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사가 되고 싶은 일개미 >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자취를 시작했고 고향집에는 일 년에 두어 번 가게 되었다. 학교 생활이 즐거웠고 또래 친구들과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 것에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가끔 엄마가 잘 지내냐며 안부 전화를 했지만 나는 빨리 끊고 친구들과 놀기 바빴던 것 같다. 심지어 귀찮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러한 시간들이 쌓여 가면서 가끔 보내는 가족들과의 시간이 어색해지기 시작했다. 공부는 잘 되는지 졸업하면 무슨 직업을 가질 것인지와 같은 형식적인 질문과 대답이 오고 갔다. 그즈음부터 나는 솔로로서의 삶에 적응했고 누군가와 같이 사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가끔은 외로웠지만 누군가와 함께 해서 불편한 것보다는 가끔 마주하는 외로움이 낫다고 여겼다. 때문에 연애도 잘하지 않았고 항상 목표지향적인 삶을 살았다. 학점, 유학, 취업 등 차례로 달성해야 하는 과제로 생각하고 매년 목표를 정해 달성하면서 성취감을 느꼈다. 성과도 있었고 취업에도 성공하면서 이런 삶이 바람직하다고 스스로 확신을 더해 갔다.
열정 많고 화도 많던 이십 대가 지나니 회사에서의 자아가 허무해졌다. 회사에 영혼을 쏟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는데 나 혼자 기대하고 나 혼자 배신당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실망하고 돌아서기 시작했다. 회사인인 내가 사라지니 남은 것이 없었다. 내게서 회사를 빼고 나니 개인으로서 나는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앞으로의 20년은 그렇게 살지 않기로 다짐했다. 비록 시행착오가 길었지만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가족들과의 교류를 늘려 나가는 것이 첫 번째 노력이었다. 다행히 동반자도 생겼고 그 사람 덕에 가족의 중요성을 더욱 느끼게 되었다. 내 인생이 그 사람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가족과의 유대가 더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독거인으로 늙어 가는 삶을 예상하고 혼자 살 집을 사 두었던 내가, 누군가와 함께 하는 삶을 선택하고 가족을 만들고픈 나로 바뀌었다.
이제 더 이상 회사는 내게 의미 있는 장소가 아니다. 그저 연봉을 받고 주어진 일을 해내는 공간에 불과하다. 주된 자아는 가족에 있다. 주말마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다양한 활동과 여가 시간을 함께 한다. 새로 생긴 가족과의 시간도 새롭고 즐겁다. 내 중심은 가족이라는 점이 명확해지면서 회사에서도 긍정적인 직장인이 된 것 같다. 회사에 올인할 때보다 지금 더 충실한 삶을 살고 있다. 앞으로도 가족과 함께 하는 삶에 뿌리를 단단히 내리면서 회사인으로서의 나, 학생으로서의 나와 같은 줄기를 뻗어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