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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르페디엠 Nov 06. 2023

갑상선암 수술하고 1년이 지났다 그리고...

나는 잘 지내고 있을까.

    어제 CT를 찍었고, 내일 갑상선 초음파 검사를 하러 강북삼성병원으로 간다. 안내서를 찾아보는데 작년 9.5일에 수술을 받았구나. 만 1년 하고 2개월 정도 지났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아주 잘 지내고 있다. 수술 이전 보다, 체구성 성분 비율도 좋아졌고 겉보기에도 아주 멀쩡하다. 로봇 수술을 한 만큼 우측 겨드랑이와 가슴 사이에 세로로 6cm 정도의 흉터가 있는데, 한 1년 지나니 웬걸 엄청 많이 아물었다. 말을 하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흉터 질까 봐 켈로코트 스프레이도 비싼 돈 주고 샀는데, 귀찮아서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 흉터가 옅어지는 걸 보니 모두에게 필요한 건 아닌가 보다. 피부가 예민하신 분들은 꼭 써야 한다고도 하는데, 사실 흉터가 남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갑상선 암 수술. 이 경험이 내 몸에 흔적으로 남는 걸 오히려 마음 한 켠에서는 바라고 있기도 했다. 왜냐하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잊지 말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수술을 통해 한 번 더 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낭비하고 사는가. 소중하지도 않은 것들에 감정과 재화를 낭비하고, 정작 내가 가장 아껴야 할 가족들에게는 그러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것 같다. 못난 모습이지만 종로(직장 등)에서 뺨 맞고 한강(사랑하는 아내)에서 눈을 흘긴 적도 많았다.


    항상 언젠가는 죽는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던 나지만, 막상 암이라는 말을 들으니 정신이 더 바짝 들었다. 그래서 수술 후 회사 복귀 이후에는 매일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주변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더 사랑을 나누며 살고 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여전히 치킨과 돈가스, 핫도그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해야지 다짐했건만 이게 참 쉽지 않다. 그래도 마라샹궈를 참는 것이 어딘가 싶다.


따져 보면, 완벽한 식단을 하는 것도 일종의 강박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렇게 하면 뱃살도 없어지고 똥도 좋아지겠지만 난 지금도 충분히 좋다. 정신승리가 아니라, 나는 이전보다 몸도 훨씬 더 많이 움직이고 식단 관리도 전보다는 훨씬 잘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그대로 행복하다.


    수술 전, 갑상선 수술에 대해 정말 많이 찾아봤다. 대개 여성 분들이 많았다. 나이대는 정~말로 다양했다. 20대 여대생부터 6,70대 어르신까지. 생각보다 남자들도 많았다. 삼십 대도 많고, 더 젊은 친구들도 있었고.

진료를 보러 병원에 가면 85% 이상이 여성 분들인 걸로 미루어보아 통계적으로 보자면 여성이 훨씬 많은 듯하다.


수술 이후에 쉽게 피로해진다는 글을 많이 봤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라고 생각한다. 수술 전을 생각해 보면, 사실 그때도 뭐만 하면 피곤했다. 요즘 병원에서 처방해 주는 아로나민 케어싸이 비타민을 1년 넘게 복용하고 있는데, 이것 때문인가 가끔은 에너지가 더 넘친다. 다만 벌초 갔을 때, 금방 체력이 방전돼서 동료들보다 좀 일찍 일을 끝냈던 적이 있다. 아무래도 앞으로 벌초는 좀 무리지 싶다.


    병원에 가면 호칭을 환자분이라고 하는데, 난 그게 정말 싫다. 왜냐하면 뭔가 안 좋은 컨디션의 인간으로 규정당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난 이제 암을 제거한 사람이라고요. 내 몸에 암세포가 없는데 제가 왜 환자입니까.


아니 실제로 환자라고 하더라도 나는 환자라고 불리기 싫다. 그냥 xxx님 이렇게 부르면 안 되나? 뭔가 병원 시스템에서 내가 모르는 히스토리가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환자분 이란 소리를 들으면 멀쩡한 몸이 갑자기 아파지는 것만 같아서 너무 싫다.


    내가 엄청 괜찮은 것처럼 쓰지만, 아니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긴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으면 조금 서운하긴 하다. 콩고의 피가 흐르는 한국인, 조나단에게 우리는 말을 조심해야 하지 않나. 비슷한 이치라고 할 수 있겠다. 나단이 많이 사랑해 주세요. 저도요.


    글을 마구잡이로 쓰다 보니 배우 박정민의 에세이가 생각난다. 배우 박정민은 내가 영화 '동주'를 보고 참 좋아하게 된 배우인데 글을 B급으로 맛깔나게 잘 쓴다. 나는 그의 필력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그래도 이렇게 마구잡이라도 마구 써내려 가다 보면 언젠가는 사람들이 다음 화를 궁금해하는 그런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설렘을 가지고 살고 있다.


내가 왜 글을 쓰고 싶을까, 하고 생각해 보니 그 이유는 내가 남들이 쓴 글을 읽으면서 참 다양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힘들 때에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의 글을 읽고 눈물을 쏟으며 위로받은 적도 있었고 누군가의 즐거운 소식을 들으며 내 인생에서는 또 무슨 좋은 일들이 펼쳐질까 설레기도 했다.


무엇보다 글쓰기와 글 읽기가 좋은 이유는 혼자 할 수 있는 행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편인데 이때 가장 즐겁게, 현타 안 오면서 뿌듯하게 할 수 있는 일이 글쓰기와 글 읽기이다.


    나는 아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오랜 시간 같이 있으면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기분이 든다. 물론 친구들을 만나면 무지 반갑고 기분이 좋다. 일단 그냥 사랑하는 친구들 얼굴을 보면 신나지 않은가. 그러나 일주일에 3일을 본다면? 나는 싫다. 아무리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이라지만 나는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약속 잡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는 어릴 적 학원에 다니지 않았다. 학원이라고는 탁구 학원이나 수영 레슨 정도였지, 밤 12시까지 수업 듣고 하는 교습 학원에는 다녀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러므로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우르르 5명, 6명씩 어울리는 일도 별로 없었다.


우리 동네에 유명한 학원이 몇 개 있었는데, 전교 50등 안에 드는 친구들은 대체로 그 학원에 다녔던 것 같다. 그래서 학원에 다니는 친구들은 학교 친구뿐만 아니라 학원 친구들도 있었으므로 다른 반 친구들도 알고 지냈다. 반면에 나는 시험 기간이 되면 함께 도서관에 다니는 친구가 있었다.(시광아 요즘 잘 지내니?)


우리는 사는 아파트가 같았으므로 평소에 같이 등하교를 하기도 하고, 시험을 한 달 정도 앞둔 시점엔 도서관에 같이 갔다. 시광이와 도서관에 가는 일은 내게 고역이 아니었고, 나름대로 재미있는 일이었다. 시험이 한 달이나 남았으므로 적당히 자습서를 풀면서, 모르는 부분은 해설지도 보며 공부를 하면서 지식을 하나하나씩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즐거움이 있었다. 물론 공부하기 싫을 때에는 나가서 놀기도 했다. 옆에 놀이터가 있어서 가만히 앉아 이야기도 나누고, 당시 3천 원 주고 다운로드할 수 있던 핸드폰 게임(폴더폰)을 하며 놀았다. (떡 먹는 용만이라는 게임을 아시는 분, 계실까요?)


이런 식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보니, 어쩌면 단체로 오랜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일은 내게 굉장히 어색한 일일 것이다. 나는 3시에 하교해서 시험기간에 공부를 하더라도 8시에는 집으로 돌아가서 놀았다. 시험공부를 일찍 시작했기 때문에, 밤새 공부할 필요 또한 없었다. 그리고 밤 시간에는 깨어있는 것보다 잠자는 것을 좋아했으므로 밤을 새우고 싶은 마음도 일절 없었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밤 늦게까지 노는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다. 그건 바로 학원 문화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학원에서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밤 12시인데, 어느 누가 잠을 자고 싶겠나 말이다. 그때부터 조금이라도 놀아야 적성이 풀리지 않을까.


    종종 브런치 통계를 보는데, '갑상선암 수술' 혹은 '세침검사'를 검색해서 내 브런치로 들어오시는 분들이 은근이 많다. 얼마나 고민되시고 걱정되실까. 그런 분들을 위해 나는 로봇 수술을 정말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로봇 수술은 목 절개 수술에 비해 회복이 더디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는데 내 입장에선 NEVER였다. 약 2주 뒤면 일상생활에 무리가 없었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에게 티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 나는 가장 만족스럽다. 매일 옷에 가려져서 자외선을 받지 않아서 그런지 지금은 흉터자국도 거의 없다. 담당교수님께 원래 이렇게 후유증이 없냐고 여쭤보니 로봇수술이 더 오래 아픔이 간다는 것도 편견이고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도 해주셨다.


    내가 이렇게 씩씩하게 글을 쓰지만, 솔직히 재발에 관한 두려움이 없는 건 아니다. 그리고 왜 100과 99는 비슷해도 좀 다르지 않나. 남들이 큰 병이 아니라 하더라도 "요즘 갑상선암 흔하잖아, 괜찮을거야~"라는 식의 책임지지도 못할 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혹시라도 친구 중 갑상선암 수술을 앞둔 친구가 있다면 전화라도 한 통 걸면 좋겠다. 그냥 목소리나 들으려고 했다면서. 따뜻한 마음이 담긴 선물까지 준비한다면 그 친구는 아마 그 고마움을 평생 잊지 못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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