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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phapha Apr 21. 2020

버티다 만나는 곳엔 희망이 있다.

소아 사구체신염, 단백뇨 정상

어제는 아이의 정기진료가 있는 날이었다.
작년 소아 자반증으로 한 달간을 병원에 입원한 이후에 상황이 안 좋아져서 사구체신염 진단을 받았고, 11개월 만인 올해 2월에 약을 끊게 되었다.

그리고 한 달에 한번 있는 정기검진을 지난달 거르게 된 것이 못내 걱정되었었는데, 육안으로 보기에 일단 거품은 괜찮아 보였고 코로나 감염자 수가 하루가 다르게 증가하는 모습을 보고 대형병원에 가기가 너무 염려되었기 때문이었다.

11개월 동안 진료를 봐주신 안요한 선생님이 본원으로 인사이동하게 되면서, 혜화동까지 다녀야 할까 고민도 했었지만 선생님께서는 별이의 상황이 더 좋아지고 있으니 약을 끊고 여기서 계속 진료를 받는 것으로 추천해주셨다.




별이 단백뇨가 완전히 정상이네요




새로 만나게 된 선생님과의 첫 진료와 아이의 소변검사 상황이 걱정되었는데, 병원에 들어가면서 신랑과 했던 얘기가 '두 달에 한 번만 병원에 오라고 하면 좋겠다'였다. 퇴원 이후에도 아이는 한 달에 한 번씩 피검사와 소변검사를 참아내고 집에서 내가 주는 야채 위주의 식단도 꿋꿋이 잘 먹고 견뎌왔다.

진료실 문을 열고 검사 내용을 듣기 위에 앉아있는 그 시간은 항상 긴장의 연속이었다. 모니터를 확인하고 약간이 침묵이 느껴지거나 "음"이라는 소리를 내는 경우에는 더욱 그랬다. 그럴 때면 나는 어깨가 움츠려 들고 시선을 어디다 두워야할지,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참아내기 위해 다른 곳에 집중하기도 했다.

"별이 단백뇨가 완전히 정상이네요"

선생님께서 모니터를 돌리시더니, 186이라는 숫자를 말씀해주실 때 가슴이 울렁울렁거렸다. 1200까지 올랐던 단백뇨가 정상범위에 머물기까지 1년의 시간이 걸렸다. 매달 조금씩 줄어들거나 비슷하거나 다시 올라가는 숫자들을 확인할 때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언제나 눈물이 났다.

그런데 너무 듣고 싶었던 말, 기대하지 못했던 말을 듣고 나자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어쩐 일인지 그동안의 보상이라고 욕심내고 싶었나 보다. 고생했으니 그런 말이 당연하다는 욕심 말이다.
아직 혈뇨가 조금 나오고 있는 상황이지만, 혈뇨는 신장 악화에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기에 지켜보자고 하셨고 앞으로 3달 후에 오라고 말씀해주셨다. 소변검사 스틱은 사서 한 달에 한번 정도 아침 첫 소변으로 단백뇨 확인하고 물을 많이 마시도록 권고받았다.

정말 너무 감사해서 지금 만나게 되는 누구라도, 그 어떤 신께라도 무릎 꿇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별아 너무 고생했어. 우리 딸 정말 장하다."
진료실 밖으로 나와 남편과 나는 한동안 아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고맙다고.
그리고 당신도 고생 많았다고.







내 아이의 어떤 모습이 사랑스럽지 않겠느냐만은 작년 한 달 동안의 병원생활과 두 달 집안에서의 생활에서 아이가 해맑게 웃는 두세 장의 사진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지워버렸다. 블로그 한켠에 남긴 병원 기록과 증상의 사진들을 남겨둔 것을 제외하면 다시는 그 아픈 시간들을 회상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혈변과 혈토로 인해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며 '배 아파'를 연신 말하며 진통제로 버티며 새우잠을 청하던 시간들..
한동안 두 발 뻗고 잠자기 어려웠던 '배 아파'의 환청들. 지금 생각만 해도 눈물이 고인다.
집에서도 한동안 휠체어 생활을 하며 양치질은 물론 소변까지 받아내며 함께 견뎠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나을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버티며 힘든시기를 남편과 나 그리고 아이, 우리 가족이 서로를 위로하며 하나가 되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화가가 되고 싶다는 아이의 꿈은 병원생활 이후로 의사가 되었고, 아픈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아픈 시기도 잘 견뎌왔으니 별이는 앞으로 못 할 일이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너는 정말 대단한 아이이고, 무슨일이든 해 낼 수 있는 아이라고도.




아픔과 고통의 시간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끝나기 마련이다.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은 어떤 방식으로 끝나게 되든 그 이후에 우리는 과거를 회상할 수 있는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는 점이고, 앞으로도 만나게 될지 모를 고통의 시간을 감내할 수 있는 강한 힘을 얻었다는 점이다.
남편이 없었더라면 나는 버텨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고통 속에서도 짜증 한번 부리지 않고 잘 버텨준 딸아이의 의지가 없었더라면 나는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가족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함께 버텨낼 수 있었다.
고통 속에 머물러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버티는 것이 언젠가는 희망을 만나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래야만 삶에 대해 마음껏 감사할 수 있다.



@byphap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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