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쓰게 만든 문장들
반복적으로 쓰기만 한다고 필력이 길러지는 게 아니란 걸 받아들였다. 내 마음 나도 모르겠고, 원고를 어서 끝내고만 싶고, 그래서 애매한 표현 뒤로 숨으려 할 때 “솔직할 것, 정확할 것, 숨김없이 투명하게 보여줄 것, 모호하게 흐려선 안 된다” 같은 타협 없는 문장을 떠올리며 한번 더 글과 씨름했다.
-<쓰기의 말들> 플롤로그 중, 은유-
필력은 엉덩이의 힘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일단 의자에 앉아 글을 모두 완성하기 전까진 엉덩이를 떼지 말 것. 엉덩이를 들썩이는 것까지는 괜찮으나 엉덩이가 너무 가벼워 의자에서 일으키는 순간, 글을 완성할 수 없다.
써야 할 주제가 있고, 그 주제에 맞는 적절한 에피소드와 사례, 충분한 참고문헌이 있다면 엉덩이가 들썩이기 전에 일필휘지로 휘리릭 써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글을 쓰려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켰는데, 작금의 시대가 너무 걱정되어 인터넷 뉴스의 바다를 헤엄치기 시작하고, 작은 촛불들이 모여 불결(불의 물결)을 만드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지금 한가하게 글이나 쓰고 있어도 되는 것인지.... 그리고 무엇을 위해 글을 쓰려고 했던 것인지....
목적도, 방향성도 잃고 만다.
며칠 전 남편이 나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엉덩이가 왜 이리 커졌어? 살쪘어?"
고백하자면, 엉덩이가 커진 지 좀 되었다. 3.9킬로, 4.1킬로의 아이 둘을 자연분만으로 낳았으니, 오죽할까.... 엉덩이 사이즈가 크다고 힘이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러니 쓰고 싶은 말은 쌓여가지만, 매번 자기 검열에 넘어져 한 문장에서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는 것이 어렵기만 하다.
사실, 지금 당장 끝내야 할 원고도 없다. 5년 넘게 글을 쓰면 누군가가 나에게 '글'을 의뢰해서 원고료를 받고 글을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의 시대는 고퀄리티의 무료글이 남발하는 시대이다 보니, 이런 글이라도 쓸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 하나에 감지덕지하다.
그럼에도 괜찮은 문장 하나를 쓰고 싶어서 남다른 어휘를 고르고, 여기에 붙였다, 저기에 붙였다, 고심한다. 단어에만 신경 쓰는 것도 아니다. 쉼표를 여기에 넣는 것이 괜찮을지, 쉼표를 너무 많이 넣은 건 아닌지, 마침표를 쓸지, 말줄임표를 쓸지, 말줄임표에 점 4개만 찍을지, 7개를 찍을지 고심한다.
(물론 독자님들은 그런 거 하나도 신경 쓰지 않을 거라는 걸 알지만.......)
글 좀 잘 써보고 싶어서 매일 글을 쓰던 때가 있었다. 매일, 꾸준히 쓰면 분명 글을 잘 쓰게 될 거라고 (많은 작가님들이) 말했기 때문이다.
이제야 깨달았다. 글을 쓰게 하는 건 엉덩이의 힘도 아니고, 꾸준히 쓰는 힘도 아니다.
그건 바로, "마감"이다.
타인이 정해준 "마감"이 있으면 글은 완성하게 되어있다.
내가 꾸준히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 마감이 없기 때문이 분명하다. 물론 나 스스로 정해놓은 마감은 있지만,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는 게 함정이다.
그러니 나 같은 사람에겐 꼭, 타인이 정해준 마감이 필요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필력은 부족하더라도 솔직하게, 정확하게, 숨김없이 투명하게,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