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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phapha Feb 08. 2020

아이의 스몰 트라우마 회복기

(feat. 극복기라 부르고 싶어)

3주 만에 블로그에 글쓰기 버튼을 눌렀다.
바빴다. 한 가지 이유로.
아이의 칫솔 사건이 잠잠했을 줄 알았는데 다시 툭 하고 튀어나왔고, 유튜브나 책으로 #스몰 트라우마에 관한 내용을 찾아 읽었다.
대부분 빅 트라우마나 스몰 트라우마 자체의 개념에 대해 설명하긴 했지만 일상 속에서 겪게 되는 스몰 트라우마에 대한 해결 방법은 없었다.
아이의 상태나 상황, 연령에 따라 case by case이기 때문에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도무지 어떻게 하면 유치원에서 겪었던 트라우마를 서서히 잊고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을까에 고민했다.



개학하고 일주일 동안 두 번은 가지 않았다가 그다음 주에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꼬박 일주일을 쉬었고, 일상에서의 트라우마를 겪었더라도 회피하지 말고 부딪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방법을 모색했다.
아이는 내가 생각하는 가벼운 일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계속 잊고 싶은 사건으로 기억했다.
"칫솔 사건이 계속 나서 유치원에 가기 싫고, 그리고 엄마가 그 생각이 날 때마다 미워"
며칠을 울면서 이야기하던 아이와 마주 앉아 그 슬픔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나름대로의 방법을 함께 고민했다.
잠잘 때만 빼고 하루 종일 말을 하는 수다쟁이 딸을 둔 덕에 아이는 본인의 감정에 대해 나에게 솔직하게 전부 꺼내보였고, 첫 일주일은 내 기준에서 괜찮아였다면 그다음 일주일은 철저히 아이를 위한 괜찮아로 방법을 바꾸며 무던히 노력했다.




 지난번 글





<스몰 트라우마 회복기>

1. 아이가  사건을 잊고 싶은데 계속 생각이 난다고 하면, 생각이 나는  당연하니까 그냥 생각해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일주일 전에는 그냥 잊어버리라고 했다. 그런데 그게 말이 쉽지, 잊으라고 말한다고 그게 잊혀지나. 그래서 그냥 생각이 나면 생각하라고 했다. 다만 너무 그것만 집중하지는 말고.


2.  사건은 이미 오래전에 일어난 일이고 앞으로는 그럴 일이 없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일단은 그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시켜야 했고, 그 덕분에(?) 나도 등원할 때 한 번 더 물건을 챙기거나 키즈노트를 확인했다.
단기간에 다시 비슷한 일이 일어나면 안 되기 때문에, 선생님께도 상황을 말씀드리고 앞으로 혹시라도 나의 실수가 생기면 직접 전달에 줄 것을 요청했다.


3. 네가  일을 겪어봤기 때문에 만약,  아이도 비슷한 일을 겪었을  네가 나서서 도와줄  있다고 말했다.
이 부분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는데, 유튜브를 보다가 트라우마의 틀을 깨는 방식 중 하나로 소개되었던 것 같다. 아이에게 설명해주었더니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친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하니 이미 그 일을 겪어본 사람처럼 매우 뿌듯해했다.


4.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고 엄마의 실수였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있다고 말했다.
보통 트라우마의 경우 "너의 잘못이 아니다"를 이야기해주는 게 일반적인데 나의 상황은 좀 애매했다. 분명 아이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내가 칫솔을 챙겨주지 못했다는 점이 아이에게 큰 잘못으로 기억될까 봐 잘못 대신 실수로 바꿔 말했다.
그리고 누구나 실수할 수 있으며, 그건 가벼운 일이라고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동시에 그 일 때문에 우리가 오히려 준비물을 더 잘 챙길 수 있게 된 거라고 이야기했다.


5. 등원할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반복해서 말하며 등원했다.
이 방법은 유치원 입학 때 아이와 한동안 사용했던 방법인데, 효과가 좋다.
지금과는 아주 대조적인 모습으로 사람을 대하던 아이가 자기 입장을 설명하지 못할까 봐 여러 개의 상황과 그에 맞는 단어를 골라 연습했었다. 아이가 어느 날 하원 하다가 교실에 들어가서 칫솔 생각이 나길래, 스스로에게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해주었더니 괜찮아졌다며 말해주었다.


6. 기타 (칫솔 사건을 잊기 위한 방법 포스터 만들기 with )
- 사건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아이에게 용서와 이해를 구한다.
- 대화할 때에는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끝난 후에는 안아주었다.
- 평소보다 스킨십을 더 많이 한다.
- 엄마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지금은 괜찮아졌다고 말한다.
- 그 기억을 꺼내 다 이야기해보고, 그때의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해 보았다.
- 등원 전 아이가 좋아할 만한 일들을 오전에 충분히 해보고 즐거운 마음으로 등원하도록 유도한다.
- 아이와 협의해서 주 1회를 빠지거나, 하원 시간을 조정해본다.







그 당시의 기분 (화남 vs 슬픔)

사건이 있었을 때의 기억에 대해 이야기했다.
칫솔이 없었을 때 엄마한테 너무 화가 나서 그 감정을 그림으로 (왼쪽) 그리고 자기만 칫솔이 없고 어찌할 수 없던 상황이 슬퍼서 그림 그림 (오른쪽)
이토록 새빨간 얼굴을 가진 그림을 아이가 그려본 적이 없다. 아주 많이 화가 났었다는 걸 알고 좀 놀랬다.



생각지도

칫솔 사건이 일상에서 얼마나 생각이 나는지 원으로 그려보았다. 엄마는 책은 이만큼, 밥은 이만큼, 등등으로 그리며 설명해주었더니 아이도 그렸다.
다행히 칫솔이 책이나 다른 일상의 재미들 보다는 크지 않았지만, 아이의 부연 설명이 이어진다.
“엄마 칫솔은 안 좋은 생각이라서 검은색으로 그린 거야. 그리고 내 얼굴에 반은 (1/3)은 검은색이야. 칫솔 생각이 나서. 책 있는 곳으로 조금 넘어오려고 해. (자세히 보면 책 구역 안에 검은 선이 들어와 있다.)



아이와 고민하면 만든 포스터

스몰 트라우마는 무조건 잊으라고 말하기보다는 솔직히 꺼내서 마주하는 것이 좋고, 일상생활을 지속해야 자연스럽게 잊을 수 있다는 설명들이 많았다.
그래서 아이가 울면서 등원을 거부할 때나 2주 차까지는 좀 시간을 갖고 지켜보면서 마음이 안정되길 기다렸다.
코로나로 외출은 아쉬웠지만 대신 아이에게 더 많은 시간을 집중하고, 아이가 원하는 걸 함께 해보려고 노력했다.



* 약속 포스터 설명

남편에게도 너무 고맙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기도 매일 버거워하는 저녁형 인간인 남편과 의논해서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포켓몬 인형놀이를 매일 20분씩 등원전에 해줬다.

나말고 남편이.


그리고 평소에 간식을 사주는 편은 아니지만 먹고 싶어했던 젤리를 사서 우리끼리 먹으면 즐거워지는 젤리, 웃음보 젤리라고 이름을 지어 나눠먹었다.



감정을 색으로 표현해보기

내가 미술 치료사는 아니지만, 어디선가 이런 감정들을 그림이나 색으로 표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들었던 것 같아 쉬는 동안 하루는 날 잡고 이 모든 걸 다해보았다.
이때 아이의 감정의 색은 모두 다 화였고, 검은색은 악이라고 표현한다. 아이가 거칠게 그림을 그리고 표현하는 동안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1주일은 등원 거부, 2주일째는 코로나로 강제 휴원, 3 차는  1  가고 나머지는 즐겁게 등원했다.
그리고 칫솔 사건은 여전히 떠오르지만  이상 울지 않고, 웃으며 말한다.
"그니까 엄마가  챙겨줘서 그랬잖아 까르르르"
다행히 가기 싫다고는 말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스몰 트라우마라도 아이가   동안 계속해서 상황을 회피하거나 울거나 괴로워한다면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보는 편이 좋다는  일반적인 방법이 었기 때문에 많이 걱정되긴 했지만 조급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그나마 좋은 쪽으로 개선되었던  같다.



어제 하원 할  아이에게 물었다.
"아직도 칫솔 생각이 ?"
". 매일은 아니지만 생각이 나긴 나. 그런데 엄마가 유치원 가야 잊을  있다고 해서 유치원 가는 거야. 그런데 막상 가면 칫솔 생각이 안 나"

"어때. 엄마 말이 맞지? 가서 놀아야 생각 안 나는 거야. 가기 싫다고 안 가면 칫솔 사건은 계속 따라다니게 "
"엄마가 괜찮다고 계속 말해주니까 그렇지 (생각이 안 나)"

그렇게 말해준 아이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감정을 어루만지는 것에 대해 조급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다시 한번 느낀다.
덜렁대는  성격이 육아할 때 반영된다는  다시금 깨닫고, 꼼꼼해지려고 마음을 잡는다.
마지막   동안 말끔히 안-녕 하길 바라며.
다음 주도 노력하자.




@byphap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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