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byphapha Jan 13. 2020

아이의 덕후질을 응원한다 (feat. 포켓몬스터)

언제나 어디서나 피카츄가 옆에 있어

아이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가 있다면 바로 포켓몬스터이다.

어렸을 때 T.V를 자제한 편이라 뽀로로나 타요를 보아도 별 감흥이 없던 녀석이 태어나 두 번째로 사랑하는 캐릭터를 만난 것이다.

첫 번째 캐릭터는 4살 때쯤 시작되다.

딸이 사랑했던 캐릭터는 영국 캐릭터로 유명한 페파피그였는데 지금은 그 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다.

페파피그 피큐어와 손바닥만한 인형을 열렬히 사모으며 영어책은 덤으로 읽어주었던 이유는 아이가 영어와 사랑에 빠지길 기대하던 나의 알량한 마음이었다.

작년 가을쯤 남편이 내가 외출해있던 동안 아이에게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을 보여줬는데 예상외로 반응이 뜨거웠다.

5세까지만 해도, 아니 지금도 늘 원피스가 아니면 입지 않는 딸이 시크릿 쥬쥬보다 피카츄 백만 볼트를 외치며 피규어를 갖고 싶어 하는 아이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이는 그쯤부터 매일 2편씩 40분 동안 T.V시청을 하고, 주말에는 번개맨을 보지 않는 조건으로 3편을 본다.



언제나 어디서나 피카츄가 옆에 있어



포켓몬스터에 빠진 녀석은 매일 두 편만 봐야 하는 우리 집의 시스템에 아쉬움을 드러냈지만 가끔 더 보고 싶어 해서 예외를 줘도 더 졸라대는 경우가 있을 때에 내 화살은 남편에게 간다.

'당신이 처음부터 그걸 보여줬으니까 얘가 이렇지!'라는 원망의 눈초리와 함께 무언의 압박이 들어간다.

그래도 남편은 아이들이 하는 건 다 알고 해 볼 줄 알아야 한다며 내 눈치에도 끄떡없었다.

단, 아직은 게임을 시작할 나이가 아니라는 걸 알기에 아이에게 게임을 보여주진 않는다.

아이는 포켓몬 피큐어로 생생한 인형놀이를 하는 것을 더 좋아해 주말엔 예외 없이 한두 시간씩 포켓몬 인형놀이를 한다.

나 말고 남편이.




그러던 어느 날, 하원 후 놀이터를 지나가는데 아이와 얼굴을 익힌 7세 동네 꼬마들 몇 명이 모여 놀고 있는 모습을 아이가 보았다.

아이들이 딸의 이름을 불렀고, 아이는 내게 좀 놀다 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하라고 했다.

"언니 우리 놀자"

".... 그래. 근데 우리 포켓몬 놀이할 건데? 너 포켓몬 알아?"

"나도 봐"

"뭐라고?"

"아 본다고"

그 말투가 너무 웃겨서 나 혼자 피식 웃었다.

자기도 언니들이 말하는 게 뭔지 다 알고 있으니 놀이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견을 내보인 거였다. 약간의 허세와 함께.

그러더니 아이와 친구들은 캐릭터를 서로 말하며 캐릭터 흉내를 내고 놀았다.

이 여세를 몰아 내가 한 마디 더 거들었다.

"아줌마는 도치마론 할게. 아니다. 미끄래곤은 어때?"

"우와 아줌마 어떻게 알아요?"




그날 저녁 아이를 재우고 퇴근한 남편을 기다리면서, 당신의 말이 맞는 것 같다고 이야기해줬다.

무조건 차단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가 즐길 줄 알고 절제할 줄도 아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에 대해 나도 동의하게 된 점, 오늘 놀이터에서 있었던 일들, 그래도 게임은 아직은 안된다는 점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그리고 아이가 좋아하는 것은 혼자 즐기기보다는 부모가 함께 즐기도록 노력하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생각해보면 남편이라는 사람은 게임에 빠져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새로운 게임이 나오면 두루두루 경험했다.

웹툰과 만화책을 끼고 산지가 30년이 넘은 고수이고, 자기 직전까지 웹툰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잠을 청할 정도로 웹툰에 미쳐있는 사람이다.

그러고 보면 이렇다 할 덕후질일 없는 나보다 남편이 실로 더 나은 사람이다.




반대로 나는 무언가에 빠져 지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이것 찔끔. 저것 찔금. 남편이 우스갯소리로 내게,

"신이 당신에게는 다양한 재능은 주셨지만 끈기는 하나도 안 주셨잖아"라고 했을까.

어떤 일에 '덕후'가 되는 사람들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이왕이면 돈을 쓰는 취미를 갖는 것보다는 김민식 pd님처럼 공짜 덕후질을 많이 하는 사람들 말이다.

덕후질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빠져있는 분야보다 그걸 해내기 위한 끈기에 감동하게 된다.

덕후질을 위해 귀찮거나 불편한 점 정도는 그냥 감수한다.

나는 끈기라면 손사래를 치는 사람이라 덕후가 된 사람들이 마냥 부럽다.

나에게는 왜 덕후질을 할 만한 무언가가 없을까 늘 생각했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포켓몬스터에 빠진 딸이 나보다 더 나은 사람 같다.




도서관에서 알게 된 포켓몬 전국 대도감 책을 몇 번씩 정독하고, 나에게 캐릭터의 특징과 이름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진화하면 어떤 캐릭터가 되는지, 그리고 좋아하는 피규어들을 세워놓고 열심히 인형놀이를 한다.

아빠와 주말에는 어김없이 포켓몬 인형놀이를 하고, 포켓몬 그림을 프린트 해달라고 하며 꼼꼼히 색을 입혀본다.

아이는 캐릭터를 더 모으고 싶어하고, 캐릭터를 사기 위해 용돈을 벌 궁리를 한다.

아이가 혼자 독서하는 시간 외에도 가끔은 나에게 책을 2권씩 읽어주거나 직접 그린 그림을 나에게 판매할 요량으로 식탁 앞에 앉아 열심히 그림을 그린다.

그림은 온전히 내가 마음에 들어야 구매하기 때문에 고객의 니즈에 맞춰 다양한 그림들을 선보인다.

그렇게 모은 100원을 세어가며 포켓몬을 사게 될 날을 기다린다.

물론 내가 사준 포켓몬들의 숫자가 훨씬 많지만 아이는 고사리만한 손으로 동전을 세어가며 다음엔 어떤 포켓몬을 키우게 될지 고민하고 설레한다.

좋아하는 것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 즐기는 모습, 참고 견디는 모습들을 아이는 포켓몬스터를 통해 배우고 있었다.

<포켓몬 전국 대도감>책에 따르면 실존하는 포켓몬들은 무려 802마리인지라 두렵긴 하지만 나는 아이의 덕후질을 응원한다.






@byphapha

  

매거진의 이전글 낙서한다. 온 마음으로 온 벽에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