 지켜주기 위해 엄마 늑대가 나를 입으로 물어 안전한 처소로 옮겨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혹시, 지금 늑대의 입에 들어간 듯한 상황에 처했다면 당신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다. 

"In bocca al lu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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