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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phapha Apr 03. 2020

만우절 일상 (feat. 코로나 일상)

오늘은 반드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얼마 전부터 시작한 5분 아침 일기를 2번째 할 일로 남기고 노트북부터 켰다. 무엇을 쓸까 하는 고민도 없이 스트레칭을 하면서 오늘이 만우절이고 내가 요즘 매일같이 거짓말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매일 일어나고 있는 상황들이 거짓말이라고 믿고 싶을 정도로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가 코로나로 인해 패닉 상태이다. 이탈리아에서는 하루에 1 천명씩 사망자가 나오고, 시체가 성벽처럼 쌓여있다는 기사를 보고 정말 참담함을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생활에 침투해서 사람들의 일상을 파괴한 지 벌써 두 달이 다 되어간다.




아이의 봄방학을 시작으로 그때부터 나는 집에서 머물기를 작정했다.
집에 있다가 문득 새해 내가 꼭 이루고 싶었던 강력한 염원이 '침잠'이라는 걸 코로나 바이러스가 응원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어이없는 상상을 하며 긍정적인 마음을 키우려 노력한다.

2월 초 시작으로 봄방학을 며칠 앞둔 중순까지 전국적으로 몇 명씩 퍼지기 시작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람들의 불안감을 키우거나 마스크 사재기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유치원에서도 마스크를 끼고 수업을 받았던 아이는 우리 아이를 포함해 2~3명이 전부였다.
분위기가 이상함을 느꼈던 나는 미리 마스크를 구매해두었고, 나보다 더 발 빠른 사람들이 한번 훑고 간 쇼핑몰에는 품절이 뜨기 시작했다.

몇일만에 장당 150원꼴 하던 마스크가 개당 3천 원씩 하는 것은 물론이었고, 수요를 따라갈 수 없어 공급이 어려웠던 상황에서 사재기와 매점매석, 고가의 중고거래들이 연이어 소식을 알렸다. 개당 300원에 겨우 구매했던 1회용 마스크는 시스루처럼 너무 얇아 우스갯소리로 남편은 섹시하니 그 마스크는 절대 쓰지 말라고 할 정도로 물에 잘 녹는 3겹짜리 화장실 휴지가 더 두꺼웠다.

그마저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은 다행이었겠지만 나는 매일 줄어드는 마스크를 보며 마음이 조마조마했고, 출근하는 신랑이 제대로 된 마스크를 끼고 나갈 수 있게 나와 아이는 외출하지 않았다.
코로나 사회적 거리두기에 적합한 성향을 가진 집순이 딸은 9일 만의 외출도 거부했다가 겨우 설득한 끝에 봄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만 몰아 장을 보러 나갔고, 하필 이 시점에 신랑은 주말마다 출근을 했다. 독박 육아가 두 달쯤 지속되고 있는 현재에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상황을 만들 수 없어 글이라도 써야겠다는 심정으로 오늘은 부랴부랴 노트북 앞에 앉았다.



2월까지만 해도 조금 있으면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신천지의 대규모 감염으로 공포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이제 갇힌 공간에 머무르는 것이 걱정되어 외식은 꿈도 안 꾸고 있다. 무증상자, 생후 2개월 된 아기, 접촉자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연이어 나오고 매일 울리는 휴대폰의 코로나 상황 안내 문자 소리는 멍해져 있는 머릿속을 때리는 망치 같았다.








두 번의 개학 연기를 발표로 교육부에서는 어제 3번째 개학 연기를 발표했다.
초중고 학생들의 온라인 개학과 유치원은 무기한 휴업이었다. 미성년자의 감염자가 600명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개학은 당연한 말이고, 개학을 하더라도 보내지 않았겠지만 '무기한 휴업'이라니.

'무기한 휴업'

이럴 땐 아이가 두 명이 아닌 것이 아쉽기만 하고, 네 살 터울로도 괜찮으니 동생이 있어야 한다는 3년 전의 엄마의 잔소리가 생각나고, 나는 왜 둘째를 안 낳았을까 라고 생각을 하다가, 그러면 지금이라도 시도해봐야 하나 하는 호기심이 생기며 잠시 둘째에 대해 고민한다.
그러다 정신이 번쩍 든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신랑이 주말마다 출근하는 상황이 답답하고, 아이와 있을 때에는 아이에게 집중한다 생각하면서도 집안일을 하는 동안에도 나를 찾는 아이를 보면 한숨이 새어 나온다.
사회적 거리두기도 노력하면서 지금까지 가족 외식도 딱 한번 했다. 콩나물 국밥이 먹고 싶다는 꼬맹이에게 두 번이나 실패한 콩나물 국밥을 먹이기가 미안해 점심시간이 지난 뒤에 식당에 앉았었다.
강남은 여전히 북적인다는데 우리 동네는 도심과는 거리가 멀어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다.
나도 좀 숨 쉬고 싶어 사람 없을 때 놀이터라도 가자고 했지만 집순이가 거부한다.

몇일의 설득 끝에 젤리 협상을 하고 집 뒤에 작은 언덕으로 놀러 간다. 거기라도 오르락내리락 하니 숨통이 트인다. 작은 언덕을 돌고 내려오다가 눈에 보이는 운동기구를 하고 집에 돌아오면 준비하는 시간과 씻는 시간을 합해 두어 시간 동안 내 정신은 쉴 수 있었다.


매일 40분의 포켓몬 시청시간에도 시시함을 느낀 딸은 이제 포켓몬을 안 보겠다고 선언하며 나에게 40분의 자유시간도 허락하지 않았다. 함께 외웠던 포켓몬 ost로 인해 나는 새벽 독서시간에도 그 노래가 떠올라 방해를 받는다.
나의 24시간은 내 딸의 손아귀에 달려있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몇 권 안 되는 책을 읽거나, 집에 얼마 없는 책을 반복해서 읽거나, 어렸을 때 무던히 노력했던 엄마표 미술을 다 소진한 상태에서도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이것저것 만들기를 시도하거나 하며 하루를 보낸다. 그중 언덕에 올라가는 시간도 있다.
미니멀 라이프 5년 차, 요즘처럼 중고서점에 팔았던 수많은 그림책들이 그리워지긴 처음이다.


유치원 무기한 휴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쩔 수 없는 도리였다. 그러니 앞으로는 아이와 어떻게 하면 하루를 더 유익하게 보낼지 궁리를 해야 한다.
지금 이 시간들이 소중하고 감사하다고 약간의 최면을 걸어야 한다.
새벽에 일어나 독서를 해왔던 시간들을 다시 글로 남기는 정신적 노동을 시작해야 한다.
코로나가 잠잠해지기만을 바라고 협조하면서  내 안의 끓어오르는 한숨을 재워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렇게라도 풀지 않으면 한숨으로 내가 꺼져버릴 테니까.




@byphap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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