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구리에게 보내는 편지
가로등이 없는 어둡고 낯선 길이었다.
"덜커덩"
너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너의 시체였다.
나는 곧 콧등이 시큰거림을 느꼈다. 한없이 미안한 마음. 너는 얼마나 더 같은 고통을 반복해야 할까. 품위 있는 죽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조용한 죽음 정도는 줄 수 있지 않았나. 믿지도 않는 나의 신에게 한없이 실망했다.
너라는 생명은 왜 이 땅에서 먹이를 찾아 헤매는 힘없는 동물로 태어나, 겨울의 배고픔을 피하려 사람이 만들어놓은 마른 강을 건너다 무참히 치이고 짓밟혀야 했을까. 어떤 우연이 만나 나는 오늘 너의 죽음을 만나게 된 걸까.
나는 사람으로 태어나 이 겨울에도 히터가 나오는 따뜻한 차를 타고, 느린 다리로도 너보다 빨리 달린다. 그런데 너는 짐승으로 태어나 배고픔과 추위에 맞서 싸우다, 필사적으로 달려서도 결국 차가운 길 위에서 생을 마감하는구나. 정말 너는 전생에 죄를 짓고, 나는 전생에 착한 일을 해서일까. 그렇다면 나는 또 너의 시체를 밟고 가는 죄를 지었으니 다음 생에는 너와 같은 고통을 느끼며 죽어가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모두 돌고 돌며 죄를 짓는 것일까. 그렇다면 꼭 태어나야만 하는 것일까.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데, 도로 위 차갑게 식어가는 너의 존재가 참 슬픈 우연이다.
나는 다시 태어나기가 싫다.
너처럼 아무 이유도 알지 못한 채 길에서 차갑게 죽어가기가 싫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태어나 전쟁에 시달리기가 싫다. 홍수가 초가집마저 삼키고 지붕마저 사라진 곳에서 잠이 들기 싫다. 학교에 가는 대신 쓰레기 더미에서 돈이 될만한 물건을 뒤지기가 싫다.
다시 이 정도 살만한 나라에 태어나, 다시 부유하지는 않지만 단란한 가정에서, 지붕이 있고 바닥이 따뜻한 집에서, 적당한 교육을 받고 배불리 먹으며, 가끔은 여행도 다니며 살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몇만 분의 일의 확률 일지 알 수가 없다.
돌아보니 나는 오늘 너의 시체에 위로를 받았구나. 또 하나 죄를 더했으니 다음 생은 또 이생보다 못할 것만 같다. 삼가 너구리의 명복을 빕니다. 좋은 곳으로 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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