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이 학원에 출근해 내 옆자리에 앉게 된 배경은 이렇다. 그녀의 자리에는 영어강사 C가 앉아 있었고, 결혼을 한다는 이유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남편 될 사람이 서울에서 법무사 일을 하고 있고, 신혼집을 서울로 얻었기 때문에 더 이상 학원에 출근할 수 없다고 했다. 개구리 팀장은 ‘결혼을 꼭 해야 돼?’라는 말과 함께 ‘곧 아이들 시험기간인데 선생님이 모자라서 큰일이네’라고 말했다. 이것은 영화판에서도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당사자 앞에서는 겉으로라도 축하한다는 말을 먼저 해야 했었다. 개구리 팀장은 ‘일단 알았다’는 말로 회의를 끝냈다.
‘일단 알았다’라는 말은 도대체 어느 경우에 어울리는 말인가. 이단, 삼단으로 가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인가. 지금 결혼을 앞둔 사람한테 해야 할 말인가. 더 이상 신경 쓰기 싫어 그만 생각하자 하며 회의실을 나설 때, 영어강사 C는 나오지 않고 단호한 표정으로 한동안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영어강사 C는 새로운 강사가 구해질 동안만이라도 학원에서 일을 해달라는 개구리 팀장의 말을 거부했고, 미리 통보한 날짜에 맞춰 학원에 나오지 않았다. 영어강사 C자리를 충원해 줄 강사는 한 동안 구해지지 않았다. 영어과는 다섯 명이 있어야 다른 과와 마찬가지로 적당히 쉬는 시간을 가지며 휴식을 취할 수 있었는데 한 명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그 빈자리를 영어강사들이 분담해서 대신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거의 한 타임도 빠지지 않고 수업에 들어갔다. 육체적 정신적 피로감이 날로 쌓여가 이대로 가다간 모두 다 쓰러지거나 어떤 식으로든 분노가 폭발할 일보직전의 긴급한 상황에, 다행스럽게도 강사가 구해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내가 쇼펜하우어 머리를 하고, 쇼펜하우어의 <인생론>이라는 책을 들고 학원에 출근했던 딱 그 타이밍에 B강사가 새로 들어와 내 옆에 앉았고, 그녀는 시건방졌던 나를 제외한 영어과 강사 모두에게 구세주 대접을 받았다. 누구의 소개 없이 ‘벼룩시장’에 난 광고를 보고 지원했던 그녀는 원장과 개구리 팀장의 면접을 본 후, 곧바로 합격통보를 받았고 바로 그다음 날 출근하게 되었다고 학원 내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알고 있는 친구 A가 알려줬다.
그녀는 강사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업무 이해도가 나보다 훨씬 빨랐고, 수업도 아무런 무리 없이 진행했으며 부임한 첫날부터 학생들의 뜨거운 반응을 일으킬 정도의 친화력도 가지고 있었다. 남학생, 여학생 가릴 것 없이 쉬는 시간마다 학생들이 그녀에게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거의 매일 그녀의 책상 위에는 학생들로부터 받은 가나 초콜릿과 레쓰비 캔 커피가 쌓여 있었다. (그때까지 난 한 개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내가 학원에 들어온지 3개월, 그녀가 학원에 들어온지는 1개월 정도 될 무렵.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가 한 동안 내 책상 위에 놓여 있었던 시기, 즉 그녀와 내가 업무적으로 필요한 말만 하고, 다른 어떤 개인적인 관계를 맺지 않고 있던 그 시기. 하지만 계속 옆에 있어도, 옆에 없어도, 학원에 있어도, 고시원에 있어도, 그녀의 존재를 계속 의식하고 있었던 바로 그 시기의 어느 날, 개구리 팀장은 강사들에게 긴급 전체회의를 안다고 공지했고, 우리는 오늘도 계속될 잔소리를 듣기 위해 교무실에 앉아 있었다.
학원의 매출 하락에 화가 난 듯, 개구리 팀장은 강사들에 대한 질타가 주를 이뤘다. 예컨대 A학생이 학원을 관두었는데, 왜 관두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강사들에게 꼬치꼬치 캐물었다. 보통 학생들이 학원을 관두게 될 때는 눈에 보이는 이유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유, 즉 학원 외적인 이유일 때가 더 많았다.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서, 엄마가 갑자기 아프셔서, 학원보다는 과외가 더 잘 맞을 것 같아서, 학원 이동시간이 부담되어 가까운 학원으로 옮기고 싶어서, 같이 학원에 다니는 누군가가 너무 싫어서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이유가 존재했고, 그 이유가 단 하나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었다. 개구리 팀장은 학생들의 퇴원 사유를 오로지 학원 강사들의 탓으로 돌리려 했고, 그것은 강사들에게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불러일으켰다. 학원 강사들이 가장 하기 싫어하는 일 중에 하나가 바로 퇴원 상담이다.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왜 퇴원했는지에 이유를 묻는 일이다. ‘죄송한데, 아이가 학원을 관두는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학부모들은 보통 진짜 이유를 잘 말하지 않는다. 제일 많이 들어본 이유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학원은 맘에 드는 데, 우리 아이가 이제 혼자 공부를 해볼 때가 된 것 같아서요.
2. 학원은 맘에 드는 데, 우리 아이가 육체적으로 힘들어해서, 좀 쉬었다가 보내려고요.
물론 정말 위의 두 가지 이유로 퇴원을 결정한 학부모도 있음을 안다. 하지만 학부모의 거의 대부분은 진짜 이유를 잘 말하지 않는다. 어차피 떠날 학원이라 괜히 진짜 이유를 말해서 서로 곤란하고 어색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심리가 어느 정도 작용되어 위와 같은 이유를 말한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시원하게 비난과 질책을 쏟아붓고 퇴원을 통보하는 학부모도 있다) 요점은 강사 입장에서 두리뭉실하게 보편화된 퇴원 사유를 믿지 않고, ‘거짓말하지 마시고요, 학원을 관두는 진짜 이유를 말씀해 주세요.’라며 꼬치꼬치 따져 물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요점은 그러한데 문제는 이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인 원장과 개구리 팀장은 그 점을 알면서도 학생의 퇴원으로 인한 매출 하락의 책임을 오로지 강사에게 묻는다는 점이다.
살아있는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해야 했기에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했다. 옳은 변화를 선택한 생명체는 살아남았고(진화했고), 잘못된 변화를 선택한 생명체는 (퇴화하여) 멸종했다.
The vast majority of companies, schools, and organizations measure and reward ‘hight performance’ in terms of individual metrics such as sales numbers, resume accolades, and test scores. The problem with this approach is that it is based on a belief we thought science had fully confirmed: that we live in a world of “survival of the fittest.” It teaches us that those with the best grades, or the most impressive resume, or the highest point score, will be the ONLY ones to succeed. The formulas is simple: be better and smarter and more creative than everyone else, and you will be successful. But the formula is inaccurate.
[2020년 11월 고2 전국 연합 모의고사 22번]
대부분의 회사, 학교, 조직이 매출, 수상 이력, 시험 성적과 같은 개인의 수치적 관점에서 '높은 성과'를 측정하고 보상한다. 이러한 접근법의 문제는 우리가 과학이 이미 완전히 입증해주었다고 생각하는 믿음, 즉 우리가 '적자생존'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최고의' 성적, '가장' 인상적인 이력서, 혹은 '최상의' 점수를 가진 사람들이 성공할 '유일한' 사람들이라고 가르친다. 이 공식은 간단하다. 즉, 다른 누구보다 더 잘하고 더 똑똑하고 더 창의적이 되면 여러분은 성공할 것이다. 그러나 이 공식은 정확하지 않다.
생태계를 지배했던 적자생존(the survival of the fittest)의 법칙, 즉 ‘가장 적응을 잘하는 개체만이 살아남는다’는 법칙이 인간 사회에서도 통용되는 절대 진리는 아니다. 인간 사회에서는 ‘the survival of the best fit’, 즉 최고가 아닌 가장 잘 어울려 적응하는 사람이 생존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좋은 사회는 서로 좋은 관계를 맺어가며 유지된다. 좋은 관계를 맺고, 생태계에 기여함으로써 오히려 더 큰 성공과 이익을 얻는 생태계가 인간 사회다. 살아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서로에게 경쟁을 부추기며, 그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개인이나 단체가 성공을 거두는 시절은 이미 끝났으며, 설령 그런 것이 여전히 존재한다 해도 머지않아 멸종하고 말 것이다.
이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는 불행히도 퇴화를 택했다. 개구리 팀장은 원장의 지시사항이라며 폭탄선언을 했다. 앞으로 강사들의 급여는 다시 조정되며 담당반의 퇴원생이 나오지 않으면 급여를 그대로 지급되고, 반면에 퇴원생이 나올 시 일정 금액을 월급에서 감하겠다는 통보였다. 개구리 팀장은 매출 하락의 고통을 분담하는 것이 옳은 일이고, 관리를 최고로 잘한 강사는 그만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며 ‘이 달의 최고 강사’를 원장과 함께 선정해 그 강사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눈이 앞으로 몽땅 튀어나올 정도로 침을 튀기며 팀장이 역설하는 동안, 나는 다른 강사들의 표정을 재빨리 살펴보았다. 모두가 똥을 씹었지만 절대로 내색하려 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표정에서 새어 나왔다. 어느 누구도 내가 ‘이 달의 강사’가 되고 말겠다는 의지의 기색을 띠지 않았다.
‘왜 아무 말도 못 하지?’ 내 심장은 평소보다 많은 양의 피를 온몸 구석구석으로 내뿜기 시작했다. 심장에서 발가락 끝으로, 그리고 다시 가슴 쪽으로 올라와 뇌로 모이는 내 피의 흐름을 명료하게 느꼈다. 사람들은 보통 이럴 때 ‘뚜껑이 열린다’고 표현하고, 학생들은 ‘화난다’라고 표현한다. ‘어차피 잃을 게 없다. 학원은 나한테 맞지 않는 곳이었다’라고 학원을 신포도로 만들며 ‘이것은 너무 부당한 대우 아닙니까?’라고 자리에서 일어나 힘차게 외치려는 바로 그 순간, 개구리 팀장의 시선이 나를 향했고, 내 입을 다물게 하는 말을 이어갔다.
“상담을 제대로 하지 않는 강사도 있습니다. 배정된 상담을 제대로 하지 않는 강사들도 월급에서 그만큼 불이익을 당하실 겁니다.”
회의에 참석한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맞다. 내가 허접한 인간이라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이 학원, 이 생태계에서는 나는 존재감 없는 먼지와 다를 바 없는 놈이다. '자존감도 없고 존재감도 없는 나. 내가 나선 다 한들, 깜도 안 되는 놈이 설치는 꼴이라며 다들 우습게 여겼을 터인데, 내가 잠시 내 주제를 모르고 경거망동하려 했구나. 조용히 찌그러져 있는 것이 내 삶에 어울린다. 나서지 말자. 나대지 말자.’ 긴 한숨을 차마 크게 내쉬지도 못하고 다시 고개를 숙여 조금씩 나눠서 내뱉고 있었을 때, 옆자리에 있던 그녀의 차분하고 힘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부당한 조치네요.”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직원이 일 못한다고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한 후 조용히 숨죽이고 있을 때, 들어온 지 더 얼마 안 되는 직원이 용기 있게 부당함을 당당히 이야기하는 교무실은 어색함과 긴장감으로 가득 차 묘한 흥분감을 자아냈다. 개구리 팀장은 서서히 몸을 의자 등받이 쪽으로 눕히며 그녀를 쳐다보았지만, 그녀는 개구리가 원장과 버금가는 이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라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듯, 계속 자신감 있고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그녀가 항변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퇴원의 책임이 전적으로 강사에게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점. 둘째, 정해진 월급을 학원 매출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조정한다는 것이 부당하며, 계약 위반이라는 점. 셋째, 이런 시스템에서는 강사들이 자신이 담당하는 학생들만 신경 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신이 담당하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소홀해질 수밖에 없고, 그렇다 보면 학생들 사이에서나 강사들 사이에서나 위화감이 조성될 것이 분명해 이는 전체적으로 학원 발전에 해가 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덧붙이자면, 강사들에게 배정된 상담 횟수도 너무 많아요. 일주일 단위의 상담은 너무 형식적이어서 오히려 상담을 위한 상담이라 생각이 드네요. 이런 식의 상담은 상담이 가진 순기능을 해칠 위험이 커서 줄이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그녀는 말을 마친 후, 앞에 있던 종이컵 쪽으로 손을 뻗어, 담긴 물에 입술을 적셨다. 수많은 영화를 봤지만 그녀처럼 우아하게 물을 마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하정우도 이 장만큼은 그녀에 비할 바가 못 된다고 확신했다. 내가 혹시라도 다시 영화를 찍게 된다면 그녀의 물 마시는 모습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반드시 써먹겠다는 굳은 다짐이 들 정도로 그녀는 멋있고 맛있게 물을 먹었다. 게다가 말하는 동안 그녀의 시선에서 한 치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나에게 알 수 없는 희열과 해방감을 주었다. 팀장에게 향하는 시선은 대담했고, 다른 강사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따뜻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사실은 나와 눈이 마주쳤다는 사실이고, 팀장과 다른 강사들에게 배정된 시간보다 나에게 할애해준 눈 맞춤의 시간이 더 길었다는 사실에 나는 흥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2초 정도 더)
개구리 팀장도 자기 앞에 놓인 생수병에 입에 갖다 대었다. 애꿎은 생수통을 약간 세게 내려놓은 팀장은 회의는 여기까지 하겠다고 말하고, 그녀에게 원장실로 따라오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 시점에서 회의가 끝난다는 것이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원장실로 불려 간다는 상황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도 보였다. 그녀가 원장실에 들어가 있는 동안, 나는 교무실에서 다른 강사들의 반응을 부지런히 살폈다. 대체적으로 학원의 조치에 부당함을 표현하는 강사들이 많았지만, 체념하며 순응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강사들도 있었다. 그녀에 대한 반응 또한 둘로 나뉘었다.
당돌하다 vs. 시원했다.
학원에 오래 근무한 선배 강사들은 반응은 당돌하다는 쪽으로, 원장과 팀장에게 악감정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던 강사들은 시원했다 쪽으로 나뉘었고, 당돌하다는 쪽의 반응이 조금 더 많았다. 친구 A는 당돌하다는 쪽이었다. 그녀의 이유 있는 반항은 결국 힘을 잃고, 이 체제에 머지않아 순응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도 내놓았다. 친구 A에게 꺼지라고 (속으로) 말했다. 친구 A는 ‘넌 어떻게 생각하냐’며 물었고, 난 관심 없다고 대답했다. 학원이 앞으로 어떻게 운영될지 정말로 난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나의 관심은 오로지 이 교무실 벽 너머 원장실에 있는 그녀에게 쏠렸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타인의 대한 걱정이었다.
그녀가 옆자리로 돌아오자마자 첫 수업의 종이 울렸고, 교무실에 몇몇 강사와 나, 그리고 그녀가 남았다. 그녀의 표정을 곁눈으로 살폈다. 모나리자 미소는 여전했다. 너무 궁금했다. 요전에 나 좋아하냐며 왜 말이 많냐고 그녀에게 무안을 주었던 나 자신이 그렇게 원망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을 걸까, 말까 한참을 망설였고, 끝내 내 입은 열리지 않았다.
하늘에서 기적처럼 별이 떨어졌고, 내게로 다가왔다. 아니 그녀의 책상에서 연필이 떨어졌고, 연필은 고맙게도 내 쪽으로 방향을 잡아 구르다가 내 발 앞에서 멈췄다. 그녀보다 더 잽싸게 연필을 줍고 싶은 마음에 서두르다가 내 오른쪽 발로 그녀의 연필을 내 책상 밑 더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었다. 책상 밑에서 무릎을 꿇고 나는 그녀의 연필을 낑낑거리며 주어 그녀에게 전해주었다. 그녀는 연필을 붙잡고 깔깔 대고 웃기 시작했다. 옆에서 바라보는 15도쯤 천장을 향해 위로 젖어진 그녀의 얼굴이 보기 좋아서 나도 미소 짓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내 안의 하이드는 그녀에게 말 걸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 했다. 하이드는 이드(id)를 숨기지 못했다. 본능은 이성보다 더 강한 힘을 가졌다. 입은 본능에 이끌려 뇌보다 먼저 말을 내뱉게 만들었다.
“원장이랑 개구리 팀장이 뭐래요?”
질문은 이러했지만, 정작 알고 싶었던 건 그녀의 현재 마음 상태였다. 두려움, 불안, 분노, 수치심 따위들이 복잡하게 얽혀 빚어낸 스트레스를 그녀가 느끼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원장실에 자주 들어간 본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었다.) 그녀는 예상치 못했던 나의 질문에 놀란 듯 커다란 동공을 가진 토끼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처음으로 그녀와 내가 넉넉히 눈을 마주친 순간이었다. 나는 그녀의 눈에 나타나는 어떤 감정을 읽어내려 부지런히 내 눈을 움직였다. 어떤 감정도 읽히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눈에 존재하는 신비로움을 감상할 뿐이었다. 동공은 블랙홀이었고, 그 주변을 둘러싼 홍채는 수많은 작은 구멍과 선들이 마치 은하계처럼 보여 경이로웠다. 홍채는 영어로 아이리스(iris)이며 붓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무지개 여신이기도 하다. (같은 스펠링이지만 여신을 칭할 때는 ‘이리스’라고 발음한다.) 이리스 여신은 제우스의 유혹을 뿌리친 몇 안 되는 여신 중 하나다. 제우스가 갖은 수를 써봤지만 전부 통하지 않았을 정도로 심지가 강했다.
나는 지금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두 청춘 남녀가 처음으로 만나 서로를 보며 생각할 때의 그 깊고 무의식적인 진지함과 그들이 서로에게 던지는, 탐색하고 꿰뚫는 듯한 시선과 그리고 둘의 신체와 생김새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정밀검사에는 매우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다. 이런 조사와 검사는 자신들을 통해서 생길 수 있는 한 인간에 대한 종의 특성을 숙고하는 일이다.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난 지금 그녀와 함께 건강한 자식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그녀를 탐색하고 있는 것인가. 쇼펜하우어는 또 틀렸다. 난 그저 그녀를 보고, 듣고, 맡고 싶었을 뿐이지, 절대로 만지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만질 수 없었고, 만지면 안 되었다. 나는 그럴 자격이 없는 놈이었다.
“저보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네요. 이 학원 분위기를 아직 모른다고 하면서.”
그녀의 동공은 더 검어지고, 홍채에는 더 많은 선들이 뚜렷이 보였다.
“원래 이 학원 분위기가 이런 가요?”
“네? 저도 들어온지 얼마 안 돼서. 잘 모릅니다.”
대답을 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교무실 밖으로 나갔다. 그녀와 대화를 더 이어나갈 정도로 내 심장이 강하진 않았다. 계속 말을 이어가면 평소보다 세게 펌프질 하는 내 심장이 그녀에게 들킬까 봐 계속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자세히 보고, 자세히 듣고, 자세히 맡았다.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했다. 학원일은 당연히 뒷전이었다.
며칠 뒤, 개구리 팀장은 또 한 번 전체회의를 소집했다. 저번에 말했던 것은 전면 무효화한다는 발표였다. 나는 팀장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녀의 모습을 살폈다. 그녀가 나를 바라봤다. 또 심장이 나대기 시작했다. 그녀는 알 수 없는 묘한 미소를 나에게 보내 주었다. 나는 처음으로 똑같은 미소로 그녀에게 화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