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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phapha Apr 10. 2020

지겨운 하루가 지나갑니다.


탁월한 집순이, 너의 아빠가 누군지 너의 행동만 보아도 알 것 같구나.

밥을 먹고도 엎으려 블록을 하는 아이에게 "밥 먹었으니까 앉아서 놀아야지"라고 했더니 황당한 말이 내 귓가를 스쳤다.

"지겨워"

7살 난 꼬맹이가 내가 한 말을 잔소리로 인식하고 있었다.

지. 겨. 워.



순간 너무 당황했는데, 다시 되물었다.

"별아, 방금 뭐라고 했어?"

"... 나 혼자서 말한 건데?" (급격하게 차분해진 내 목소리를 듣고)

"엄마가 밥 먹고 누워있으면 안 된다고 했지? 그런데 엄마가 한 말을 지겹다고 말한 거야?.... 알겠어. 그러면 앞으로 별이가 알아서 스스로 다해"

꼬맹이는 내가 '알았어 엄마 이제 신경 안 쓸게 알아서 해'라는 말만 나오면 엄청나게 운다.

"흐어어엉. 아이 싫어. 엄마 아니야. 그러지 마"

"엄마가 밥은 해줄게. 씻겨도 줄게. 대신 엄마는 별이가 어떻게 행동하는 신경 안 쓸게. 알아서 다해"

"엄마. 하지 마. 그러지 마. 엉엉엉"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리며 우는데 미동도 없는 나의 태도를 보더니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파묻혀 울기 시작했다.

흥. 그러든지 말든지.









"너네 집은 셋다 B형이야? 별이 사춘기 때 볼만하겠구먼"

순간 친구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지금 이제 7살이 된 아이의 이른 사춘기를 경험하고 있는 건가?

지겨워라니. 참나 기가 찬다. 정말.

울다가 다시 나와 내 상황을 점검한다.

"엄마. 엄~마"

"엄마가 별이랑 같이 놀다가 재미없다고 지겨워. 별이랑 있는 거 짜증 나. 그런 말 하면 기분 어떨 거 같아?"

"싫어"

"엄마 기분이 지금 그래. 엄마가 한 말에 별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속상해. (눈물연기)"

"엄마. 엉엉. 흥 (삐지면 맨날 흥부자 옴)"



<4살, 백희나 작가님의 알사탕을 읽는 척>




아이가 4살 때 서점에 가서 백희나 작가님의 알사탕 책을 집어 들었다.

이미 집에도 있던 책이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았던 책인데도 익숙한지 꺼내 들고는 글도 못 읽으면서 내가 읽어줬던 문장을 기억하고, 그림을 보며 글을 읽는 척을 해나갔다.

주인공 동동이 아빠가 퇴근 후에 동동이에게 마구마구 쏟아내던 잔소리가 그림책 한 페이지 전체를 커다란 텍스트로 가득 채운 장면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읽는 척했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엄마. 동동이 아빠 왜 이렇게 말 많아?"나에게 이렇게 묻던 4살 꼬맹이.

"그러게. 동동이 아빠 잔소리 쟁이인가봐"라고 대답했다가 오늘 역으로 당한 40살의 엄마.




어제저녁 5분 감사 일기장을 쓰면서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무엇을 했더라면 오늘 하루가 더 만족스러웠을까- 에 대한 질문에 아이의 말을 민감하게 받아들인 것? 그랬다면 울리지 않았겠지.

아직은 어리다고 생각하면서도, 버릇없이 키우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그래서 오늘 나의 행동에 대한 평가를 못하겠다고 썼다.

그리고 오늘 아침,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생각했다.

투닥거리고 가끔 어긋나더라도 남편과 아이, 우리 가족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자고.

5분 일기의 부작용이다.

별걸 다 감사하게 만들어버리고 부정적인 감정이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하게 차단시켜버린다.

5분 아침 일기, 지금 이 순간 감사하고 싶은 일은?이라는 질문에 아랫줄에 또 쓴다.

오늘은 금요일이다. 그래서 감사하다.

그저 감사하게 생각하자. 아이가 하나씩 배워가고 사리분별을 정확하게 하는 아이로 성장하고 있구나 정도로.

잔소리를 잔소리라고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눈치 빠른 아이로 크고 있다고.

내가 하루에 몇 번이나 아이의 행복을 검열하고, 일일이 확인하는 건 아닐까 반성하면서 감사한 마음을 마음껏 받아들인다.

잔소리 없는 금요일을 기대하며!





@byphap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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