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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 영 Aug 22. 2021

내가 뭐라고...

오늘도 어김없이 수업을 준비한다. 


문제를 들여다보며 이 문제는 다 맞추겠지 하며 들뜬 마음으로 미소가 나온다. 

숱한 수업 시간에 수도 없이 강조한 내용이었다. 강사는 선생은, 자신이 알려준 노하우 덕택으로 

제자가 올바른 답을 내었을 때, 쾌감이 밀려온다. 


"선생님 덕분에 이 문제를 쉽게 풀었어요? 감사합니다!"


커피 한 잔을 입술에 축이며 이제 곧 문을 두드리고 올 학생들은 다른 날보다 더 애타게 기다린다. 


문제풀이를 시켰다. 예상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학생들은 문제 속에서 길을 찾고 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몰려왔다. 

내가 알려준 대로 푼다면 진작에 정답을 고르고, 의기양양하고 조금은 건방진 미소를 짓고 있어야 했다. 


'다 풀었니?'라는 소리에 몇 명은 깜짝 놀란다. 

내 안에 슬슬 뜨거운 것이 치밀기 시작한다. 


제자는 스스로를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행여 틀린 답을 내었을까 봐 더 조심스러워졌다. 


결과는 한 명도 맞추질 못했다. 결국 내 안의 뜨거운 것은 가만히 삭혀 있지 못해 입 밖으로 뿜어져 나오고 말았다. 


"가르쳐 줬잖아? 그런데도 못 풀어?" 


학생들은 내 앞에 머리를 조아려 미안함을 표시했다. 

평소보다 높아진 억양으로, 평소보다 더 많은 침을 튀기며 

그 문제를 다시 설명했다. 학생들의 표정을 읽었다. 

내가 알려준 것을 기억해 내어 문제의 정답을 고르지 못했다는 죄책감, 

그리고 다소 빨갛게 격양된 내 얼굴을 힐끗 보고 생긴 (경험으로 축적된) 두려움이 보였다. 


결국 나는 또 화내고 말았다. 그렇게 다짐했건만. 

절대로 학생들에게 가르쳐 줬잖아라는 말을 하지 않기로 그렇게 맹세했건만. 

오늘도 또 이 말을 내뱉고 만 나 자신을 또 원망했다. 


강사는 절대 이따위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한 번, 두 번 가르쳐 주었는데, 학생이 까먹고, 또 까먹어도 강사는 선생은, 

가르쳐 준 것도 모르냐는 말로 제자를 결코 타박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선생은 백 번 몰라도 또 알려줄 마음의 그릇을 가져야 한다. 

없으면 반드시 만들고, 키워 나가야 한다. 

물론 이는 말처럼 그리 쉽지 않은 문제다. 

어느 날, 나는 또 결국 그 말을 하고 말았다며 

구제불능이라는 반성으로 나를 채찍질할지도 모를 일이다. 


얼굴에 묻어난 빨간색을 지우기 위해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럴 수도 있지. 이제는 알겠니? 다시는 잊지 마." 


학생들의 얼굴에서 어느 정도의 두려움과 자책감이 사라졌다. 


선생은 항상 응원할 수 있어야 한다. 

당근은 주어야 할 때 확실하게 반듯한 방법으로 주어야 하고, 

채찍은 자존감에 생채기가 나지 않도록 온화하고 따뜻해야 한다. 


나도 아직은 멀었다. 한참 멀었다. 이 글을 쓰면서라도 계속 나에게 채찍질을 가할 뿐이다. 

이렇게라도 해야 한다. 내가 뭐라고. 

나는 그들을 혼낼 만한 그 어떠한 권한도, 권리도 없는 사람이다. 

그저 옆에서 함께 응원하고 도와주는 사람일 뿐이다. 




 2021. 8. 18. 새벽

텅빈 교실에서

와이제이






P.S) 애들이 아까 화내서 미안하다. 사실 화낸 거 아니야. 

살짝 혈압이 올랐을 뿐이야. 너네 더 잘할 수 있어.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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