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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 영 Sep 13. 2021

돈 말고 꿈

  매년 고3 학생들과 원서를 쓰기 위해 진로상담을 하게 될 때면, 나는 꿈이 뭐냐고 묻는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이 질문의 답으로 원하는 대학을 말한다. 그럴 때마다  ‘아니 대학 말고, 꿈이 뭐냐’며 나는 되묻는다. 회계사, 변호사, 의사, 교사, 공무원의 대답이 나오고 나는 또다시 되묻는다. 아니 직업 말고 꿈이 뭐냐고. 어떤 학생이 꿈은 ‘건물주’라고 답한다. 나는 ‘돈 말고, 꿈이 뭐냐’고 재차 되묻는다. 이 질문에 주저 없이 답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몇몇 학생들은 내가 또 소크라테스로 빙의했다고 웃는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Socrates said, “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
                       [2017년 4월 고3 전국연합 모의고사 19번]
 
 “성찰하지 않은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성찰이 필요하다. 성찰은 자신의 모든 것을 뒤돌아보고 반성하는 것이라 사전에 나와 있다. 성찰을 하게 되면 자신을 알게 된다. 자신의 장점과 단점,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삶의 궁극적 목적에 대한 대화를 자기 자신과 나누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며 단호하게 말했다. 소크라테스로 빙의한 나는 학생들에게 말했다. 자기 전 스마트 폰을 내려놓고, 잠시만이라도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성찰해 볼 것을, 그리고 자신이 꿈꾸는 삶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달라고  나는 학생들에게 강권했다.


 성찰을 통해 자신의 꿈을 제대로 상정한 학생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불행히도 대다수의 학생들은 성찰이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도 모르고 그래서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꿈은 순진한 사람이나 갖는 것으로 돈만 추구하는 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버렸다. 학생들은 그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꿈에 대해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대신 사회가 정해놓은 선택지 중에 하나를 고른다. 그래야 꿈이 야무지다고 칭찬받고, 인정받는다. 


 내가 생각하는 꿈은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묻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가에 대한 사유는 그들의 귀한 시간을 뺏는 사치가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학생들에게 꿈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고 권했다. 꿈이 먼저 있어야 하고, 그다음에 직업이랑 대학을 결정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점을 힘주어 말했다. 대학도 선택일지 모른다. 필수는 아니다. 돈도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주었다. 돈을 좇는 꿈은 결국 의미 없는 삶이 되고 말 것이라는 것도 이야기해 주었다. 이런 내 말에 학생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선생이 고상한 척하는 말이라 치부하는 듯 보였다. 나는 내 제자 중의 한 명을 예로 들어 말을 이어 갔다. 




 A학생은 동물을 돌보는 삶을 살고 싶어 하는 꿈을 가진 학생이었다. 의미도 있고, 가치도 있는 삶이어서 바람직하다고 칭찬해 주었지만, 학생은 그런 삶을 살고 싶어 수의사가 되고 싶었는데 성적이 안 나온다고 푸념했다. 열심히 해도 안 될 것 같다고도 말했다. 수의학과를 가기 위해서는 수학을 잘해야 한다. 수학이라는 학문의 가치와 중요성을 A학생은 인정했다. 수학을 폄하하고 싶어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수학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학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수의사의 일을 포기해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했다. A학생은 현실에 순응했다. 열심히 수학 공부를 했다. 하지만 결국 수의과에 진학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고, 오랜만에 A학생에게 연락이 왔다. A학생은 어느덧 20대 중반의 나이가 되어 있었다. A학생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동물병원에서 알바를 했다. 그곳에서 일하는 동안 한 번도 일이 싫었던 적이 없었고, A학생은 자신이 정말로 이 일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A학생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A학생은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를 보고, 용기를 내어 아프리카로 떠났다. 집안 모두가 만류했지만, A학생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인터넷 정보만을 보고 출발해 케냐에 도착한 A학생은 무작정 나이로비 국립공원 관리소를 찾아갔다. 일을 배우러 왔다고 하자, 처음에는 다들 코웃음을 쳤지만 A학생의 끈질긴 구애 끝에 작은 일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A학생은 열심히 일했다. 일한 지 3년이 넘어갈 때, A학생은 그곳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직원이 되었다. 코끼리 똥을 치우는 것은 A학생에게 더 이상 두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자에게 마취총을 쏘는 일도 A학생에게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자가 병을 고쳐 아프지 않기만을 바라는 마음뿐이었고, 그 마음은 한결같았다. 


A학생의 어머님이 아프셔서 어쩔 수 없이 귀국을 결정했다. A학생은 그 상황에서도 사랑했던 동물들이 눈에 밟혀 쉽게 짐을 꾸리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A학생은 동물들이 보고 싶어 참을 수 없었다. 마침 한국 최고의 동물원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를 접했다. A학생은 원서를 넣었고, 약속된 날에 면접을 보러 갔다.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A학생 좌우로 앉아 있었고, 다들 내놓으라 하는 대학 출신의 사람이라는 것을 A학생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A학생은 자기소개서에 나이로비 국립공원에서 일했던 경험을 상세하게 기술했다. 면접관은 A학생에게 딱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여기에 쓰인 모든 것이 사실이냐고.’ A학생은 담담하게 그렇다고 답했다. 면접관은 바로 내일 출근하라는 말로 합격이라는 말을 대신했다. A학생은 지금 동물원에서 일한다. 그리고 또래 친구들보다 많은 연봉을 받고 있으며 무엇보다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A학생은 나에게 근사한 저녁을 대접하며 이 이야기를 해주었다. 앞으로도 영원히 남을 행복한 기억이다. 




 A학생은 돈을 좇지 않고 꿈을 좇았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었고 넉넉한 돈을 벌게 되었다. 나는 매년 고3들과 함께 하는 진로상담에서 이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해준다. 학생들이 자신만의 꿈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어서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도 물론 훌륭한 일이다. 자신의 주어진 능력을 백분 활용하여 모든 과목을 골고루 열심히 공부한 그들이 가져야 할 마땅한 결과다. 하지만 골고루 잘하는 학생이 그리 많지 않다. 대한민국 명문 대학은 그들을 받아주지 않는다. 학생의 잘못이 아니다. 골고루 잘하는 능력 대신 어느 한 분야만 잘하는 능력을 타고 나서다. 그 능력이 대학이 원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입학사정관제도, 특기전형과 같은 현행 대학입시는 절대로 그런 학생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대학은 성적을 평가할 뿐, 한 사람이 가진 잠재성을 평가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 입시제도의 한계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들도 그렇게 믿고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것에 낙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생은 결코 대학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인생은 공평하다 생각해야 한다. A학생처럼 누구도 평가할 수 없는 자신만의 확고한 꿈이 있다면 인생은 반드시 그들에게 기회를 준다. 기회는 꿈을 잃지 않은 자에게만 보인다. 기회를 포착하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한 노력과 용기가 있으면 된다. 대학 결정은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결코 인생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돈도 인생이 목적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돈은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분명 따라온다고 믿었으면 좋겠다. 내가 이렇게 말했으니, 당연히 그런 삶을 살기 위해 나도 노력한다. 올바른 선생의 마음가짐이라며 스스로 칭찬하며 산다. 돈은 분명 따라온다. 나도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갈 테니 부디 내 제자들도 그렇게 살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성찰을 통해 꿈을 꾸기를 희망한다. 소크라테스도 우리를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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