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 영 Aug 07. 2021

에필로그


 학생 A가 찾아왔다. 레쓰비와 초콜릿이 보여 더 반가웠다. 학생 A는 말했다. 


“선생님, 행복이 뭔지 생각해 봤어요. 유튜브를 보니 행복에 관련된 강의가 많더라고요. 보고 나서 생각해 봤는데...”

“봤는데?”


 그날따라 손이 미끄러워 초콜릿 껍질이 잘 벗겨지지 않아 속상했다. 학생 A는 끙끙거리던 내 손에서 초콜릿을 빼앗아 대신 벗겨주며 말했다. 


“제가 제일 행복할 때는 장애인 복지센터에 가서 장애인 분들을 도울 때였던 거 같아요. 그때 뭔가 제가 살아있음을 느꼈어요.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느꼈을 때, 전 그때의 가슴 벅차오르는 감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계속 자원봉사를 하고 있고요.”


 학생 A는 철학을 했다. 철학은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묻고 탐험하는 과정이다. 철학자 샤르트르는 실존이 본질보다 앞선다고 말했다. 목적 없이 존재하는 사물은 없다. 연필은 종이 위에 쓰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져 세상에 존재하며 의미를 가진다. 연필은 본질이 실존보다 앞선다. 반면에 인간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 샤르트르는 인간이 먼저 존재하고 그다음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존재이므로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라 주장했다. 하지만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는 타인에 의해 제한된다.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은 인간에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 참다운 존재감을 느끼며 사는 방법은 타인과 함께 공존하며 그 안에서 자유롭게 의미 있는 자신의 삶을 선택하여 살아갈 때 만 가능하다. 학생 A는 행복을 타인을 돕는 데서 찾았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타인에게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할 때 얻는 행복 또한 참다운 행복 중 하나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훌륭한 답변이었다. 역시 학생 A는 한국을 짊어지고 갈 미래의 역군임에 틀림없다. 학생 A에게는 곧 내가 이 학원을 그만둔다는 사실을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에게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진정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싶은 걸까? 2021년이 시작되면서 암담함이 몰려왔다. 돈도 직업도 없었다. 자칫 하면 삶의 희망도 없어질 것 같아 두려웠다. 오랫동안 가보지 않았던 옛날 그 산에 다시 올라가 봤다. 산은 그대로였고, 내려다보이는 정경은 많이 바뀌었다. 산을 내려오면서 한 동안 등한시했던 책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책장에 꽂혀 있었던 책들을 하나씩 다시 꺼내 읽으면서 옛 생각에 잠겼다. 책에 적혀있던 내 글들을 한데 모아봤다. 소크라테스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라 했고, 쇼펜하우어는 고통의 실체를 알려주었고, 니체는 고통 속에서 빠져나오려는 용기를 알려 주었다. 결국 나는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고통 앞에 굴하지 않고 계속 당당히 앞을 향해 걸어 나갈 때 살아 있음을 느끼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고통의 순간마다 어떻게 견디며 살아왔을까? 내 인생을 톺아보면, 행복이라는 감정의 근간에 항상 사랑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과거에는 친구와 그녀가 있었고, 지금은 친구와 아내와 딸이 있다. 고통 속에서 헤쳐 나갈 수 있었던 힘은 늘 사랑하는 사람 덕택이었다. 사랑이라는 에너지는 무한하다. 사랑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지옥을 천국으로 바꿀 수도 있다. 사랑은 일방향이 아니다. 언제나 쌍방향이다. 주고받는 것이다. 주고받음으로써 서로의 존재감은 튼튼해진다. 내가 먼저 줄려고 하는 마음이 사랑이다. 내가 먼저 주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한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은 그렇게 하려는 노력에서 나온다.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나는 그 방법으로 책을 선택했으며, 결코 후회하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한다. 이 천년 전부터 살아온 지혜로운 자들의 말이 지금도 생생히 살아 숨 쉬고 있는 책 속에서 나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찾고, 그로 인해 사랑을 먼저 줄 것이며, 거기에서 존재감을 느끼고, 고통스러운 삶을 헤쳐 나갈 때마다 간간히 찾아오는 행복을 맛볼 것이다. 


 영화를 했던 사람이기에 내 인생이 한 편의 영화와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 인생’이라는 영화의 감독은 나이고, 주연도 나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조연으로 나오며, 가끔은 나에게 고통을 주는 악역들과 시대적 상황도 존재한다. 위기가 없는 영화는 없으며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 채 허무하게 끝나는 영화는 재미없어서 만들고 싶지 않다. 내 영화의 주인공은 삶의 경험과 철학이 적절히 혼합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지금 나는 또 다른 국면의 위기 속에 빠진 나를 촬영 중이다. 아직 구상 중이긴 하지만, 아마 주인공은 어떻게든 이 위기를 극복하고 절정을 맞이할 것이며 거기에서 진한 행복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계기와 장치가 필요하다. 이렇게 시나리오를 써보면 어떨까? 


 고난에 빠진 주인공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2021년 새해 글을 쓰기로 다짐했고, 운이 좋다면 책으로 출판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될 것이라는 희망에 부푼다. 인생은 또 모르는 것이니까.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게 되면 또 한 번 가난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생각하며 주인공은 생활고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꿋꿋이 글을 쓰기 시작한다. 설마 하는 심정으로 주인공은 2021년 2월 브런치라는 사이트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작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같은 해 3월, 한 출판사로부터 출판 제의를 받게 되면서 주인공은 또 한 번 위기를 극복할 돌파구를 찾게 된다.


괜찮은 시나리오다. 나는 해피엔딩을 좋아하며 이 영화 또한 해피 엔딩으로 끝날 것임을 안다. 꼭 그렇게 할 것이다. 




* 출간 예정인 책의 에필로그 초고 입니다. 이 브런치북에서는 책의 중간 부분이 누락되어 있습니다. 혹시라도 의아해 하실까봐 적어 봅니다.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1984 = 200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