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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섬 Apr 30. 2022

멈추지 않는 추격 액션의 클래식

앰뷸런스 (감독 마이클 베이, 2022)

벌써 낮 기온이 20도를 웃돈다. 벚꽃이 피나 했더니 금세 꽃잎이 흩날린다. 봄이 황홀한 건 짧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던 어느 라디오의 오프닝 멘트가 잊히지 않는다. 길었으면 하는 봄은 늘 짧고, 짧기만 바랐던 팬데믹은 너무 길어졌다. 꽃이 순식간에 져버리듯 단숨에 일상을 회복하면 좋겠지만, 완전히 마스크를 벗는 데 익숙해지기까지 우리 일상엔 오랜 기간 미열이 남아있을 듯하다.

여름이면 댄스 장르가 귀에 더 들어오듯, 기온이 오를 즈음이면 겨우내 듣지 않고 보지 않던 장르를 자연스레 찾게 된다. 핸드 드립 커피보다는 단숨에 들이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찾듯이, 우리의 바이오리듬도 디졸브 되며 달라지는 듯하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현실감에 근거한 감정선이나, 사건의 치밀한 개연성, 층층이 내포한 함의를 애써 분석하며 보지 않아도 되는 영화들을 찾게 된다. 소소한 현실감보다는 완전한 비현실의 세계가 주는 단순함과 시원함이 강점인 장르들 말이다. 그런 점에서 <앰뷸런스>는 지금 바로 극장에서 즐길 수 있는 딱 알맞은 영화다.


클래식한 추격 액션의 귀환
힘을 뺀 스토리와 간결한 구성
연출과 연기력이 빚어내는 드라마의 묵직함
스케일이 증명하는 스크린의 존재 이유


<앰뷸런스>는 동명의 2005년 작 덴마크 영화를 마이클 베이 감독이 리메이크하면서 LA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서사의 중심인물은 ‘대니’와 ‘윌’이라는 이름의 형제로, 각자 자라며 은행강도와 군인이라는 정반대의 인생을 지향하다가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채 하나의 범죄 계획에 뛰어들게 된다. 알다시피 영화에서의 모든 계획은 계획대로 풀리지 않는다. “계획이 없는 게 계획”이라는 아빠의 말이 못 미더워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가 말 그대로 피를 봤던 <기생충>의 기우처럼, ‘대니’와 ‘윌’ 또한 계획대로 되지 않아 피를 보게 되는 지점부터 구급대원 ‘캠’을 인질로 하는 앰뷸런스 탈취극을 시작한다.

범죄, 추격, 스릴러. 이 세 단어로 요약되는 영화들이 지니는 사명은 한 가지다. 관객의 아드레날린을 폭발시키는 시원하고 통쾌한 액션을 선사할 것. 그래서 이 장르에 필요한 또 다른 조건은 ‘단순한 설정’과 ‘쉬운 이야기’이다. 그래서 영화는 초반 10분 동안 주인공 각자의 사연을 옴니버스처럼 나열한 뒤, 그들이 한 공간에서 만나는 지점부터는 도주 액션에 액셀을 밟는다. 멈추지 않을 거라는 주인공들의 반복되는 대사처럼 앰뷸런스는 러닝타임 2시간 동안 쉴 새 없이 달리는데, 이 지점에서는 이 장르의 명작 <스피드>를 연상하는 관객도 많을 듯하다.

한국에서는 <트랜스포머> 하나로도 곧잘 수식되는 마이클 베이 감독이지만, 그의 작품 대부분은 호불호가 많이 나뉘는 편이다. 이번 영화 역시 그렇겠지만, 흥행작에 견줄 만한 감각이 다시 살아났다는 평이 주를 이룰 만큼 연출 면에서는 좋은 점들이 많이 보인다. 특히 드론 카메라를 도입해 실내외를 촬영한 장면들은 흔히 본 적 없던 움직임으로 보는 맛을 더한다. 빌딩에서 고공 낙하한 뒤 지상의 좁은 공간까지 이어지는 카메라 무빙은 초반부의 몰입을 유도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면서도 구급차라는 좁은 공간에서는 다양한 각도의 앵글을 짧은 호흡으로 교차시키면서 긴박감 속에 스릴을 놓치지 않는다. 물론 장르의 특성상 개연성을 눙치는 지점이 없다고 하긴 어렵다. 하지만 그런 약점들을 배우가 보완하며 끌어가는 점 또한 인상적인데, 목표 지향적이고 광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제이크 질렌할을 좋아한다면 <나이트 크롤러>에서 극대화되었던 그의 시그니처 연기를 <앰뷸런스>에서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팬데믹 이후 콘텐츠를 감상하는 공간은 점점 집으로, 방으로, 손안으로 좁아졌다. 스크린이 작아지면 액션 영화는 힘을 잃는다. 더군다나 독립적인 공간에서 시청자의 자율성이 높아지다 보면 흥행작들은 더 복잡한 스토리와 다층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경향을 띈다. OTT 플랫폼이 제공하는 큐레이션 기술은 또 어떤가. 사람들은 점차 자신도 모르게 비슷한 콘텐츠만 소비하게 된다. 영화의 미덕은 다양성에 있다. 솟아오른 기온을 핑계 삼아, 작은 화면과 작은 음향에 외면당해온 이런 장르를 접해보며 자신의 취향을 넓혀 보는 건 어떨까. 어쨌거나, 장르의 흥행과는 상관없이 주인공들의 멈추지 않을 거라는 대사는 이 장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일종의 구호처럼 맴돌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극장보다 OTT 플랫폼이 주류가 되면서 많은 영화가 OTT 단독 개봉 또는 동시 개봉을 선택한다. 극장에 가는 사람이 줄어드니 극장에 걸리는 영화도 줄어들고, 마블 영화라도 개봉하지 않는다면 극장에 발길을 둘 이유가 없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마스크를 벗는 날이 머지않았다. 게다가 볕도 좋은 계절이다. 극장에 간 지 너무 오래된 것 같다면, 날씨를 핑계로 외출하면서 극장까지 다녀오는 주말을 권해보고 싶다. 그렇게 작은 걸음이 모여 다시 극장에 활기가 돌기를, 더 다양한 스케일의 영화들이 관객의 선택을 받는 날이 오기를 조용히 기대해 본다.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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