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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르페디엠 Jul 21. 2024

뭐 저렇게까지 하나 싶은 사람들 덕분에

잘 먹고 잘 삽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뭐 저렇게까지 하나, 싶도록 열심히 하는 사람들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다. 


    그 첫 경험은 고등학생 시절이었던 것 같다. 공부를 참 열심히 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는 아기 손바닥만 한 영어 단어장을 만들어서 쉬는 시간은 물론이거니와 급식 줄 서는 시간에도 공부를 했고 서울대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에는 모교의 홍보대사로 활동했다. 선발 방식은 서류 및 면접이었다. 면접은 모교 홍보 PT를 제작해서 입학처장 및 교수님 앞에서 프레젠테이션 해야 했다. 무슨 활동을 하는지도 모르고 재미있어 보여서 지원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주 활동은 방문객 투어 진행 및 입시설명회 의전활동 등 교무입학처와 함께 하는 행사에 참여하는 일이었다. 이에 까다롭게 선발하는 거였다. 


어렵사리 선발된 후, 겨울방학 기간에 본격적인 트레이닝이 시작되었다. 모집 공고에는 나와있지 않던 내용이었다. 우리(동기들)는 학교 연혁 및 구성에 대해 달달달 외우고 시험을 봐야 했다. 그리고는 단과대학별 학과별 커리큘럼/특화 프로그램/장학 제도 등에 대해 홍보하는 PT를 준비해야 했다. 발표 후 선배들은 날카로운 피드백을 주었다. 다만 이게 피드백인지 갈굼인지 혼란스러울 때도 많았다.


남들 앞에서 발표를 하는 일은 상당히 경쟁적인 일이었다. 결과물이 여러 명에게 노출될뿐더러 앞서 말한 대로 피드백을 받기 때문이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레 들었다. 이런 힘든 과정 때문일까, 홍보대사 선배들은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파일럿, 아나운서, 현차, 삼성, 모비스, 기아차 등 인사팀, 구매팀, 엔지니어 등등… 만나보면 하나같이 자신감 있는 모습이었다. 지금은 유튜버가 짱이지만 라떼만 하더라도 대기업에서 초봉 6천 받는 사람들을 정말 부러워하던 시절이었다. 그들은 잘난 척을 하기보다 후배들 이야기를 들어주고, 후배들이 궁금해하는 것들에 대해 답변해 주었으며 모든 일정이 끝난 후에는 조용히 지갑을 여는 기품(?) 또한 있었다. 게다가 우리는(어느새 선배와 우리가 되었는지) 홍보대사 트레이닝이라는 부조리를 모두 겪어낸 사람들이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다 보니 나 또한 처우가 좋은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일을 뭘 저렇게까지 하나 싶은 사람들을 또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들이 한 일의 결과물은 남들과 달랐다. 보고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논리 정연했고 읽다가 의문이 생기면 곧바로 설명이 이어졌다. 물 흐르듯 매끄러운 논리와 그에 따른 해결책이 감탄스러워서 무릎을 탁 쳤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건 다소 피곤한 일이기도 하지만, 굉장히 유익했다. 시나브로 나 또한 내 일에 대해 프로의식을 갖고, 완성도를 높이게 되는 것 같다. 내게도 중요한 일들이 조금씩 주어지고, 일하는 주인공이 되어 보니 몰입이 참 재밌는 경험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아... 고등학생 때 그걸 알았더라면 나도 서울대에 들어갈 수 있었을 텐데. 솔직히 좀 아쉽다. 근데 서울대 친구랑 나는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다. 연봉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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