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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오 Oct 24. 2021

For noise

카더가든 <beyond (feat. O3ohn)>

 쉼 없이 운동장을 뛴다. 초록색 잔디 옆의 자주색 트랙을 밟는다. 귀에 꽂은 에어팟에선 이 밤과 맞지 않게 흥겨운 노래가 들린다. 언제부터였을까. 가만히 있는 게 불안해진 건.


 "별 생각 다 하면서 산다." 친구는 내 맥주 캔에 자신의 커피를 부딪히며 말한다.

 "그래? 난 꼭 줄타기를 하고 있는 거 같아."

 "줄타기? 그 영화에서 광대들이 하는 거?"

 "그래, 그거. 어릴 땐 분명 탈 수 있는 줄이 수도 없이 많았어. 과학을 공부하다 보면, 과학자가 될 거란 희망을 품어봤고, 영어를 하다 보면 꼭 외교관이 될 거 같았어. 내가 선택만 하면 됐었지. 난 잔뜩 놓인 가능성들이 얽힌 줄로 된 길 위를 걷기만 하면 됐었어.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수많은 줄들이 사라지고, 사라져서 이제는 몇 가닥 남지 않은 거 같아. 난 그 얇은 줄들 위에 간신히 버티고 서있는 거 같고 말이야."


 "흠..." 친구는 내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다 묻는다.


 "너 오늘 하늘은 본 적 있냐?" 나는 그 물음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서있기도 힘든데 무슨..."

 "그래도 한 번쯤은 봐. 줄 위에서 손 발 다 쓰며 버티지 말고 하루쯤은 하늘 보고 산책도 하면서 기지개 좀 켜어." 친구는 말을 끝내고서 기지개를 켜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내게 카톡을 보낸다.


 '하루에 한 번은 하늘 보기(0/1).'


 다음 날은 여전히 바빴다. 오전 내내 한 달여 남은 자격증 시험공부를 했고, 오후에는 수업 때 있을 발표를 준비했다. 내 모니터 상단의 할 일 목록은 여전히 한 일보단 해야 할 일이 더 많이 남아 있었다. 시간은 어느새 오후 10시,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헬스장에 갈 준비를 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친구였다.


 "왜 퀘스트 완료했다는 말이 없어?"

 "바빠. 알잖아."

 "몰라. 그냥 지금이라도 해."

 "그래, 알았다. 알았어."


 나는 한숨을 쉬고서 가방을 내려놓는다. '그래, 산책이나 하자.' 생각하며 밖을 나선다. 챙긴 건 핸드폰 하나. 이어폰을 챙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지만, 금방 들어가리라 생각하며 기숙사 앞 캠퍼스를 걷는다. 오랜만에 자유로워진 팔을 뒤로 젖혀보고, 목도 좌우로 풀어준다. 하지만 보도블록을 밟을 때마다 떠오르는 건, 아직 남은 일들. 이제 하늘도 봤으니 돌아갈까 생각하다 못내 아쉬워 기숙사 앞 벤치에 앉는다. 벤치 옆은 언젠가부터 가지 않게 된 프랜차이즈 카페가 있었고, 입구 앞 스피커에서는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매일 토해내는 젊음을 누군가 알아주길. 난 누구에게나 필요한 사람은 아닐 테니까."


 들려오는 노랫말을 따라 중얼거렸다. 꼭 내게 말해주는 것처럼. 나는 다시 일어서서 기숙사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오후 11시의 길거리를 걸었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이 보이지 않는 거리에는 청량한 풀벌레 소리가 가득했다. 발 밑에는 급하게 추워진 날씨에 낙엽 지지 못한 가을의 쓰라린 나뭇잎 소리가 들렸다. 매번 걷던 길은 자신만의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줄 위에서 모든 것을 이어폰과 핸드폰으로 막고 있었다. 그날엔 그날에만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있는데, 나는 무엇을 찾고 있었을까.


  나는 지나쳐간 날들을 돌아봤다. 매번 이뤄낸 것보다 실패한 일에 자신을 의심했고, 끝없이 높은 곳을 바라보며 하루를 넘겼다. 노랫말처럼 매일 젊음을 토해냈다. 그러다 보니 일상의 여유는 어느새 숨었나 보다. 이제 숨바꼭질을 끝낼 때가 왔다.  그래, 난 누구에게나 필요할 수는 없으니까. 내 하루를 만들어준 소음들을 위해, 내 옆에 서있던 사람들을 위해. 내게 말한다.


 "오늘은 이 정도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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