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말은 자연스럽게 배우지만 글은 다르다.
생각을 정리하고 문법에 맞게 문장을 만드는 과정은 훈련이 필요하다.
정규교육과정을 충실히 거쳐 성인이 되었다고 해도
글쓰기 훈련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퇴근길 인문학 수업-전진,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 최옥정]>
멍~ 하니 편집원고를 바라보다가 이내 노트북을 덮어버렸다.
'노환은 더 심해져 눈도 침침해지고, 타인의 글을 만지다가 정작 내 글은 한 글자도 못 쓰고 있는데, 이 일을 하고 벌어들이는 수익 대비 내가 쏟는 시간과 노동이 과연 상충하는 일일까?'
자괴감이 밀려온다. 하지만 마감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일주일 내로 편집을 끝내야 일정에 맞게 책을 만들어낼 수 있다.
나는 출판사 직원도 아니면서 출판사 일을 한다. 책을 쓰고 싶은 누군가의 욕망과 어떻게든 책을 만들 수 있는 나의 경험이 상충하여 이루어진 결과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고객이 책을 아니, 글을 처음 써보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알게 모르게 날마다 글을 쓰며 산다.
가장 많이 쓰는 글은 "카카오톡". 물론 긴 문장보다도 이모니콘 하나가 더욱 내 마음을 표현해주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하는 글이 바로 카카오톡이다. 그다음으로 많이 쓰는 글은 인스타그램이나 스레드가 아닐까 싶다. 인스타그램은 글보다는 이미지가 더 중요하지만, 그래도 이미지에 맞는 글을 써야 조금 더 인기를 얻을 수 있다. 이메일이나 보고서도 글쓰기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글을 쓸 때 우리는 문법을 생각하지 않는다. 맞춤법이 조금 틀려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나 역시 오타를 많이 남기므로....)
이런 일상적인 글만 쓰다가 갑자기 책을 쓰려고 하면 마음에 불안감이 생긴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끝까지 쓸 수 있을까?'
그러다 글을 쓰면서 뿌듯함, 시원함을 느끼면 점점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진다. 결과적으로 글의 분량이 점점 많아진다.
분량이 많더라도 문장이 짧으면 괜찮다. 그런데 한 문장이 언제 끝날지 모를 정도로 길어지면,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야?" 하게 되고, 이런 문장이 계속 이어지면 끝끝내 편집을 하다 말고 노트북을 덮게 된다.
"아니 왜 하지 말라는 걸 다 해놨지? 길게 쓰지 말아라, 연결어미 너무 쓰지 말아라, 주술호응 좀 잘해주라... 그렇게 말했는데, 왜 글이 그대로지? 어째서 퇴고한 글이 그 전보다 못하지?"
혼자 넋두리를 하며 소파에 벌렁 드러누웠다.
이 모든 게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특히 좀 배운 사람들이 글을 어렵게 꼬아서 쓰는 것 같다. 좀 더 있어 보이게, 좀 더 어렵게, 좀 더 화려하게 쓰는 것이다.
몇 년 전, 글쓰기 책을 썼을 때 출판사 대표님께서는 "중학교 2학년이 읽고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글을 써야 한다"라고 하셨다. 요즘 중2는 옛날의 중2보다 문해력이 더 떨어졌으니, 아마도 더더욱 쉽게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가끔 우리 집 둘째에게 내 글을 물어본다. (둘째는 한국기준으로 초5이자, 한국 정규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아이지만, 한글은 잘 읽는 아이이다)
아이가 "재밌다"라고 하면 왠지 뿌듯하고, 뭔 말인지 모르겠다고 하면 괜히 찔린다. 더 쉽게 어떻게 쓰지....
소파에 대자로 누워 눈을 감고 있으면 내가 처음 썼던 글이 떠오른다. 그걸 생각하면 창피한 마음이 확 올라와 얼굴이 빨개진다. 주어와 서술어의 사이가 너무 멀어서 만날 수 없는 연인같았고, 연결어미가 뭔지, 어울리는 접속사가 뭔지도 몰랐다. 분명 정규 국어를 12년 동안 배웠음에도 나에겐 국어에 대한 기초지식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게 엉망으로 쓴 글을 출판사에 투고까지 했으니, 정말 열정은 대단했던 것 같다.
글을 쓰고 싶어서 쉽게 시작은 했지만, 글을 계속 쓰는 일은 상당히 어려웠다.
결국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노트북을 열고 하다 만 일을 다시 시작했다.
비로소 이분들의 글이 내가 처음 썼던 글보다 훨씬 좋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리고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도 어디 내놓을 만한 것은 아니란 걸 깨닫는다.
그래도 지금 내가 책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것이라는 사실에 안도한다.
글은 누구나 쓸 수 있으니까.
차갑게 식어버린 커피를 홀짝인다. 안 그래도 쓴 커피가 식어버리니 더 쓰다.
이렇게 해외에 살면서 글도 쓰고, 책을 만들어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어딘가 싶다.
역시, 긍정적인 마음은 쓰디쓴 삶에 설탕 한 스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