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해보고 싶은 일이 참 많다. 특히 회사 일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는 막연한 로망이 꿈틀거렸다. 하루 종일 현장 혹은 컴퓨터 속에서 성과를 창출하는 일보다는, 조금 더 낭만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그때 나를 사로잡은 아이템은 바로 꽃이었다. 어려서부터 아름다운 것들에 마음이 이끌렸다. 내게 '꽃'이라는 단어는 '아름다움'과 동의어였다. 빨갛고 파란, 파스텔 톤의 꽃잎은 초록색 줄기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그리고 하늘하늘 우아한 꽃잎의 형태와 곡선... 향기는 또 어떤가.
회사에 합격했을 때 부모님께 배달되었던 축하 꽃바구니, 아내에게 프러포즈할 때 레스토랑으로 몰래 주문했던 아주 커다란 꽃다발,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많은 분들이 놓아주었던 국화까지... 꽃이라는 존재는 수도 없이 많은 화가들의 뮤즈였고 수 백 년간 인간의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
결혼 후에도 아내에게 종종 꽃을 선물했다. 좋은 일이 있을 때에도 그랬고, 뜬금없이 퇴근길에 한 송이 사 오곤 했다. 꽃을 집에 두면 기분이 좋았다. 피로로 점철된 무채색의 일상에 채도를 올려주는 느낌이랄까, 꽃이 한 송이라도 집에 있으면 인생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인생 별거 있나. 내 낭만은 내가 만든다.
이런 꽃을 매일 다룰 수 있다면 직업으로서의 플로리스트는 어떨까, 막연하게 동경했다. 아침부터 정성스레 꽃을 준비하고, 예쁘게 포장해서 고객에게 기쁨을 선사하는 일. 그 꽃은 잠시나마 누군가의 삶에 낭만을 선사해 줄 테니 이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가?
인스타그램에 florist를 검색해보았다. 대체로 여성 분들이 많았지만 간간히 유명한 남자 플로리스트도 있었다. 웬걸, 잘만 하면 괜찮을 수도 있겠는데? 봄날이면 길가에 핀 꽃을 사진으로 남기는 나를 보고 직장 동료는 우리 엄마 감성이네라며 피식 웃기도 했지만,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꽃을 좋아하는 남자라는 콘셉트는 유니크할 수 있다는 기대감 또한 있었다.
그래. 한 번 제대로 배워보는 거야. 아내가 예전부터 팬이었던 성수동 유명 플로리스트의 전문가 과정 Basic course를 신청했다. 수강료는 무려 100만 원이 훌쩍 넘었다. 다소 비싸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두 달간 8번의 수업이 있고, 각 수업마다의 작품 제작에 소요되는 꽃송이와 배우게 될 기술의 난이도를 생각해 보았을 때 합리적인 가격이었다. 처음에는 적지 않은 금액 때문에 망설였는데, 아내는 한 번쯤 해볼 만한 도전이라며 오히려 응원해주었다.
가운데 아름다운 호접란은 한 송이에 2만원 가까이 하는 경우도 있다.
Vase arrangement(꽃병), Hand-tied(꽃다발), Flower basket, Center-piece 등 아름다운 꽃으로 작품을 만드는 건 분명 즐거운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주 토요일 약 3시간 동안 꽃을 만지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는 점이 주중의 날들을 즐겁게 했다.
하지만 나는 이 과정을 통해 꽃은 내 업이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주된 이유는 꽃은 아름답지만 오래 지속되지않기 때문이다. 수명이 긴 꽃은 꽃병에서 2주간 살아남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1주일 정도 버틸 수 있다.
이러한 점이 수십 년 지난 빈티지 의자나, 기계식 시계와 같이 지속 가능한 것들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아름다운 꽃이면 수명이 짧아도 관계없다고 느꼈는데 8주간 매주 집으로 아름다운 꽃을 가져오며 느낀 감정은 한편으로는 덧없는 인생을 떠올리게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 한다발은 우리네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
과정이 두 달이나 지속되었기 때문에 플로리스트로서의 업과 나 자신의 케미컬이 잘 맞는지 여부를 서서히 알아갈 수 있어서 좋았다. 아마 한 달짜리 과정이었다면 잘 모르는 채로 아쉬움을 가졌었을 듯? 여하튼 이 경험을 통해 당분간 회사 업무에도 만족하게 되었고 또 꽃을 직접 만지고 다루어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무엇보다 이제는 꽃집을 보며 꽃집을 경영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가지지 않는점이 가장 흡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