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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Nov 13. 2023

욕받이 엄마

그저 고맙고, 고마운.

  

  어릴 적 엄마는 내 눈에 가장 무서운 존재였다. 넘치게 사랑받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엄격하게 화내는 얼굴만  보면 영락없는 적이었다. 이른둥이로 병약하게 태어나 유년시절 대부분을 병원에서 보냈을 때도 엄마는 나를 훈육하는 보호자이자, 재활훈련을 담당하는 호랑이 선생님이었다. 뇌성마비로 굳은 다리 근육을 이완하고 걷기 위한 훈련을 하다가 넘어져서 울음이 터져도 안아주는 법 없었다. 어서, 다시 일어나 걸으라는 매서운 목소리가 귓가에 꽂힐 때. 세상에서 가장 매정한 사람은 엄마라고 생각했다.



  그 기억 때문인지 보통 서러운 일이 있거나 위로가 고플 때는 아빠를 찾았다. 아빠는 말없이 나를 번쩍 안고 다독이거나, 뿔난 엄마로부터 도망치게 해주는 든든한 아군 같았다. 그렇다고 정말 엄마를 적으로 삼은 것은 아니지만 무표정한 얼굴로 '안 돼'라고 단언할 때는 통과할 수 없는 벽에 부딪힌 듯했다. 보통 때랑 화났을 때 차이가 커서 엄마는 평소에는 천사인데 화나면 악마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칭얼대는 소리를 내기도 전에 뚝하라고 엄포를 놓는 바람에, 마음 놓고 울지도 못하고 울음을 삼켰다.



  엄마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남에게 미루거나 엄살 부리지 못하게 했다. 자신이 평생 보호자일 수 없으니 직접 의사표현을 하고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은 해낼 수 있도록 가르치기 위해 '나쁜 엄마'를 자처했다는 것은 머리가 크기 전까지 알지 못했다. 그저 한 번은 져줄 만하건만, 한결같이 엄격한 엄마의 두 눈을 보기도  어려웠다. 쏘아보는 듯한 눈빛에 하는 수없이 재활이든 무엇이든 끝까지 해냈다. 결국 완수했을 때 그 눈빛이  다 관두고 쉬고 싶은 속마음을 들킨 것이 아닐까, 싶어 최대한 감정과 말을 감추기 위해 노력했다.



  아파도 안 아픈 척 힘들어도 괜찮은 척하면 엄마의 개입이 줄어들 테고, 잔소리가 그칠 만큼 혼자 할 힘이 생기면 자유가 생길 거라고 믿었다. 애석하게도, 기대와 다르게 남들과 다른 육체를 타고 난 차이가 차별이 되면서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흘렀다. 이상한 걸음걸이를 핑계로 놀렸고 반응하지 않으면, 이래도 참을 수 있냐는 듯이 점점 강도가 세졌다. 소수에 불과했던 아이들도 어느새 무리 지어 따라다니며 놀렸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처럼 바깥에서 큰 일을 당해도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면 화가 복으로 바뀔 줄 알았는데, 집에서 아무리 감추고 웃어도 불행은 자꾸만 새어 나왔다.



  걷잡을 수 없는 불행에, 입 밖으로 참았던 울음이 터진 날. 집에는 엄마가 있었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집에 엄마라는 변수가 있으니 울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번 터진 울음은 그칠 새 없이 쏟아졌다. 이제와 돌이켜 보면 모든 것이 낯선 풍경이었다. 평소 답지 않게 일찍 퇴근을 한 엄마와 감정을 감추지 않고 토해내는 나. 평소라면 울지 말고 뚝 그치라고 혼내야 하는데 아무 말 않고 가만 보고 선 엄마의 태도까지. 귓가에 들리는 것이라고는 나의 울음소리가 전부인 상황이 너무도 낯설었다.



  그 낯섦을 견디지 못한 내가, 깊은 슬픔을 토해내며 말했다. 대체 나를 왜 낳았느냐고, 차라리 낳지 말지 왜 낳아서 힘들게 하느냐고, 어릴 적 꾹꾹 눌러 참았던 울음과 함께 설움을 쏟아냈다. 그토록 무서워하던 엄마 앞에서 모두 내려놓고 울었다. 볕에 두고 말리면 흔적 없이 마르고 말 눈물을. 고작 눈물 좀 흘리면 어때서, 왜 마음껏 울지도 못하게 하나 싶었는데 그날 울면서 알았다. 눈물은 생각보다 후폭풍이 세서 소리 내 우는 일에도 각오가 필요하다는 것을.



  내가 어떤 용기로 쏟아내는 설움인지 직감했던 걸까. 목놓아 우는 동안 엄마는 가만히 욕받이가 되어주었다. 문 닫고 들어간 방 안에서 지쳐 잠들 때까지 밀물처럼 차오르는 울음을 군말 없이 받아주었다. 그리고 모두가 잠든 밤, 마른 목을 축이려 눈을 떴을 때 불 꺼진 거실에 앉아 숨죽여 우는 엄마 등을 보고 알았다. 나만 몰랐을 뿐 엄마는 기꺼이, 욕받이를 자처해 왔다는 사실을. 제 아무리 거친 현실을 살았어도 마음을 닫고 입 다물지 않고 쏟아낼 존재가 있다는 것은 어마하게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러 해가 흘러, 엄마에게 그날 철없이 당신에게 쏟아낸 울음이 상처가 되었다면 부디 잊기 바란다는 말로 용서를 구했을 때. 엄마는 이해한다며 괜찮다고 했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일 텐데, 7개월 만에 어른 손바닥 만한 작은 체구의 나를 지키기 위해 생명의 위협을 불사한 용기는 어디서 왔는지. 의사도 걷지 못할 거라고 단언했고 몇 년간 숱하게 힘없이 주저앉던 나를 기필코 걷게 만든 기적은 어찌 가능했는지. 그 모든 순간을 헤아리다가 알았다.



  엄마가 내 눈에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가 되고, 더는 못 한다는 칭얼거림도 외면했던 것은 일부러 악역을 자처한 것이었음을. 스스로 욕받이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고 엄마라는 자리의 무게를 견뎌준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음을 알았다. 비록 내 지난 과거는 아킬레스 건 때문에 힘겨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롭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묵묵히 엄마의 무게를 견디며 제자리에 한결같이 있어준 든 자리가 주는 온기 덕분이었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완전히 이해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들었지만 그것은 엄마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의 언어였고, 서로의 언어가 달라 수없이 부딪쳤지만 그 모든 충돌마저도 결국 엄마와 딸이라는 우리 둘 사이가 가장 멋진 각도로 깎여 반짝반짝 빛을 내는 아름다운 갈등이었을 뿐.




정녕 엄마는 나쁜 적 없는,
그저 고맙고 고마운 욕받이였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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