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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쁨과 감사 Oct 30. 2021

[아빠가 잊은 것] 시작 - 난임시술

공포의 배주사

결혼이 많이 늦었지만 임신에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저도 아내도 술과 담배는 입에 대지도 않았고, 둘 다 건강한 편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20대 때부터 꾸준히 축구를 즐겼고 헬스장에 다녔습니다. 에이스는 아니지만 회사 대표 축구 선수에는 항상 뽑힐 정도의 실력과 체력을 가지고 있어요. 아내는 39살까지 매년 5km 마라톤을 꾸준히 뛰었고 기록도 1시간 초반을 기록할 정도로 남자인 저보다 체력이 좋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큰 걱정 없이 자연스럽게 생활하다 보면 임신이 될 거라 생각했지요. 오히려 아기가 너무 빨리 생겨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지 못할까 염려했던 적도 있습니다. 연애가 짧고 결혼이 늦다 보니 같이 해보지 못한 것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아이가 빨리 찾아오지 않더군요. 주변에서 시술 권유가 많았지만 다음번에는 생길 거라며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어느새 2년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슬쩍 이야기를 꺼내더군요.


"우리, 병원에 한번 가볼까요?"


그렇게 저희 부부의 난임 시술이 시작되었습니다.


집에서 30분 거리에 여성전문병원을 찾아가 보기로 했어요. 처음 방문한 날은 평일이었는데도 주차장에 차가 가득했습니다. 배가 부른 임산부들이 분주하게 병원을 오가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저런 순간이 올까 하는 부러운 마음이 들더군요. 산과가 있는 2층을 지나서 난임과가 있는 3층으로 향했습니다. 접수를 하고, 이름이 호명되고, 드디어 의사선생님을 만납니다. 아마도 여러 사연을 만났을 것 같은 선생님은 친절하게 난임 시술과 사전에 필요한 검사를 알려주셨습니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난 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기분을 전환할 겸 단골 카페에 들러서 맛있는 커피를 한잔 마셨습니다. 배란 촉진제가 여성 몸에 무리를 준다는 걸 알고 있기에 검사 결과가 좋아서 시술이 불필요하다는 진단을 받기를 기도하면서요.

며칠 뒤에 방문한 병원에서 듣게 된 검사 결과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습니다. 남편의 정자는 운동성이 조금 떨어지고 아내의 난소 나이는 실제 나이와 같게 나왔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임신 가능성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선생님의 설명에 아내와 남편 모두 얼굴이 어두워집니다. 시술의 종류는 인공수정과 시험관이 있다는 설명을 듣고 결정해서 찾아뵙겠다고 하고 병원을 나섰어요. 선생님은 시술을 하려면 다음 생리일 3일 이내에 방문하셔야 한다는 당부와 함께, 검사 결과를 고려해볼 때 빨리 시술을 하는 것을 권한다는 말씀을 덧붙입니다. 물론 맞는 말씀이겠지만 공연히 심술이 나는 것을 어찌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상이 없는데 시술을 유도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난임치료에 대한 공연한 부끄러움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말이죠.


자연 임신에 대한 미련을 놓기가 힘들지만 아내도 저도 더 미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의논 끝에 인공수정을 먼저 하고 실패하면 시험관 시술을 하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인공수정은 정자를 자궁 깊숙이 넣어서 임신 확률을 높이는 것이고, 시험관 시술은 난자를 채취한 후 정자로 수정란은 만들어서 자궁에 넣어주는 방법입니다. 임신에 성공할 확률은 각각 15%, 30% 수준이라고 합니다. 일 년 안에는 임신이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짐작해 보았습니다.


시술이 시작되자 상당히 까다로운 일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선 과배란 유도를 위해 배주사를 직접 놓아야 했습니다. 제가 겁이 많아 배에 주사를 찌르는 것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아내가 바늘을 찌르면 제가 주사기를 눌러서 마무리하는 것이었습니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주사해야 하는데 제가 새벽에 출근하는 바람에 아내도 덩달아 아침잠을 포기해야 했어요. 질정도 아침저녁으로 챙겨서 넣어야 했고 호르몬 주사의 부작용인 두통과 요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병원 방문 때문에 수차례 휴가를 쓰며 주변 동료들 눈치를 보는 건 덤이었어요. 아침마다 배에 스스로 바늘을 꽂으며 아파하는 아내를 보면서 처음으로 출산의 고통을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다행히 아내는 큰 부작용은 없었지만 난소 과자극 증후군이 심한 분들은 복수가 차거나 호흡곤란이 오는 경우도 있다고 하죠. 배주사를 무사히 졸업하고 소중한 난자를 세 개를 얻자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문제는, 이 과정이 길고 힘든 임신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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