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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르페디엠 Sep 27. 2023

배우자 출산휴가, 꼭 써야 하나요?

'23년부터 출산시 3주간 휴가! 대한민국 감사합니다.

    3주간 출근하지 않아 설레기도 했지만, 두렵기도 했다. 이번 연차는 쉬러, 즐기러 단순히 해외로 떠나는 일정이 아니었다. 업무는 아니지만, 인생에서의 또다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기간이라고 보아야 적절했다. 실은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마주하기가 겁났다. 우리는 맞벌이 부부였기에, 휴가 기간 동안은 아내가 출근해 있는 동안 온전히 내가 아기를 봐야 했다. 그런데 달래지지 않는 아기를 마주하는 건 내게 정말 힘든 일이었다.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은 열망이 컸던 만큼 심리적으로 꽤 부담감이 있었던 것 같다. 여튼 그렇게 출산 휴가가 시작됐다.

    

    휴가 첫날, 출생 85일 차였던 우리 아들과 점잖은 하루를 보냈다. 분유를 다 먹이고 트림을 시켜주면 곧잘 잠들었고, 눈을 마주치면서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참 사랑스러웠다.

    문제는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터졌다. 오후 7시가 되니 약속이라도 한 듯 아들은 정말 '자지러지게' 울었다. 마치 접신이 된 것처럼 눈이 뒤집어졌고 이대로 두었다간 기절할 것만 같았다. 목소리는 어찌나 크던지, 온 동네가 떠나가라 울어대서 귀가 떨어질 지경이었다. 민원이 제보되지 않은 것이 놀랍기도 했다(입주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아들은 30분을 가득 채운 후 울음을 멈췄다. 그의 작고 따뜻한 등과 다리는 얼마나 진정성 있게 울었는지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땀으로 흥건히 젖어있었다. 나는 한때 권투 세계를 제패했던 마이크 타이슨의 명언이 생각났다. "그래 누구나 계획은 있었다. 한대 처맞기 전까지는..." 아들에게 호되게 처맞은 것처럼 멘탈과 체력이 도망가버렸다. 솔직히 아들보다 내가 땀이 더 많이 났다.


    갓 태어난 아기가 심하게 우는 건 뭔가 불편한 구석이 있어서일 테다. 우는 모습 자체가 불편하고 싫게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이 마치 아버지의 자질이 없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져서 스스로 상처받았던 것 같다. 이러면 안 돼, 안된다고 난 아빠야. 네 아들이 우는데 왜 싫은 느낌이 들어? 더 잘해야지라며 마음을 다잡았는데 아들이 고래고래 울면 또다시 울화가 치밀고(뭐 어쩌라는 거지?) 나 자신에게 실망하는 부정적인 사이클에 갇혔다.

    하루 종일 아들을 돌보느라 최선을 다했는데 보상은커녕 자괴감에 빠지다니... 의기소침해졌다. 그러나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차차 나아지겠지.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처음이니 그럴 수 있다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노력한 모습에 대해 칭찬해 주는 일이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의 멘토가 될 수 있다.


    둘째 날, 약속의 7시가 되자 아들은 어김없이 온 동네가 떠나가라 울었다. 강력한 울음소리에 조금이나마 적응된 나는 전략적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작은 방에 암막 커튼을 쳐서 어두운 환경을 조성했고, 안아 들은 몸을 리드미컬하게 흔들며 아들을 달래기 시작했다. 결과는 나름 성공. 우는 시간이 30분에서 15분으로 줄었다. 뿌듯했다.


    온종일 붙어있다 보니 아들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우선 그의 하루 일과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일어나는 시간과 수유 후 트림까지의 시간, 그리고 터미타임 및 낮잠 시간까지. 일과가 나름대로 정해져 있으니 뭐랄까, 마치 군생활처럼 묘한 안정감이 생겼다. 군대에 다시 들어가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만 상병 즈음부터는 나름 편안한 생활을 이어갔던 것 같다. 이는 오늘내일이 모두 예측 가능하기 때문이었겠지.

 그리고 배우자출산휴가를 통해 아들의 성장을 24시간 함께할 수 있어 굉장히 기쁘고 행복했다. 휴가 전까지는 아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퇴근 후 저녁시간 및 주말이 전부였다. 체력이 고갈된 상황에서 아기와 친해지기가 어렵게 느껴졌었다.


    생후 80여 일이 지난 아기는 정말 하루하루 성장하는 게 느껴진다. 아무리 놀아주어도 멀뚱멀뚱 바라만 보던 아들이 어느덧 눈 맞춤도 하고, 함께 놀면 나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는다. 아기와 함께하니 웃을 일들이 많이 생겼다. 얼굴 가득 순수한 아들의 미소를 보는 순간마다 나는 오롯이 행복했다. 너무도 행복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다만 행복은 추구해야 할 대상이 아니고 어떠한 상태이기에 행복을 찾아 헤매기보다는 이렇게 종종 마주친 행복을 최대한 즐기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93일경 아들은 뒤집기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으아! 앆!이라고 괴성을 지르며 몸을 힘차게 돌리는데, 매일 수십 수백 번의 실패에도 아들은 일절 의기소침해하지 않았다. 아니, 이 과정이 그에게는 실패가 아니었다. 그저 시도였을 뿐. 피지컬이 성장함에 따라 뒤집기 완성에 점점 더 박차를 가하는 그의 연습을 보고 있노라니 이 세상에 못할 일은 없겠구나 싶었다. 태어난 지 97일째, 결국 그는 생애 최초로 뒤집기를 성공했다. 장하기도 하지. 아내와 나는 아들의 그간의 노력에 대해 진심으로 박수갈채를 보냈다. 정말 재밌는 것이 뒤집기를 한 것이 기쁜 것일까, 성공한 후 아들이 온 얼굴로 웃었다는 것이다. 아직 성장을 덜 해서 그렇지, 역시 아기도 성인과 동일한 인격체다.

부드럽고 작고 따스한 이 촉감과 감정. 오래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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