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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인공김씨 Aug 19. 2024

내 나이 37, 혼자가 익숙해지다

< 박사가 되고 싶은 일개미 >

나는 고민할 여지도 없이 외향형 인간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단상 앞에서 상장을 받을 때 친구들이 주목하는 그 느낌이 좋다는 이유로 각종 경시대회, 시험, 방과 후 활동에 몰두했었다. 심지어 방학하기 전에 나눠주는 탐구생활을 잘 썼을 때 주는 상장을 받기 위해 원본의 다섯 배나 되는 두께로 참고자료를 덕지덕지 붙여서 탐구생활을 제출했었던 기억이 난다. 학생 때는 다른 재주가 없었기 때문에 공부를 잘하는 것이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했고 반장선거에도 자주 나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중, 여고에서는 매우 얄미운 타입의 친구였을 것이다. 무슨 일에든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고, 조용히 있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웠다. 대학에 가서도 과대표를 맡을 만큼 적극적인 모습은 유지되었다. 항상 점심과 저녁식사 약속이 있었고 여러 그룹에 속해서 친구들과 여행, 쇼핑, 봉사활동, 동아리 등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내가 처음으로 외로움을 느꼈던 것은 취업을 준비하면서부터였다. 친한 친구들과도 다른 진로를 선택했고 취업 공부를 위해 학원을 다니고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면서 친구들과 연락이 뜸해졌다. 초반에는 외로움이 커서 공부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하루 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을 때도 있었고 밥도 혼자 먹게 되면서 정신적으로 힘들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친구들과 대학교에 다닐 수는 없었고 취업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만 참고 견디자. 합격하면 다시 친구들과 신나게 놀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힘든 시간을 버텼던 것 같다. 취업에 성공한 예상과 달리 친구들과 다시 예전처럼의 관계로는 돌아갈 없었다. 이미 너무 다른 경로와 인생을 선택했기 때문에 공통점이 거의 없었고,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역시 달라졌기 때문이다. 대신 회사에서 친구를 사귀었다. 비슷한 또래들이 많았고 그들과 점심, 저녁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휴일이나 휴가도 함께 보내게 되었다. 역시 즐거웠다. 친구들과의 학교 생활이 즐거웠듯 그들과의 회사생활이 즐거웠다. 그러나 내가 간과했던 점은 그들은 직장 동료이지 학교 친구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의 고민이 회사 전체에 소문나고 나에 대한 나쁜 소문은 마음에 상처가 되었다. 무엇보다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관계를 맺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 과정에서 상처를 받고 점차 나만의 동굴 속으로 숨어들었다.

시간이 지나고 유학을 떠나게 되고 좀 더 마음이 단단해져 회사에 돌아왔다. 이전에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이제는 '그 사람은 그런 생각을 하는구나. 나와는 다르네' 정도로 그친다. 타인에게 관심도 가지 않고 그 관심을 나에게 주려고 노력한다. 그동안 생각보다 스스로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어떤 상황이 내게 스트레스를 주는지, 나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어떤 계획을 세우고 오늘 당장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혼자가 되었다. 


20대 중반 혼자가 된 것은 내가 선택했다기보다 취업을 위해 어쩔 수 없었던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랬기 때문에 혼자인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참아야 하는 특이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30대 후반 혼자가 된 것은 깊이 생각하고 고민해서 내 정신건강에 가장 도움이 되는 방법을 선택한 결과이다. 그래서 혼자인 지금이 마음에 들고, 혼자여도 외롭다기보다 일상을 보내고 색다른 체험을 하기 위해 정보를 검색하는 그 과정조차 만족스럽다. 나는 지금 정기적으로 연락하는 친구가 한 명도 없다. 뜸하게 옛날 친구와 연락이 닿기도 하지만 카톡 대화에 그치지 만나지는 않는다. 예전에는 이런 상황이 약간은 부끄러웠다. 친구가 없는 외톨이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별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저 이런 인생을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고,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사람들과 교류하고 필요에 따라 연락을 주고받는다. 그저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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