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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 영 Sep 13. 2021

배우 정만식

돈 보다 꿈을 선택한 사람



One of my favorite movies is Forrest Gump. It’s the story of a naive young man from Alabama with a good heart who keep stumbling into success in spite of himself. 

 [2012년 3월 고2 전국연합 모의고사 22번]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는 ‘포레스트 검프’이다. 이 영화는 자신도 모르게 우연히 계속해서 성공하게 되는 착한 성품을 지닌 앨라배마의 한 순진한 청년에 대한 이야기다. 


 수업 중에 영화와 관련된 지문이 나올 때마다 나는 심장이 뛴다.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한 양가감정이 나를 그렇게 만든다. 모의고사 지문에 이 영화가 등장했을 때는 더 그랬다. 포레스트 검프는 내 인생영화였고, 나는 이 영화를 본 후 영화감독의 꿈을 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나는 내 인생영화로 이 영화를 1위로 꼽는다. 혹시라도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은 사람을 위해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학생들은 눈앞에 있는 영어강사가 영화감독의 꿈을 꾸었다는 사실에 신기해하며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심하게 조르기도 하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난감하다. 그리 자랑할 만한 내용이 없어서다. 그래도 한 가지를 말해 달라면 나는 배우 정만식과의 추억을 떠올린다.



배우 정만식 <출처 : 위키미디아>





 당시 나는 미래의 봉준호를 꿈꾸며 밤새 시나리오를 쓰고, 단편 영화를 만들고, 돈이 필요할 때면 여기저기 영화판에서 허드렛일을 했다. 일당, 주급, 월급이라는 개념은 없었고, 조감독이 그때그때 (지 기분에 따라) 주는 대로 돈을 받았다. (지금은 영화 스텝들의 처우가 많이 좋아졌기를 바란다.) 대충 헤아려보면 300만 원 정도 되었다. 월급이 아니라 연봉이었다.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돈보다 값진 경험을 번다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영화판은 돈보다 화려했다. TV나 영화에서 나오는 유명 배우들을 현장에서 직접 볼 수 있었고, 정우성과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운 좋은 날도 있었다. 손예진과 마주하며 밥도 먹을 수 있는 호강도 누렸다. 


 배우 정만식과는 단편영화를 찍을 때 처음 만났다. 그는 당시 대학로에서 연극을 주로 하고 있었고, 단편영화 몇 편에 가끔 출연하며 연기 경력을 쌓고 있을 때였다. 당시 무명이었던 그의 연기를 지켜보며 나는 이 배우가 머지않아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배우가 될 것이라 확신했다. 


 그는 가난했다. 그의 모습에는 삶의 비루함에서 나오는 간절함이 있었다. 나는 그 간절함을 이해했다. 나 또한 감독으로서 성공하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간절함이 그의 연기에서는 묻어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간절함은 연기를 과장되게 한다. 영화 속 인물은 보이지 않고, 배우만 보이게 한다. 몇 편의 영화 작업을 통해 그런 배우를 이미 많이 만나 본 상태였고, 나는 그가 그런 연기를 하지 않기를 바랐다. 


 내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그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누를 수 있는 배우였다. 튀지 않고 적절한 조화를 이뤄냈다. 기본적인 연기 능력도 탁월했다. 밋밋한 대사 한 마디에도 고민의 흔적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자신보다 영화를 위했기에 그렇게 했다. 그는 다른 배우들과 스텝들의 노고를 단숨에 잊게 하는 유머를 가지고 있었고 그 힘은 위대했다. 선을 지킬 줄 알았던 그의 유머는 가볍지도, 속되지도 않았다. 내 눈에 그게 보였고, 난 그것을 높이 평가했다. 쉬는 시간 그와 담배를 피우며 그를 칭송했다. 그는 어쩔 줄 몰라하며 고마워했다. 나는 그에게 꿈을 물었다. 그는 진정한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똥배우라도 좋으니 배우가 하고 싶다 그는 말했다. 조연이라도 좋으니 평생 연기만 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의 눈은 촉촉해 지기까지 했다. 그는 유명해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저 배우로 존재하고 싶어 했다. 그의 연기는 겸손했고, 그래서 더 돋보였다. 그는 자신만의 연기철학을 가지고 있었고, 나는 그의 철학을 존경했다. 그는 나에게 머지않아 내가 좋은 감독이 될 것이라는 덕담을 해주었다. 빈말처럼 여겨지지 않아 힘이 났다. 그의 표정은 장엄했고, 장엄함은 진지해서 든든했다. 우리의 나이는 같았고 둘 다 젊었다. 우리는 둘 다 영화를 했다. 우리는 둘 다 가난해서 통했다. 우리 둘은 가난해서 불행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 둘은 하고 싶은 일은 하고 있기에 행복한 사람이라며 서로를 위로했다. 우리 둘은 서로를 위해 각자가 보지 못한 행복을 드러내 주었다. 우리 둘의 대화는 확실한 행복이었다. 


 우리 둘은 각자의 길을 갔다. 정만식은 배우가 되었다. 영화 <똥파리>로 똥배우가 아닌 참배우가 되었다. 나는 영화를 포기하고, 영어강사가 되었다. 





 지난 20년 동안 그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행복이었다. 핸드폰을 찾아보니 전화번호가 없었다. 언젠가 한 번 폰을 잃어버리고 연락처 또한 다 없어지게 되어서 그랬다. 연락처를 가지고 있었다 해도 난 그에게 먼저 연락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에게 누가 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서다. 게다가 난 더 이상 그쪽 사람도 아니다. 그가 나를 기억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고려대학교 앞 막걸리 집에서 함께 영화를 했던,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그 시절의 그와 나를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팬으로서 멀리서 응원한다. 그의 앞길에 행복만이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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