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yphapha Jan 17. 2020

육아일기_ 칫솔 사건의 최후

(feat. 등원 거부)

유치원 개학을 하고 4일 동안 두 번이나 유치원을 가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한 번은 실컷 놀다가 유치원에 가는 게 싫다고 해서 가지 말라고 했고, 한 번은 칫솔 사건 때문이었다.

개학 전날 선생님께 방학 동안 칫솔이 낡아 버린 친구도 있으니 칫솔을 꼭 보내달라는 알림을 받았다.

머리로만 생각하고 금세 잊어버렸다.

개학식 날 유치원에 가지 않았고, 이틀 연속으로 칫솔을 보내지 않았다가 아이가 4일째 되는 날 눈을 뜨자마자 등원 거부를 했다.

이유인 즉, 칫솔을 안 가져와서 자기만 점심시간 때 양치를 못했고 보조 선생님과 친구들 몇 명 앞에서 울었던 자신의 모습이 자꾸 생각나서 가기 싫다는 것이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식판과 함께 빈 수저함을 넣은 적이 세 번이나 있을 때에도 엄마가 안 넣어주셨다고 낄낄대며 혼자 영양사 선생님께 받아오겠다고 한 딸이었다.

선생님과 6세 상담을 진행했을 때 달라진 변화에 선생님도 놀라셨고, 보통의 경우 아이들이 울기 마련인데 딸은 너무 씩씩하고 개의치 않았기 때문에 대견스럽다고 하셨다.

낯가림이 심하고 소극적인 아이였더라 6세가 되고 난 후 확 바뀐 성격에 내심 너무 기뻐하고 있었는데, 고작 칫솔 때문에 등원을 거부하다니.

사소한 일에 잘 울지 않기는 했지만 자존심이 센 편인가 싶기도 하고, 오랜만에 유치원에 갔는데 혼자만 그룹 시간에 제외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아서 그랬나, 그것도 아니면 방학 동안 보건소에서 받은 양치 교육을 너무 충실히 기억하고 있는 걸까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울면서 가지 않겠다고 계속 거부를 했고, 나는 어떻게든 설득을 했지만 알겠다고 했다.

어제 하원 할 때만 해도 유치원이 재밌었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재잘거리던 녀석이고 평소 그냥 안 가겠다고 하는 일은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도록 했다.




아이는 바지에 소변을 봐도 덤덤했다.

작년 겨울쯤,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평소 전화할 일은 특별한 일정이 아니면 없기에 무슨 일일까 싶어 받았더니, 선생님께서 "별이가 실수 안 하는 아이인데 오늘 쉬아를 해서요 어머니"라는 내용이었다.

아이들 앞에서 바지에 쉬를 하고 혹여나 부끄러워했을까 싶어 집에 돌아오는 길에 기분이 어땠는지 물었을 때 아이가 쿨하게 대답했다.

"시원했는데?"

"하하하. 엄마도 그랬을 것 같아"

둘이 손 꼭 잡고 돌아오며 똥 싸면 어떨 것 같아부터 시작해서 ~하면 어떨 것 같아로 수다를 떨며 하원 했던 때도 있었다.




백화점에서 책도 읽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기분이 좀 좋아진 타이밍에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아이가 툭 내뱉는다.

"엄마. 내가 왜 유치원 가기 싫은지 말해줄까?"

진짜 이유가 궁금했던 나는 귀를 열었다.

"아이들 앞에서 울었던 내 모습이 자꾸 생각이 나서 가기 싫었어"

"아 그랬구나. 엄마도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어. 엄마가 미안해. 다음부터는 더 잘 챙기도록 할게. 엄마가 미안해"

예상했던 그대로의 대답이었다. 오전에도 들었던 답이지만 다시 한번 확실히 자신의 기분을 이야기해준다.

추가 설명을 더하자면, 숟가락 사건은 3일 연속이 아니어서 괜찮았는데 칫솔은 2일 연속이라 싫었단다.

그래.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문제는 칫솔이 아니라 2일 연속이라는데 있었던 것이다.

내가 너무 무심했지.




잠자러 들어가기 전에 아이가 말을 꺼낸다.

"내일 아침에 칫솔 넣었는지 확인해야 해"

내가 유치원 가방의 앞 주머니를 열어 보여준다.

"칫솔이 발 안 달렸으면 어디 안가. 여기 있는 거 보이지?"

책을 읽어주고 누웠다.

"별아. 엄마는, 별이가 칫솔 사건에 대한 별이 감정을 솔직히 말해줘서 너무 고마웠어. 엄마가 노력할 테지만 혹시라도 만약에 또 칫솔을 못 챙겨주면 그때는 말이야. 아싸! 오늘 양치 안 해도 된다!라고 생각해줘. 알겠지?"

"응"

칫솔이라는 단어만 꺼내도 아이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칫솔이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 나?"

"응"

"칫솔 칫솔 치~~~~ 솔" 하며 간지럼 했다.

"우리 이 시간부터는 박수 한번 딱 치고 칫솔 사건 잊어버리는 거다. 알겠지?"

"하나, 둘, 셋 (짝) 칫솔"




바지에 오줌 싼 일이나 수저통을 안 챙긴 일이나 칫솔이나 나에게는 다 같은 일이었다.

순전히 내 입장에서만.

그런데 아이는 그 차이가 너무 컸다.

씩씩했으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잘못했다.

아이의 입장에서 더 생각해보고 공감해주지 못했다.

아침에는 등원 거부에만 꽂혀 앞으로도 유치원 안 갈 거냐고 다그쳤다.

유치원 빠지는 일보다 아이 마음 알아주지 못하는 게 더 큰일인데.

부디 매일 키즈노트를 제대로 확인하고, 스케줄에 메모하도록. 어제의 칫솔 사건을 내 마음속에서 보내줘야겠다.

엄마가 진짜 미안.

'하나, 둘, 셋 (짝) 칫솔'




@byphapha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의 덕후질을 응원한다 (feat. 포켓몬스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