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잘 아는 자소설 마스터
SK텔레콤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현대로템 현대위아 삼성전자 LG서브원 세아상역 그리고... 두 개인가의 기업에 지원했다.
이 중 7개 기업에 서류 합격했다. 한창 적성검사를 보러 다닐 때에는 막학기 수업 들으랴, 기업별 시험 인적성 고사 준비하랴 너무 바쁜 지경이었다. 나는 전자공학을 전공했는데 삼성전자를 제외하고는 전부 구매 직무에 원서를 넣었다. 왜냐하면 나는 평소 사람의 행동이나 심리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전공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지만, 적당한 호기심뿐이었다. 반면 홍보대사 활동이나 해외에서의 경험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 만큼 사람을 대하는 데에는 자신이 있었다. 공대생이다 보니 셈에 밝고 숫자 감각이 (나름) 좋아서 사람 간의 관계와 수를 동시에 담당해야 하는 구매 직무가 내게 딱 맞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잠깐이었지만 마케팅 부서에서의 인턴 경험을 통해 문과 직무에서도 숫자가 많이 사용된다는 점 또한 알게 되었다. 그리고 데이터를 분석하는 일을 해 보니, 마치 숨은 의미를 찾는 놀이처럼 느껴져 재미가 있었다.
서류 합격 이후, 취뽀나 스펙업에서 처음 만난 취준생들과 함께 강남역 스터디카페에 모여 돌아가면서 면접관 역할을 하며 모의 면접을 진행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참 많이 떨었다. 누가 봐도 허름한 취준생 가짜 면접관 앞에서 있는 척 말을 하려다 보니 더 긴장되었다. 다들 간절한 심정이어서 그런가 한 명이 긴장하면 돌아가면서 긴장하곤 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젊은 친구들이 잘해보겠다고 참 노력을 많이 했다. 귀엽고 대견하기도 하지.
취업 스터디는 한 번쯤 나가 볼 만한 것 같다. 똑똑한 사람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직접 보고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 집에서만 연습하다가 면접장에서 배우기에는 너무 늦지 않겠나. 잘하는 사람들이 말할 때 표현에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또 제스처나 자신감은 어떤 식으로 표현하는지 체득하기에 좋았다.
학교에서는 모의 SSAT 시험을 보았는데(몇 만 원쯤 냈다) 이 시험은 전국적이어서 며칠 후 성적표를 받을 수 있었고, 응시자들 중 내 점수가 몇 등인지까지 알 수 있었다. 당시 삼성 그룹 공채 선발 프로세스가 적성고사(SSAT) -> 면접(기술/역량)+인성검사 이렇게 두 단계였다. 이는 3,4차 면접까지 보는 어느 기업보다 꽤나 심플한 절차였고, 싸트만 뚫으면 곧바로 면접을 볼 수 있었으므로 복권을 사는 느낌으로 취준생이라면 누구나 싸트에 응시했었다. 수많은 지원자가 첫 관문에서 탈락하므로 적성고사만 잘 보면 삼성 최종 합격 가능성이 꽤나 높다는 풍문도 있었다. 이에 싸트 모의고사 책은 취업을 준비하는 모든 대학교 4학년 생의 책장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라 생각한다.
다시 모의 싸트 이야기로 돌아가보자면 나는 성적표를 받아보고 실망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상위 50% 안에조차 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공부를 하지 않았다지만 이 정도 성적표는 살면서 처음 받아보았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점수와 등수는 순 엉터리였다.
나는 서류 합격 이후에 SKCT, SSAT, HMAT(2회), LG WAY 시험에 모두 실제로 응시했었는데 SKCT에서만 불합격했고, 나머지는 모두 합격했다. 결과를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자랑해서 뭐하나 어차피 한참 지난 일이고 결국 1개 기업밖에 다닐 수 없는 것을), 모의 싸트 점수가 구렸어도 실전이 가장 중요하단 말을 하고 싶다. 거기서 나보다 시험 점수가 좋았던 넘들(?)도 실제 시험에서 여럿 떨어졌을 테지. 실전과 모의는 분명 다르다. 나는 본능적으로 이 사실을 느꼈는지, 모의 싸트 성적표를 받아보았을 때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bull shit!
면접 스터디에서 항상 떨던 나였는데 막상 실전 면접에선 적어도 스스로 후회하지 않을 만큼은 하고 나왔던 것 같다. 거듭 말하지만 거들먹거리려는 게 아니다. 다만, 실전에서 훨씬 안정감을 느꼈다. 내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 가짜 취준생 면접관이 아니라 진짜 면접관이어서 더 자연스럽게 느껴서 자신감있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던 것 같다.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좋겠다. 뭐 하나만 걸려라 라는 심정으로 100개 120개 회사에 원서를 복사-붙여넣기 하여 지원하는 게 아니라, 진짜 가고 싶은 회사들만 지원하고 면접 등 선발 과정에서 떨어지더라도 에라이, 나랑 fit이 안 맞는 회사인가 보네.라며 툴툴 털어내는 것. 아니 나를 뽑지 않는다고? 그럼 니들 손해지.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본인이 진짜 가고 싶은 회사만 지원해라. 아 이 정도면 괜찮겠다 하는 곳 말고, 진짜 여기서 일해보고 싶다. 하는 곳 말이다. 나는 신입사원 모집에 지원할지 여부를 결정할 때에는 항상 그 회사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그 회사의 설립이념과 비전을 확인했다. 보통 네이버에 사명을 검색해서 대표 웹사이트로 접속해 보면 ‘회사 소개’ 버튼이 눈에 잘 띄는 곳에 있다. 거기에 접속해서 회사의 시작 배경과 비전을 읽어보고 마음에 들 경우, 채용 사이트로 넘어가서 인재상을 확인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이 단계까지 왔으면 뉴스에 사명을 검색해서 관련 뉴스를 한참 읽었다. 최근 어떤 계약을 수주했는지, 그 계약은 이 회사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인지. 예를 들면 첫 중동 계약을 따냈다던지, 아니면 세계 기업 순위가 더 높은 경쟁사를 제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는지. 또는 어느 나라에 이 회사의 제품 포지션은 어느 정도인지? 이 회사가 경쟁사 대비 잘하고 있는 점은 무엇인지, 반대로 어떤 점이 객관적으로 보완이 필요한지 등… 이런 내용을 좌악 써치 해보면 점점 더 가고 싶어지는 회사가 있다. 그리고 이런 정보들을 읽다 보면 나만의 역량(물론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좋은 점에 집중하자)을 이 부분에 엮어서 자소서를 써야겠다는 감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자소서를 꽤나 막힘없이 쓸 수 있었다. 또다른 팁으로는 내용이 구분되는 단락에 반드시 소제목을 붙였다. 한 문장만 보고 면접관(님께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실) 수 있도록 말이다. 그분들은 분명 바쁠 터였다. 소제목을 붙이면 짧은 글을 쓰는 데 그 제목이 자꾸 머릿속에 밟혀서 자연스레 하나의 논지가 날카롭게 담기는 장점도 있다.
다행이 자소서에 쓸 소재가 많았는데 이는 대학 시절 정말이지 원 없이 놀았기 때문이었다. 지내면서 하고 싶은 일들은 (거의) 모두 해봤던 것 같다. 1/2학년 때에는 여행동아리 활동을 하며 배낭을 메고 산에서 야영을 했고, 군 전역 후에는 브리즈번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다. 3학년에는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디자인을 복수 전공했고, 4학년 1학기엔 미국에서 인턴십을, 4학년 2학기에 취업 준비를 했다.
대학시절 목표라고 한다면 단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계절학기와 재수강을 단 한 번도 하지 않기였다. 이 목표를 세운 이유를 말하자면 바야흐로 08년도 1학년 1학기 신입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신입생 등교 첫날, 들떠서 강의실로 향했는데 웬 복학생 형들과 졸업반 누나들이 떡하니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이 선배들이 1학년 시절 공부를 하지 않아서 여기로 돌아왔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재미있는 수업이 얼마나 많은데 소중한 3학점과 중간 기말 공부 시간을 쓸데없이 재수강에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더 소중한 방학 기간을 계절학기에 쏟아붓고(심지어 돈도 꽤 많이 든다)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목표를 세웠다.
놀 때 아무리 놀아도 시험 기간에 최소한 이상의 노력은 항상 했고, 졸업할 때 나는 결국 목표를 이루었다. 재학 중 했던 많은 활동들은 재밌어서 벌인 일들이었을 뿐, 목표 같은 건 아니었다. 다만, 재미를 추구하다 보니 내 강점이 자연스레 계발되더라. 한 인간의 장점과 강점은 반드시 일에 적용할 수 있다. 자소서를 쓰면서도 마치 소설을 쓰는 양, 흡사 아주 중요한 비즈니스 프레젠테이션에 참여하는 나만의 피칭자료를 만드는 것 같아서 많이 설렜다. 나는 어떤 기업에서 어떠한 일을 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